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은 여자다

by 장해주

1. 서로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

2. 어떤 것에 해를 끼치는 요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경기나 시합 따위에서 서로 승부를 겨루는 상대편


적(敵)의 사전적의미다.

보편적으로 '내 편'과 '네 편' 편가르기를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나랑 엄마 사이에도 '적'과 '편'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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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지만 먼 사이가 부부라고 했던가. 등 돌리면 남,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님. 그래서 부부라고 한다고.

그런데 가깝고도 먼 사이는 모녀 사이가 더 끈덕지고 치열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팩트만 따져놓고 보자면, 부부는 서로를 도저히 끌어안을 수 없을 땐 갈라서기라도 하지.. 부모 자식 간은 그것도 안 된다. 마음에 안 든다고 갈라설 수가 있나, 버릴 수가 있나. 간혹 부모 자식 간에도 철천지원수가 되어 안 보고 살거나 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속 기억까지 없앨 수는 없으니까.

갈라선 부부는 그저 잊고 지내거나 이따금씩 상대가 떠올라도 그리 애틋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미혼이다. 이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한 부분을 문장으로 썼다는 점을 밝혀둔다.) 어쩌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기억의 저 편에 자리할 뿐.

그러나 부모 자식은 좀처럼 그럴 수가 없다. 몇 십 년씩 왕래 없이 지내더라도 기억의 저 편으로 밀어낼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 좋든, 나쁘든.. 떠올려서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는 관계가 부모 자식인 거니까. 사실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들 사이에서도 무 자르듯 딱! 서로를 잘라낼 수 없는 이유가 자식 때문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나는 엄마와 내 관계가 어쩌면 부부보다도 더 끈덕지고 치열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인생에서 결코 떨어뜨릴 수 없는 그런 존재.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에는 나와 트러블이 있거나 내게 전적인 동의를 구할 때 쓰는, 엄마의 말 표현 때문일지도.


"넌 아군이야~. 적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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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나도 엄마의 이 표현을 빌릴 때가 있다. 특히 남동생이랑 트러블이 있을 때. 이럴 때 우리 엄마 말은,


"편이 어딨어~. 엄마는 누구 편도 아니야. 중립이지."


중립이라니.

엄마는 엄마 편 안 들어주면 대번에 너는 "적군"이라며 몰아붙이면서. 내게는 중립이라고 하니, 이런 상황이 맞닥뜨려지면 그저 기가 막히고 황당할 뿐이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아들 편을 들겠나, 딸 편을 들겠나. 이런 이치로 보자면 엄마의 '중립'이라는 말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뭘까... 영 찜찜하고 탐탁치 않아 뜨뜻미지근한 이 기분. "그냥 엄마는 아들 편이야~." 라는 말보다 더 짜증이 나고 신경질 나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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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엄마는 남동생들과는 잘 싸우지 않는다. 사실 싸움이 안 된다고 하는 게 맞다. 엄마가 뭐라고 난리를 쳐도 남동생들의 반응은 대개 "엄마 죄송해요." 라거나 "네 알겠어요 엄마," 혹은 아무 대꾸를 덧붙이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남동생들한테 언성을 높이거나 큰 소리 치는 비중이 나보다는 낮다. (남동생들이 보면, 아니라고 반기를 들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딸인 나와 부딪힐 때보다는 좀 다른 분위기가 연출 된다. 남동생들한테는 미안하다고도 하고, 엄마가 네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했겠구나.. 같은 말들도 곧잘 하는 것 같던데. 나한테는 오히려 그런 말을 안 한다. 미안해도 엄마가 뭐가 미안해야 하냐고 하거나 내가 잔소리를 좀 하기라도 하면 듣기 싫다며 싫은 티를 팍팍 다 내고.

물론 엄마는 딸이나 아들한테 다 공평하게 했다고 하겠지만, 아니다. 전혀.

엄마는 나한테 안 지려고 하니까. 절대.

엄마가 이러는 게, 딸이 같은 여자라 만만하고 편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같은 여자끼리라 은근한 기 싸움인지.

그리고 이런 끝에 떠오른 말이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엄마는, 딸인 내게 있어 같은 편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적'일 때도 공존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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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적'의 모드였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대뜸 이런 말을 퍼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애정결핍이야. 그러니까 맨날 그런 연애를 하지."


그때의 엄마 얼굴은 그랬다. 어떻게 저런 미친 소리를 유려하게 잘도 하고 있나.


"야. 그게 왜 내 탓이야? 막말로,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놈들만 골라서 만나라고 그랬냐? 지가 좋다고 미쳐서 만날 땐 언제고. 왜 이제 와서 그게 다 내 탓이래~. 진짜 별났네."

"엄마가 날 안 사랑하니까 그렇지! 다 그 탓이야. 그러니까 그게 맞아. 엄마 탓!"


그런 나를 보며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기함을 토하던 엄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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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고, 말 안 되는 소리인 거,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온갖 투정과 말 안 되는 소리들을 늘어놓아서라도, 나는 꼭 듣고 싶었다. 엄마가 내 편이라는 말. 언제까지나 엄마는 네가 무엇을 다 해도 괜찮다는 말. 그러니까 걱정말라는 말.


그러니까 엄마.

그냥 어떤 날에는,

"엄만 딸, 네 편." 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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