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짜 안 맞아!

by 장해주

엄마는 액션, 나는 로맨스.

엄마는 갈비에 붙은 살, 나는 살코기.

엄마는 속 쌍꺼풀, 나는 겉 쌍꺼풀.

엄마는 흰 피부, 나는 까무잡잡 피부.

내 엄마와 나는 모든 것이 다르다. 성격이며 취향이며 생김새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거의 없다.


물론, 이 세상에 싱크로율 99.9%의 확률로 일치하는 얼굴, 성격, 생각, 목소리는 없다. 결국 '내 마음 같'은 사람 없고 '나랑 똑같'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희열을 느끼는 순간. 나랑 똑같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공통 분모가 있는. 78억의 인구가 존재하는 지구에서 이런 존재를 만난 것에 대한 커다란 기쁨과 짜릿함. 우리는 이걸 두고 '결이 같'다거나 '코드'가 맞다, 라고 표현한다.

어쩌다 만난 남남끼리도 만남의 쾌감이란 게 있는 법인데. 피를 나누고, 삶을 나누고, 몇 십 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내 엄마와 나는, 어쩌면 안 맞아도 이리 안 맞을 수가 있을까. 아니, 안 맞아도 이건 너무나 안 맞는다.

아이러니를 넘어 이해불가, 납득불가 수준이다.

그러니 이 문제야말로 전 인류의 난제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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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엄마의 부엌 살림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외할머니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냄비는 왜 여기에 뒀냐, 양념통은 다른 걸로 바꿔라, 그릇은 또 왜 이렇게 많으냐 등.

듣고 있던 엄마가 진저리를 치며,


"엄마! 내 살림이야. 잔소리 좀 그만해~. 왜 자꾸 딸 살림살이를 뒤져."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너털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엄마도 나한테 그러면서 뭘. 서울에 있는 딸네 집을 방문한 엄마의 첫 마디는 늘 그랬으니까.


"이건 이렇게 치워야 하고 저건 이렇게 둬야 하고..."


이사한 집을 방문해서는... 옷 때문에 방이 터지겠다, 냉장고는 왜 이렇게 텅텅 비었냐, 뭘 해 먹고는 사는 거냐. 엄마 눈에 탐탁지 않은 부분을 꼬집고 또 꼬집고. 딸내미 걱정에 하는 소리인 건 알지만, 같은 소리를 도돌이표로 어느 정도 듣다 보면 스멀스멀 얕은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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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소한 것에서 우리의 '안 맞'는 부분에 대한 감정은 더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된다. 엄마의 잔소리가 조금씩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잔뜩 뾰족한 얼굴이 되어, "이제 그만 좀 해!" 터뜨려버리니까.

이제 엄마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나의 날카로운 반응에 엄마의 레퍼토리가 나올 차례다. 돈 벌어서 옷만 사지 말고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모아라, 성격만 더러워서 누가 널 데리고 가느냐, 내가 여길 안 와야 한다...


"엄마랑 진짜 안 맞아!"

"나도 너랑 징글징글하게 안 맞는다! 어휴 웬수."


그렇게 서로 찌릿한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 나면, 잠시 휴전. 그 시간은 오래지 않아 2차전으로 개시된다.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주던 엄마가 선수를 친다.

지금부터 돈 안 모으면 거지가 된다는 둥, 결혼할 때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느냐는 둥, 철철히 옷만 사입는다는 둥.

이쯤 되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 나는 엄마한테 진짜 바보 딸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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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가 되게 서러웠다. 딸로서가 아니라 요즘 젊은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않고 그저 엄마식 대로, 엄마가 살아온 방식 대로만 내게 일방적으로 쏘는 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결국 폭발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사치나 하고 빚이나 지는 그런 사람 아니다. 엄마랑 나랑 세대가 같은 줄 아느냐. 엄마 때처럼 은행에 돈 넣어놓고 이자만으로 먹고 살던 시대가 아니다. 청년들이 살기에 지금이 얼마나 각박하고 힘든 시대인 줄 알고는 있는 거냐. 밖에 나가서 한 번 물어봐라, 지금 빚 안지고 사는 청년이 몇이나 있나. 요즘은 빚도 능력이다, 능력 안 되는 사람한테 누가 돈이나 꿔주는 줄 아냐고.

내 반박에 엄마가 기함을 토하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는다.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고, 있을 땐 아끼면 되는 거지. 도대체 너는 뭐가 그렇게 사는 게 복잡하냐면서.


이쯤에서 나는 입을 다문다. 지금 이 상황을 더 이어간다는 건 무의미, 라는 결론. 어차피 이 난제는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에. 나와 엄마 사이에 있는 강이 너무 깊고도 넓었다.

서로의 살아온 세대가 다르고, 방식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다르다. 견해를 좁힌다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르다는 걸 그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묵묵히 받아들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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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바란다는 게 무의미해질 때가 있다.

동시대를 살고 있어도, 같은 여자라도, 말이다.

동시대에 살지만, 반대로 우린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고수하며 살아가니까.

같은 여자라도, 자신의 몸에 배인 시대의 향기까지 쉽게 바꿀 수는 없으니까.


내가 엄마가 되고, 나만큼 나이를 먹은 자식과의 대화를 그려본다.

그때의 나는,

내 아이가 바라보는 나는,

그 아이의 눈동자 안에 담긴 나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