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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3. 2023

농구 좋아하세요?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이 글은, 3월 1일 농구를 배우기 시작해서 4월 15일에 대회를 다녀온 뒤에 남기는 기록으로 농구에 대한 일지.


글의 노래는 루시 - 21세기의 어떤 날을 추천합니다.

https://youtu.be/Rg42mGBDzzQ



서로의 초상권을 위해서 카카오 스티커로 최대한 가려보면서도 대회 끝나고 찍은 사진 남겨보기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

    설날에 부산으로 휴가를 다녀왔고, 거기서 슬램덩크를 처음 봤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궁금해서 갔다가... 일상이 바뀌었다. 슬램덩크 만화책도 다 사고, 농구도 배우고 있다. 영화에서 농구가 뭐길래 그렇게 재밌어하는지 직접 알고 싶었고, 슬슬 혼자만 하는 헬스가 지루해서 새로운 운동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숨고에서 1:1 농구 레슨을 알아보다가 어찌어찌 아는 동생과 같이 2:1 레슨, 그리고 지역 그룹레슨으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대회를?    

주말에 농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두 번쯤 수업을 받고 난 뒤, 코치님이 팀을 이뤄서 대회에 나가볼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같이 농구를 시작한 동생에게서 개인톡이 오기 전까진 아무 생각 없었다. 이제야 농구공을 사고 기본 드리블을 배우고 있는데 대회를 나갈지 고민을 하는 건 마치 렙 1에게 만렙 보스를 잡자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게 더 재밌으니까 한다고 했다.


    코치님께 이전에 레슨을 받던 분들과, 나와 함께 농구를 시작한 분들이 모였다. 유니폼도 맞추고, 등번호도 이야기했다. 등번호는 어떤 번호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번호를 하려고 했다가 선점당해서 다른 번호를 하기도 하고, 원래 하고 싶었던 번호를 가진 분이 번호를 바꾸자 동생이 다시 개인톡으로 번호 비었다고 얼른 바꾸라고 하는 연락이 왔다.




    대회까지는 한 달인데 농구를 배운 지 한 달 되는 사람이 반이 넘었다. 이전부터 농구를 배우는 분들도 있었지만, 다들 처음보고 반 이상은 농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었다. 공통분모는 서로 모르고 농구를 좋아하고 코치님께 농구를 배웠던 사람들이란 것뿐이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연습을 하면서 친해지고, 기본기를 다져나갔다. 레슨을 받기 전에 미리 모여서 이전에 배운 걸 연습하고, 레슨 시간이 끝나고 남아서도 연습했다. 그러다가 배고파서 같이 연습한 분들끼리 야외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기도 했다.

   열심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장비병으로 농구화도 샀다. 원래는 슬램덩크를 좋아하니까, 거기서 나온 농구화를 사려다가 그게... 거기 나온 농구화가 거의 다 남성용이고 착화감도 별로인 것 같아서 그냥 코치님께 추천 받은걸로 샀다. 사이즈 때문에 착화해보려고 했다가 농구화를 다루는 곳이 많이 없어서 그냥 작은걸로 온라인 주문해서 샀다. 어차피 발이 작으니까, 평소에도 어지간한건 다 작은 사이즈 사면 맞았다. 오히려 최소 사이즈를 샀지만 그 사이즈도 작을 때도 있었으니까 운에 맡기고 샀는데 적당했다. 문젠, 내가 너무 대충보고 사서 신발 디자인이 정말... 한짝씩 다른 색감을 가진지 몰랐다. 실물을 보고 좀 당황하고 내외했다. 근데 화려하고 색이 튀어서 나중에 연습 영상을 복습할 때 신발로 나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살면서 골절을 처음 겪었다. 정확히 언제, 왜 골절이 된 건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일단, 그 날은 2:2 연습을 처음 했다. 한 골 겨우 넣어서 이겼다. 근데 연습이 끝나고 손가락이 좀 아프고 붓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 가니 골절이랬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왼손이라서 오른손으로 회사 일을 하는 데는 문제는... 있긴 했지만 업무 자체를 못할 건 아니었다.

    골절 진단과 함께 엑스레이를 보니까 손가락 뼈가 참 신기하고 조각난 게 너무 선명해서 웃겼다. 상황이 웃겼다. 인스타에 올리니까 언니가 놀라서 이상한 짓 좀 그만하라고 전화하기도 했다. 키도 작은 게 무슨 농구냐고. 타격은 받지 않았다. 키가 작은 것도 원래 그랬고, (언니가 보기엔) 이상한 짓은 원래도 많이 해서 그 말도 자주 들었다. 부모님한테만 말하지 말고,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근데, 병원에서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하면서 많이 아프면 그냥 일찍 와도 된다고 했던 게 집에 가서 왜인지 알았다. 골절이고 뼛조각을 보고 난 뒤에야 다시 통증이 제대로 느껴지는 건지 아팠다. 가만있어도 아팠다. 손등도 부어오르고, 손바닥 쪽의 손가락은 푸르게 피멍이... 골절이란 건 이런 거구나. 골절도 처음이라서 이것도 신기하면서 농구 대회는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수비가 재밌어용

    왼손을 못 쓰니까 할 수 있는 게 정말 한정되었다. 벤치에 앉아있거나 나간다고 했던 대회에서 빠지는 건 싫었다. 그래서 왼손을 안 쓰고 할 수 있는 것만 배웠다. 오른손으로만 드리블을 치고, 수비를 위한 스텝을 배우는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팀원이 드리블하면서 돌파하는 걸 막아주는 수비를 하게 되었는데 재밌었다. 공을 뺏고,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게 재밌어서 괜히 적당히 합의된 수비만 했어야 했는데 따라가기도 하고 욕심에 먼저 더 나가서 수비를 하기도 했다.

    작은 키가 이럴 때 좋다. 키 큰 사람들의 공이 높이 있으니까 뺏기 쉬웠다. 굳이 굽히지 않아도 됐다. 아니면 조금만 낮춰도 되었다. 반코트 정도를 지그재그로 드리블 연습하는 분의 1:1 수비를 한 적도 있는데 인터벌과 하체 운동을 해둔 게 도움이 되었다. 당장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금방 회복되어서 연습하고 쉬고, 연습하고를 반복했다.

    피지컬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으니 내가 가진 것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고민했다. 센터 싸움, 골밑 싸움은 나보다 큰 사람들이 해줄 테니까 나는 앞에서 공격을 잘라내거나 볼을 잘 운반해 주면 되겠다. 상대방을 귀찮게만 하면 되겠다. 그런 생각과 실제로도 귀찮게 만드는데서 나오는 재미가 있어서 수비만 하는 상황에서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분들이 공격 연습할 때, 제가 볼 뺏을까요? 수비할까요? 묻고 다녔다. 나중에는 코치님이 마음대로 볼 뺏으라고 해서 정말 열심히 볼을 뺏기 위해서 돌아다녔다.(물론 나도 골 넣는 거 좋아한다. 손 다치기 전에는 골 연습 열심히 했다.)

    코치님은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상대편일 때 정말 귀찮을 거라고 했다. 작고, 발은 빠른데 수비를 좋아하고 언제 왔는지 모를 존재감이 없다가 있는, 그리고 잔머리 쓰는 그런 사람.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서 상대편을 많이 괴롭혀야겠다고 다짐한다.


농구 말고, 다른 농구

    연습만 주야장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하는 농구 말고, 농구 영화를 다 같이 보러 가기도 했다. 경기에 대해서 자세하고,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농구를 배우다 보니까 더 몰입되고 쉽게 이해가 갔다. 심지어 저기 팀... 상태도 우리랑 비슷해서 더 몰입하게 되었다. 저기도 교체 선수풀이 없구나. 우리도 없는데.(왜 우리가 교체 선수가 없는지는 아래에 나온다)

    농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자 농구보다 상대적으로 여자농구의 풀이 적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근데 나만해도 이전까지는 농구, 거기서도 여자 농구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들어본 적도 많지 않았다. 농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찾아봤을 때도 여자 농구, 여자 레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숨고에서 레슨 견적을 요청했을 때도 여자 코치님은 지금 코치님 한 분이었다.


#가보자고  

  다른 팀이랑 연습경기도 해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역시 아직 미숙하구나, 할 게 많구나 느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대회가 일주일 남은 주에는 금요일 오후 11시부터, 통일은 오전, 오후에 다시 농구. 그리고 일요일에도연습했다. 대회가 가까워졌을 때 더 열심히, 누구 하나 싫은 소리 내지 않고 오히려 더 먼저 나와서 연습하고, 레슨 시간이 끝나도 남아서 연습했다. 밤 11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연습은 10시쯤부터 와서 몸을 풀고, 수업이 끝나도 부족한 걸 연습하면서 30분은 더 연습했다. 동생과 집에 와서 씻고 누우니까 두시쯤 되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10시 30분 레슨을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또 농구를 하러 갔다. 가면서 동생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이 상황이 웃기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합숙 훈련 같았다. 에너지바를 먹으면서 운동장(농구코트)으로 가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점심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잠시 서울에 왔다가, 또 오후에는 다시 농구 연습을 하러 갔다. 중간 서울 일정에서도 농구를 같이 하던 분들도 함께하는 일정이라 정말 하루 종일 같이 있었다. 오후 연습도 열심히,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농구 연습의 연속. 누구 하나 힘든 내색 없이 즐겁게 했다.

    손가락 골절이 아직 다 낫지 않아서 (오히려 이때 잘 아물어가다가 다시 벌어졌다고 했다ㅠㅠ) 이때도 수비로 서있거나, 한 손으로 원바운드 패스를 주는 정도만 다른 분들의 훈련을 도와주거나, 스텝 연습 정도만 했다. 혹은 수업 부분 부분을 영상으로 찍어서 다른 팀원들이 복습할 수 있게 도왔다.


   

우리는 북산인가요?

     대회가 있는 주에는 유니폼이 왔다. 등번호 11번으로 온 유니폼은 딱 맞았다. 그리고 열심히 초보들을 어르고 달래서 그래도 코트 위에 설 수 있는 정도를 만든 코치님께 감사해서 슬며시 감사패도 만들어보았다. 단순히 돈을 주고받으면서 레슨을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걸 챙겨주고 서로 열정을 가지고 다양한 일정을 다 같이 소화하다 보니 팀원들과도 한 달 만에 많은 정이 들었다.


    그리고, 대회에 실질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인원이 어느 정도 확정되었다. 정말 우당탕 인원변동이었다. 원래는 없던 일정이 생겨서 대회에 못 나가는 분이 생기고, 내 손가락 골절은 아직 낫지 않았고... 다른 분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스타팅 멤버가 대회 내내(4경기)를 뛰거나 내가 들어가서 5명 중, 한 명은 수비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대회였다.


    경기도 당연히 우당탕탕이 었다. 다른 팀은 다들 1~2년 한 멤버들로 이뤄진 팀이었다. 속공도 빠르고 패스도 잘했다. 우리 팀은 경험을 쌓는다.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걸 해보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승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간에는 다른 팀 코치님이 우리가 지쳐보였는지 멤버를 바꾸라고 했는데, 바꿀 멤버가 없어서 우리 코치님도 울었다고 동료가 전해줬다. 코치님도 계속 괜찮냐고 물어봤지먼 우리는 계속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팀들도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아직 경기 룰과 상황에 미숙한 우리를 위해서 규칙들 중에서 몇 개는 상호협의하에 없애기도 했다. 경기를 하지 않고 대기하는 다른 팀들도 우리의 공격이 성공하면 다 같이 환호해 주었다. 우리가 여러 번 실패 끝에 갓 배운 기술을 할 때도 응원을 해줬다. 경기장 전체가 우리를 응원하는 게 너무 감사하고 즐겁고, 웃겼다. 한 번은 연이은 리바운드 시도를 하다가 결국 골을 넣자 다른 팀 모두가 같이 환호를 해줬다. 대회 내내 그런 크기의 큰 환호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3점 슛을 처음 넣었을 때도. 다들 병아리팀을 응원해 주고, 상대팀은 또 그렇다고 설렁설렁해주지 않았다. 서로가 할 수 있는 예의를 최대한 지키면서 전력을 다했다. 트래시토크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서로 몸싸움을 하면서도 미안하다고 했다.

    많이 배우고 실제로 다른 팀의 경기를 보니까 더 재밌었다. 농구 경기를 직관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진짜 재밌어서 다른 프로 경기도 직관하고 싶단 욕심도 생겼다.


사실 코트 위는 너무 두렵고, 목소리가 안 들렸다.

    손가락 골절 때문에 처음 경기는 스타팅이 아니었다. 윙에 있던 분들이 지치면 종종 교체해 주는 식으로 경기를 뛰다가 오후 경기에서는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스타팅으로 뛰었다(긴장하면 그때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그걸 이 날 겪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코트 위를 스타팅으로, 상대편과 인사하면서 자리를 잡을 땐 떨렸다. 여기에 내가 있어도 되는지 의심이 되었고 손가락도 낫지 않아서 공격은 못하고, 수비도 소극적으로 해야 했다. 그렇다고 팀의 발목은 잡고 싶지 않았다. 도움은 되어야겠고, 연습 경기를 한 번 했지만 이렇게 경기는 처음이고... 배운 대로만 하자. 수비만 하는 거니까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도 경기가 시작하면서 다 잊었다. 공이 움직이는 순간 계속 공을 따라 움직이고, 바라보고 뛰었다.

    공격은 못하니까 상대편의 속공을 끊고, 수비를 할 때 공을 뺏을 수 있으면 뺏었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막히고 말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상대팀을 완벽히 막지는 못해도 일단 따라갔다. 공격하기 위해 드리블하고 오는 공격수의 공을 보다가 가로채기도 했다. 근데 나는 공격을 못하고, 내 앞에는 팀원들이 없었다. 처음에는 눈앞 공만 보이고 넓게 들어오지 않던 경기장이 그때쯤 더 넓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뒤에서 나를 따라오던 팀원에게 공을 패스했다. 나중에야 코치님이 소리치는 게 들리기도 했다. 집에 와서 영상을 보니까 그전에도 많이 내 이름을 불렀는데 못 들었다. 역시 긴장했었다.

    스타팅은 스타팅대로 긴장되고, 벤치에 있다가 교체되었을 땐 그것 나름대로 긴장되었다. 중간에 들어갔을 때는 경기의 흐름에 빨리 익숙해져야 해서 긴장이 되었다.

    어떤 팀은 지역수비가 아니라 1:1 마크를 하는 팀이 있었다. 내 번호를 부르면서 마크하는 게 또 신기하고, 재밌었다.(사실 모든 경기 내내 내게 수비가 붙으면 나는 공격을 못하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하면서 속으로 즐겼다.)

    4경기를 다 나가긴 했다. 1~2경기는 풀코트를 뛴 것 같기도 하고, 몇 경기는 벤치에 있다가 들어가거나 경기 도중에 벤치에서 쉬었다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나름 운동도 했고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이렇게 체력이 안 받쳐준다니...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손가락을 이유로 기본 운동을 게을리한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느꼈다.

    경기가 끝나고 코치님께 감사패를 드렸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마지막에 올스타전처럼 친선경기, 이벤트경기처럼 팀 상관없이 섞어서 경기를 하는 게 있었는데 우리 팀은... 교체멤버도 없이 거의 주전이 모든 경기를 뛴 상태라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떠났다.

    우리끼리 밥을 먹는데, 다들 재밌었고 많은 경험이 되었다고 그랬다. 나도 많은 경험을 했고 즐거웠다. 다음 경기, 대회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서로 5월까지 남은 4월은 몸을 회복하자고 했다. 특히 몇은, 코치님이 아예 레슨을 거부하면서 푹 쉬다 오라고 했다.(그 리스트에는 나도 있었다.) 쉬는 중에 농구하면 다신 안 껴주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했다ㅠㅠ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슬램덩크에서 나온 대사를 지금 그대로 쓰고 싶다. 손가락 골절이라서 아예 농구 자체를 안 하는 게 맞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분명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지금 쉬고, 후일을 기다렸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회가 겹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대회가 끝나면 그때 푹 쉬면 된다고 생각해서 계속 움직이고, 손가락이 차츰 붙어가다가 다시 떨어지길 하는 걸 감수했다. 말 그대로 업보가 돌아오겠지만 지금 당장이 나의 행복이었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실제로 많은 걸 얻기도 했다. 동생과 이야기하면서 다들 열정맨이라고,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모였냐고 할 때가 많았다. 서로 농구하고 싶어 하고, 농구만 생각한다. 서로를 응원해 주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면서 다시 같이 도전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너무 좋다. 그리고 못해도 잘한다고 해주는 코치님도(ㅋㅋㅋ)

    이 글을 쓰는 오늘, 농구를 안 한지 정확히 일주일 되는데 체감은 한 달을 못한 기분이다(농구가 하고 싶어요.)농구공을 튕기고, 코트를 달릴 때 즐겁다. 힘들기도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달리는 그 시간만큼은 다른 고민이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오로지 공과 사람에 집중하고 목표는 하나라서 흔들림 없이 집중할 수 있다. 팀원을 믿고 움직이는 것도 재밌다. 머리를 쓰면서도 망설임은 없어야 하고, 여유를 갖고 주변을 넓게 보아야 한다. 판단은 신속히, 정확히. 어떻게 보면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운동이지만 그만큼 목표를 이뤘을 땐, 쾌감도 넘친다. 개인의 한계를 계속 돌파하면서 팀 전체의 성장도 이뤄난다.

    나도 팀원이 믿어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지금 업으로 삼고 있는 PM과 같지 않나?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걸 서로 믿고 진행하다 보면 목적을 이루고 행복해하는 것. 인생이란 게 그런 거겠지?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즐겁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다들 재밌는 농구를 시작하고, 농구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얼른 손가락이 다 낫고, 5월이 와서 다시 농굴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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