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유행이라면서요?
종종 외부 미팅을 나가기 때문에 100% 재택 근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95%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외부 미팅이라고 해도 근처의 카페에서 회사 사람들을 만나는 것 정도가 되니 딱히 부담되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제 외부 미팅도 줄여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예를 들면 화상회의나 전화 같은 수단으로.
재택하니까 좋겠다.
정말 좋다. 하지만 가끔은 회사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사람의 심리가 남의 떡이 더 커보이니까 종종 드는 생각이겠거니, 출퇴근하며 시간을 뺏기던 적을 생각하면 역시 배부른 생각이라 조용히 생각을 집어 넣는다. 재택 근무의 좋은 점과 복에 겨웠지만 나쁜 점도 적당히 한달이 지난 시점에 기록해두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내 생각이 빠짐없이 기록된다.
작업물 공유와 함께 UX 기획, 디자인에 있어서 다른 파트의 사람들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손쉽게, 빠짐없이 기록한다. 기록이 쌓이면 내 무기가 된다. 나중에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 서로 소통이 어긋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회사에서도 공유를 위해 메모하지만 종종 '말'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다.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말에서 소통의 오염이 생기면 복잡해진다. 재택을 하게 된 후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는 글의 소통은 서로가 대화를 하다 감정적이 되거나,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도와준다. 이해가 가지 않는 특정 부분만 찝어서 코멘트할 수 있고, 서로에게 전달해준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아 두고두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팁은 질문, 의견, 자료에 대한 메모 유형을 정해서 서로 다 함께 관리하면 편하다. 예를 들어 질문은 코멘트, 의견은 아예 페이지에 글로 적어서 공유, 자료는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 페이지 링크를 자료 리스트 페이지에 정리 등.
2. 내 집중력을 조절 할 수 있다.
유연근무제를 하는 이유도 집중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유연근무제의 시간은 내 집중도도 있지만 막히는 출퇴근 시간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다. 이처럼 회사 바로 옆에 사는 사람은 드물다.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중에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더 행복해질거라는 생각을 만족시켜주는 업무수단으로 재택근무가 생겼다. 정해진 업무집중 시간을 제외하면 출퇴근에 사용할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집에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카페에 나가 분위기를 즐기며 일을 할 수도 있다. 어깨가 뻐근하거나 허리가 아플 때 스스럼없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다. 내 집중력은 내가 알아서 관리한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챙길 수 있다. 각자의 집중력 방법이 다른데 나는 자리 옮기는 걸 좋아한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바닥에 누워 강아지와 함께 노트북을 보며 작업을 하기도 하고, 근처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집 혹은 카페라도 미묘하게 달라지는 환경은 새로운 자극이 된다
3. 워라밸, 나만의 시간
2번에서 언급했던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워라밸은 더욱 향상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더 하거나 운동을 더 할 수 있다. 나는 재택근무로 돌입하면서 글과 개발 공부에 더욱 집중했다. 물론 체력과 함께 사는 강아지를 위해 산책하는 시간도 더 늘었다. 미묘한 차이의 시간이 더 많은 잠을 자게해 피곤을 풀고, 하고 싶은 걸 도전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1. 기획과 개발과, 디자인의 소통
UX는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야한다. 이런 점에서 재택근무는 사용자, 혹은 테스터로 가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테스트를 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화상미팅을 통해 사용하는 팀원, 테스터를 관찰하는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화면을 공유해 화상채팅을 할 때는 어쩔 수 없는 화질 저하나 노이즈를 감수해야한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소통하기는 회의실에 모여 있는 것과 다르다. 텍스트로 전달되는 건 상대방이 나와 같은 직군의 지식이 깔려있을 때 원활하다. 다른 직군에게 설명을 할 땐 비언어적인 표정, 제스처, 말투를 함께 하며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아니면 애매하게 아는지 즉각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딱닥한 텍스트만 보이고, 화상으로 보이는 모습도 어색하다. 사용성테스트는 물론, 개발을 위한 소통에도 면대면으로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참고로 소통을 위해서, 대략적인 연결만 되고 자잘한 연결이나 효과는 스크린샷을 직접 말로 설명하던 사무실 회의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후엔 아예 프로토타이핑을 녹화해 파일을 공유하게 되었다. 덕분에 피그마 프로토타이핑에서 끝내지 않고 자세한 효과를 위해 프로토파이, 에프터 이펙트 등을 이용해 효과 적용, 공유를 하고 있다.
2. 너 뭐했어? 오늘 작업량이 얼마나 돼?
디자이너의 일의 양을 수치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 '스크린샷 10개 만들기', '프로토타입 연결 다 끝내기.'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순 있지만 사람이 항상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양과 난이도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량을 가지고 있는 직군이라 문서화 될 경우 문서량이 없을 때가 있어 서럽다. 남들은 재택을 하면서 이만큼 했다고 서로 문서 공유를 할 때,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건 겨우 한 두장일 때 조금 눈치가 보인다. 이 디자인을 위해 나는 3시간을 노력했지만 산출물은 겨우 한장이라니. 그것도 산출물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수정과 수정을 거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참 억울하면서 문제를 쉽게 풀어내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
3. 조금 더 멀어진 동료.
옆에 있으면 어제 뭐했는지 물어보고 스몰토크도 하고, 인사이트도 얻는다. 말로 하지 않지만 몸짓과 습관에서 베어나오는 한숨을 잡아내 커피 한 잔 같이하면서 쉴 수도 있게지만 재택은 그런 게 없다. 1:1로 채팅을 할 수도 있지만,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채팅을 하면서 수다를 떠는 건 다르다. 물론 채팅으로도 충분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1. 업무시간
업무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재택근무가 아니라 그냥 초과근무다. 서로가 소통하기 위해 정해진 업무시간에는 집중하고, 다른 사람이 피드백을 준다면 바로바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놀거나, 일을 미루고 밤~새벽에 처리하는 일은 공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회사에서는 굉장히 불편한 태도이다. 내가 당장 업무시간에 기술 혹은 기획의 자문이 필요한데 담당자가 응답이 없다면 사무실의 경우에는 직접 찾아가거나 자리를 확인해 상태를 확인 할 수 있지만 재택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2. 디자이너도 글을 쓸 줄 알아야한다.
남에게 설명하기 위한 글을 쓸 줄 알아야한다. 더이상 직접 보여주고 대화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페이지마다 디스크랩션을 달아 기능과 의도를 설명해 소통해야한다. 평소에도 그랬다면 좋은 습관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천천히 연습하는 게 재택근무를 할 때 유용하다. 재택근무에서는 말과 손짓이 통하지 않는다. 이왕 재택을 한 거 계속 화상미팅을 열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직은 텍스트로 소통이 어려운 부분이나 긴 이야기를 해야할 때, 전문적인 내용이라 텍스트 외에 더 설명이 필요하다면 전화를 하거나 화상미팅, 그것도 어렵다면 장소를 정해 외부 미팅을 하기도 한다.
3. 체력과 일상관리
워라밸은 좋아졌다. 더 늦게 일어날 수 있으니 더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기 쉽다. '이불밖은 위험해'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행복하겠지만 점차 일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고, 업무태만이 되기 쉽다. 회사를 출퇴근하면서는 불가피하게 걷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강제로 정신이 깨는 여정을 거친다면 재택은 그런게 없다. 오히려 집이 일터가 되서 쉽게 생각하다가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질 수 있다. 재택을 할 수록 더 체력과 일상 스케줄 관리를 해야한다.
오래 앉아있는 사람에겐 허리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사무실에서는 회사에서 좋은 의자를 제공해주었겠지만 내 집에는 그만큼 좋은 의자가 없었다. 나는 이참에 큰 마음을 먹고 허먼밀러 의자를 샀다. 허먼밀러를 산 뒤에 행복하게 재택을 하고 있다.(광고 아님)
사실 재택의 가장 큰 장점은 강아지가 참 좋아한다는 거 아닐까? 회사에 출근을 안하니까 정말 좋아한다. 책상에서 업무를 보는 중에 자기는 중형견이면서 어릴 적 작은 몸짓을 기억하는지 안아달라고 투정부린다. 사람이 어쩌겠나, 결국 안아주는거지. 무릎 위에 강아지를 앉히고 업무를 열심히 하다보면 또 강아지는 졸리다가 내 팔에 턱을 올리고 자거나, 책상에 얼굴을 걸치고 잔다. 강아지가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재택근무지만 은연 중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푼다
코로나 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트랜드가 된 재택근무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더 장기간 두고본다면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은 개선할 방법을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겠지. 재택근무를 계속하면서 달라진 생각과 개선방법이 있다면 연달아 적어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