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나 좀 볼게!

by 장해주

"참는 게 이기는 거야~."


참는 게 이기는 거라는, 이 말이 미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으로 보자면 호구 잡히기 딱 좋은 말 돼버렸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 사실 이 말 뜻을 곱씹고 또 잘 들여다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성격이 성급하거나 불 같아서 화를 잘 내는 사람 치고 손해 안 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참는 것도 '잘' 참아내야지 속이 터질 때까지 참는 게 이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내가 커 오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참는 게 이긴다는 말.

그러나... 나는 참아서 이겨본 적이 단연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없다. 일을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도. 누군가 내게 거친 언사나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도. 죽을 힘을 다해 참아내었다.

그러다 화가 터졌을 때, 내가 이만큼 터졌으면 상대도 내 마음을 좀 알아주겠거니... 했다. 하지만 결과는 NO. 내 화가 밖으로 표출 됐을 때, 상대는 오히려 그런 나를 '미친x'쯤으로 여겼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어느새 그런 심리가 자리 잡혀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 상대의 걱정부터 하기 바쁜, 나를 돌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이런 마음이 참을 수 없이 견디기 힘들고 속이 상해서 엄마한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그랬다.


"딸아, 네가 그렇게 참고 견디고 힘들었던 만큼 꼭 보상이 있어~."


보상 같은 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지옥으로 몰아 넣는 게 진짜 잘하는 걸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엄마가 참아서 이긴 적은 몇 번이나 될까. 그리고 그랬을 때 엄마에게는 어떤 보상이 있었을까.

나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참는 게 이긴다는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그 긴긴 세월, 진짜 참으면 다 이기는 건 줄만 알고 미친듯이 참고 또 참고. 그러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그래서 마침내 그 폭발할 것만 같은 성난 마음을 더 이상 몸 안에 가두는 게 불가항력적이라 뱉어냈을 때는, '혹시 내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고 무서운 순간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 참아서 손해를 보거나 바보 취급 받는 때가 더 많았는데.

어느 때엔 엄마만의 그 어떤 특별 비법 같은 게 있는지 정말로 궁금해서 따로 특훈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다.

참는 게 이긴다는 건 도대체 누가 제일 처음 발견한 건지. 발견한 사람이 있으면 진짜 이 말을 제대로 적용해서 쓰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런 건 기록을 안해둔 건지. 별의 별 생각들이 머리속에 난무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말이 제일 잘 맞아들어 갈 때는, 엄마랑 나의 트러블이 아주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얼마 전 치과 가던 날 아침. 엄마랑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엄마는 대화 중에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는 또 얕은 한숨을 뱉으며 그렇게 속이 터져라 했다. 그리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보통 때면 내가 먼저 전화를 해 엄마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 달랬을 테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그러기가 싫었다.

나도 상했으니까. 내 마음이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감정은 내 감정대로 옳은 거라고.


나를 보듬지 못한 채 엄마를 들여다본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냥 오랫동안 엄마를 방치하는 나쁜 딸이 되기 싫어서, 엄마를 외면한 그런 못된 딸이란 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니까.

결국 이렇게 나를 들여다보지 못한 시간들은 상처라는 이름 아래 켜켜이 쌓인다. 그러다 결국은 빵! 터져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리게 되니까.

부모는 가면 끝이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라.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 시선으로 엄마를 이해하려 부단히 애쓰느라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한 날도 많다. 아플 때도 기쁠 때도.

그래서 마음껏 누린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도전 중이다. 엄마 말고 내가 나만을 보면서.

가끔은 엄마 말고, 내가 나를 먼저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엄마도 내 자신도... 더 소중히 여기며 더 많이 사랑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