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다시 읽다 13 – 원소
삼국지 영웅들이 세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기업의 창업 유형에 비유해 보면 재미있다. 유비는 시장의 작은 노점에서 출발한 형태이고 조조는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부모의 가산을 털어서 작은 가게를 내고 키운 형태, 손권은 거의 틀이 잡힌 기업을 승계한 형태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원소는 조조처럼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바로 중소기업을 인수해서 시작한 셈이다. 그런 다음 주변을 하나씩 흡수하며 빠르게 체격을 키워갔다.
원소는 한복의 서주를 빼앗은 뒤 이를 발판으로 조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재를 영입하려고 노력한다. 당시 원소는 선두주자였다. 선두 조직은 이점이 많다. 우선 인재 모으기가 쉽다. 초기에 영입한 핵심 스텝이 전풍과 저수다.
전풍은 성격이 곧고 원칙에 충실하며 실무 중심적이었다. 반면 저수는 ‘천하 이분계(天下二分計), 즉 흑산적 장연을 토벌하고 인근의 4주(기주, 유주, 청주, 병주)를 병합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천자를 영입한다면 가히 패업을 이룰 수 있다’라는 계책을 제시하면서 합류했다. 이 계책은 당시 주요 정세가 장안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상황을 매우 통찰력 있게 파악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저수의 전략대로 원소는 주변의 4주 점령에 집중한다. 그런데 천자 영입은 기회가 와도 무시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는 사이 조조가 천자를 차지해 버렸고, 이는 훗날 조조의 큰 강점이 된다. 어찌 되었건 원소는 주변 4주를 점령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여 대세가 되었다. 장안의 벼슬아치와 조조의 부하들도 몰래몰래 원소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정도였다. 차기 대권주자와 연줄을 만들려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4주 확보 후 세력 확장의 첫 단계는 공손찬 제거였다. 그러면서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군량을 보내달라며 자극한다. 조조는 아직 맞설 힘이 되지 않아 화만 내고 있었는데 원소 진영에 갔다가 전향해 온 곽가(일부는 순욱 또는 정욱이라고 함)가 원소를 이길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와 향후 전략 방향을 제시하며 조조를 격려한다. 곽가의 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소는 허례허식을 좋아하나 승상은 순리에 따라 대합니다. 둘째, 원소는 천자를 거스른 역적이나 승상은 천자를 받드는 사람입니다. 셋째, 원소의 정치는 문란하나 승상은 법으로 다스립니다. 넷째, 원소는 겉으로 대범한 척하나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친척들만 신용하나 승상은 재주에 따라 사람을 씁니다. 다섯째, 원소는 모략을 즐기면서도 결단력이 없으나 승상은 계책 실행에 신속합니다. 여섯째, 원소는 명성 있는 자만 주위에 두려 하나 승상은 참다운 인재를 대합니다. 일곱째, 원소는 남의 눈에 띄게 자랑하나 승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덟째, 원소는 중상모략에 쉽게 흔들리나 승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홉째, 원소는 옳고 그름이 수시로 변하나 승상은 법 집행이 엄하고 밝습니다. 열째, 원소는 허세를 좋아하고 병법을 소홀히 하나 승상은 병법과 용병술이 뛰어나십니다”
곽가의 평가는 매우 종합적이고 정확했다. 곽가가 제시한 전략 방향에 따라 장차 후환이 될 여포와 유비를 먼저 정벌하기로 한다. 다급해진 유비가 원소에게 도움을 청하고 원소가 군을 이끌고 출전하면서 원소와 조조가 처음 맞붙은 ‘여양 전투’가 시작된다.
그런데 막상 영양에서 마주한 두 진영은 두어 달 이상을 대치만 한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원소군이 이상하게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원소 진영 내부에 있었다. 당시 원소군을 지휘한 사람은 심배 장군이었는데 그것을 모사 허유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모사 중 수장 격인 저수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삐져 있었다.
전쟁 중인 군대 내부에 갈등이 있다? 전군이 집중해서 힘을 모아야 하는데 최고 지휘 계층이 이 모양이라면 병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변변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원소 진영이 막장드라마를 벌이는 동안 조조는 후방을 위협할지도 모를 유방을 먼저 공격한다. 그러자 이 정보를 입수한 전풍이 급히 달려와서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느라 근거지 허도의 방어가 약해졌을 테니 절호의 기회”라며 허도 공격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소가 미적거렸다. 막내아들이 아파서 병간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조조가 유비 토벌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상황은 달라졌고 절호의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원소와 조조의 첫 대결에서 조조는 위협이 되는 여포와 유비를 모두 제거하는 소득을 거두었으나 원소는 무게만 잡고 얻은 것 하나 없이 전쟁 비용을 낭비하며 조직 내 불화만 키운 채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계속)
<2021.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