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너 이름이 뭐니?

by 장해주

밥.

모든 사람에게 밥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육체적 양식이 되고,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돼 헛헛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이래저래 지친 하루의 끝에 마음 달래줄 그 무언가가 되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는,

남편이다.

트러블이 잦은 부부는 아니지만, 엄마가 아빠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어떤 '의식'처럼, 어쩌면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는 '본분'이 있다. 밥상 차리기다.

그날도 그랬다. 가벼운 입 말이 말씨름이 되고 결국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는 것. 이럴 때 우리 엄마의 주특기가 발휘된다. 몇 날 며칠이고 말은 하지 않으면서 아빠의 밥상을 차리는 일.

그리고 이럴 때 엄마가 꼭 덧붙이는 말이 하나 있다.


"엄만 아무리 부부 싸움을 해도 아빠 밥 세 끼는 꼬박꼬박 챙겨."


이럴 때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노래 가사 한 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맞다. 제발 좀. 밥상 좀 그만 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도대체 엄마에게 밥은 무엇일까, 라는 아주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 그러다 그 답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나, 언제나, 이것이야말로 엄마의 '절대 자존심'이라는 결론.


그럼에도. '아니 말도 안 할 건데... 밥은 왜 하고 밥상은 왜 차리는 걸까.' 내겐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나도 나중에 내 남편에게 이래야 하는 건지. 당장 아파서 펄럭거리는 내 마음 한 줄 잡기도 어려운 상태인데. 남편 먹을 밥상을 마주해야 하는 이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걸까.

물론 엄마의 최선에 왈가왈부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밥'이라는 이유가 단순히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어떤 전유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일 뿐.


"엄마, 나도 엄마처럼 그렇게 하길 원해?"

그리고 엄마 대답은 퍽퍽한 숨을 내뱉게 했다.


"그럼. 네 남편 네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냐. 싸운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밥도 안 줘."


처음에는 엄마의 이 말도 안 되는 대답에 그저 할 말을 잃어 입만 뻐끔, 눈만 꿈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엄마, 내가 만약에 남편이랑 싸웠어. 마음이 상해서 몇 날 며칠이고 남편 밥을 안 차려줬어. 그걸 엄마가 알았어. 어떻게 할 거 같아."

"뭘 어떻게 해.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내가 해줘야지."

"아니, 사위가 전적으로! 뭐 봐 줄 여지가 없이 백 프로 잘못했대도?"

"뭐... 그래서, 이혼할 거냐? 결국 사위놈이 그래도 엄마는 어쩔 수가 없어. 내 딸 위한 거니까."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딸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는 맥락일지. 도대체가... 어떤 맥락으로 이 논리를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나는, 도대체 누가 챙긴담.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챙기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남편을 챙기라는 엄마의 말. 왠지 심장이 아려왔다. 어째서 엄만 엄마를 돌보지 않는 거냐고, 나는 다시 물었다.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그랬다. 그래야 나중에 더 당당하게 할 말이 생기는 거라고.

'밥'이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엄마의 할 말들과 그 어떤 명분들이 생겨나는 건지. 세대 차이이고 엄마의 살아온 방식들에, 어쩐지 마음이 시큰거리는 건 사실이다.

이 말들 속에 그동안의 엄마가 어땠을지 그려졌음으로. 엄마는 엄마 자신의 마음 같은 건 돌아보고 챙길 여력 같은 건 없었을 거였다.

그래서 어쩌면 내 딸에게, 네 마음을 먼저 챙기라는 말보단 그럼에도 '할 도리'는 하면서 마음을 굽히지 말라고 전하는 것만 같았다.

'나'가 주인공이고 '나'가 제일 중요한 존재 1순위인 시대.

어딜 가도 '너'보다는 '나'가 먼저이고 '나'를 먼저 돌보라고 말하는 시대.

엄만 여전히 '나'보다는 '너'를 우선시한다.

엄만 지금도 '나'보다는 '너'를 걱정한다.

엄만 아직도 '나'보다는 '너'를 챙기는 게 속편하다.

그래서 어떤 날엔 복장이 터지고, 눈이 뒤집어질 때도 있다. 답답해서.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엄마를 그냥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지만, 내 엄마는 이 모든 변화에 반응하는 시간이 더디고 느린 사람일뿐이라고. 그냥, 그런 사람일뿐이라고.


밥.

이것은 엄마에게 단순히 표현 못 할 그 무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여전히 이해가 안 되고, 이해 하고 싶지 않은 영역도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시대이고 엄마의 세월이라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그래서 말이지만.


"엄마! 아빠랑 싸웠을 때만큼은 밥 좀 하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