동상이몽

by 장해주

몇 년 전쯤이었다.

방송작가로 막 메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몇 달쯤 지났나. 그때의 나는, 매주 돌아오는 생방송 날짜를 맞춰 방송을 준비하느라 심장이 쪼그라들고 염통까지 쫄깃쫄깃해지는 그런 나날을 보낼 때였다.

1시간 짜리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프로그램 각 꼭지의 아이템 컨펌안부터 대본과 구성안, 섭외와 진행사항 등등... 체크하다보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시간이 없어지던 나날들.

매일이 타이트한 긴장 속에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예민해지기도 하고 신경이 곤두서기도 하고. 누군가는 메인작가 타이틀 달면 위에서 진두지휘 정도나 하는 정도로 인식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메인작가가 하는 일이 더 많다.

여하튼. 전체 코너 작가들을 챙겨야 하다 보면 이따끔씩, 아니 종종 언성이 높아지거나 날카롭게 후배들을 몰아붙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못된 선배는... 아니었다. 그러나 방송 준비를 하다 보면 후배들을 쪼아야 하는,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날이 꼭 그런 날이었다.

"00아. 경찰서에 cctv 확보 됐니?"

"아 언니... 죄송해요! 지금 확인해볼게요!"

"야! 너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그걸 지금 확인하면 어쩌라는 거야?! 내가 그거 1시간 전에 말하지 않았냐?"

".... 언니 죄송해요..."

"죄송이 문제야?! 네가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걸 체크를 안 해! 너 방송 불방 낼 거야!!"


사건사고 아이템의 코너에서는 cctv나 블랙박스 영상 확보가 필수다. 팩트 체크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시간 전에 체크하라고 한 영상 체크가 안 되어 있었다.

지금 아이템이 엎어지는 아주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자. 다시 아이템을 찾고, 그 아이템을 본사랑 입씨름을 하며 설득을 하고 (데일이 방송의 경우 대게 외주제작사다), 그 과정에서 심장에는 피가 더 바싹 마르겠지. 방송까지 3일... 밖에 안 남았는데.

이 정도 되면 '방송 펑크'라는 단어가 떠올라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이 상태에 이르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빨리 경찰서에 전화해서 확인하고. 만약에 영상 확보 안 돼서 아이템 엎어지면 너 진짜 죽을 줄 알아. 알겠어?!"

"네....."


후배 작가 얼굴을 더 마주하고 있다가는 더 험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바람이나 좀 쐬자, 싶어 사무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찬공기가 이마에 닿으니 조금 전 스팀이 팍팍 올라오던 머리의 열이 식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여 분쯤 지났나.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옥상 저편에서 조금 전 나한테 된통 깨진 후배 작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울먹) 나 메인년한테 까였어..."


푸흡- 웃음이 터졌다. 나는 호기심에 잠자코 조금 들어보기로 했다. (엿들은 거 맞다. 이런 상황 있어본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알 것이다. 십중팔구 끝까지 듣게 된다는 것을.)

후배는 자신의 엄마한테 통화 가운데 내 욕을 엄청나게 해댔다. 조금 봐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메인언니가 나만 싫어하는 것 같다는 둥, 서러워서 때려치워야겠다는 둥, 내가 작가로서 뭔가 자격미달인 것 같다는 둥. 그리고 그 끝에...


"지가 메인이면 다야? (흑흑)"


나 참. 어이가 없어 허탈한 너털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내 속은 속인 줄 아나... 저것이 진짜! 괘씸한 마음이 후욱- 명치께를 치받았다.

그리고 내 속에서 불쑥 올라온 말 하나. '야. 너만 엄마 있냐. 나도 있거든? 울 엄마한테 화악! 다 일러바칠까 보다."

그쯤 되고 보니 풋- 하고 웃음이 확 터졌다.

핸드폰 화면을 밀고 '우리엄마'를 내려다봤다. 걸까, 말까... 그렇게 잠깐 망설이던 나는 결국 핸드폰 화면을 닫아버렸다. 내가 언제부터 그랬다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내가 내내 부딪히는 지점. 엄마랑 내가 내내 트러블이 되는 포인트.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참 그걸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

엄마랑 나는 싸울 때면 각자의 입장만 내놓기에 바빴다. 나는 이런 건데 너는 왜 그러냐. 극명하게 다른 서로의 마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저 말 안 해도 서로 알아주겠거니, 했던 안일한 생각.

나 역시 그랬다. 내 마음 몰라준다고, 그래서 서운하고 섭섭하다고만 난리를 쳤지, 정작 나는 내 마음을 엄마한테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엄마대로 나에 대한 추측들만 난무했을지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내 딸이 이런 반응을 하겠지, 저런 말을 하겠지... 같은.

나는 왜 내 마음을 엄마한테 전하지 못한, 아니 전하지 않은 걸까.

그랬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엄마한테 입을 닫고 엄마를 찾지 않았다. 엄마가 내 마음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어떤 작은 균열 때문에.

어떤 문제 앞에서 무조건 좀 내 마음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는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날은 꼭 엄마랑 싸우게 된다. 그렇게 이런 일들이 잦게,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보면 점점 입을 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엄마랑 싸우기 싫다는 명분으로.

그런데 이건 정말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사실은 '답정너' 같은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게 내 마음이었으니까. 듣고 싶은 말을 안 해주는 엄마가 야속한 것일 뿐.

반대로 엄마도 그랬다. 너는 엄마 말을 안 들어준다고.

맞다.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내내 바른 소리와 바른 말하기에 바빴으니까.

나 역시 단 한 번도 엄마의 마음 상태가 어떤 건지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마음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전해도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자. 좀 어떤가. 그 동상이몽 속에서도 썩 괜찮게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린 어쩌면 이렇게, 매일 동상이몽을 하기에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