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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May 22. 2021

너는 넘치도록 매력적이란다.

MZ 딸에게 쓰는 꼰대 아빠 이야기 11 – 매력에 대하여

연애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조금 엉뚱해지기도 한다. 황당한 생각을 하고 어이없는 행동도 한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냐고 물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딸이 또 물었다.

“아빠, 어떤 여자가 매력 있어?”     


또 돌직구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남자친구와 좀 가까워지긴 했는데 처음과 달리 관심이 적어진 것인지 덜 다이내믹하고 심심해졌다며,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 내가 덜 매력적이라서 처음 보였던 관심이나 열정이 사라졌나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가만 보니 딸은 자기가 매력 없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있는지도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눈에 딸은 매우 매력적이다. 주관 뚜렷하고 맡은 일 잘 해내고 인생의 방향도 분명하다. 겸손하며 모르면 배워서라도 끝까지 해내는 태도에 현대사회 프로페셔널의 조건도 잘 갖추었다. 건강하고 예쁘고 심술 궂지 않으며 주위를 잘 보살피는 품성도 있다.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서 가끔은 소심해지고 너무 자신을 낮출 때도 있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딸의 하소연에서 그런 면모가 살짝 느껴진다. 자신이 매력 없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아마 그 때문일 것 같다.     


그런데, 매력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일타강사처럼 알려줄 사람이 있을까? 매력은 그 자체가 주관적이며 상황과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딸에게 ‘글쎄다~~’라며 외면하고 물러서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순간 어릴 적 딸이 “나 크면 아빠하고 결혼할 거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리고 지금 성인이 된 딸은 볼수록 제 엄마와 매우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연애할 때 내가 아내에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를 이야기해주면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대학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아내를 떠올려봤다.


1. 연보라색 수국이었다

처음 본 날, 연보라 투피스 정장의 아내는 한 송이 수국 같았다. 신입생환영회에서 처음 봤던 아내의 말과 행동, 표정에는 예쁨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내 눈을 끌어당겨 떠나지 못하게 붙든 것은 밝으면서도 과하지 않는 싱싱한 생명력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과 있으면 나도 더불어 싱싱해질 것 같았다.     


2. 귀 기울이고 내 편이 되었고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를 계속 끌어당긴 것은 아내의 시선과 조용한 미소였다. 아내는 옅게 미소 지으며 내 말에 몰입했고 허풍을 떨어도 가로막거나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실력으로 나를 이기기보다는 나를 도우려고 했다. 먼저 앞서가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나는 이 사람 앞에서 더 커지고 더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3. 생각지 못한 내 주변까지 챙기는 섬세함과 대범함, 그리고 과감함.

아내가 처음 가족들에게 인사하려고 고향에 간 날, 누님댁에서 조카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당시 조카들은 5살과 7살. 5살 조카가 밥을 남겼다. 긴 시간 여행으로 배가 고팠던 아내의 밥이 조금 모자랐다. 누나가 밥을 더 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괜찮다더니 주저하지 않고 조카가 남긴 밥그릇을 집어 들었다. 순간 누님과 어머니, 매형까지 조금 놀라며 서로 바라보고 낮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흔 살을 넘긴 조카들은 아직도 숙모가 천사 같았다고 한다. 

내가 심하게 아파 좌절했을 때도 아내가 더 희망적이었고 4살 밑이면서도 더 어른스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람은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는 마음이 커졌다.     


4. 항상 같았고 항상 새로웠다.

연애할 때 만남은 기쁨 그 자체였다. 만날 때마다 작은 놀라움이 숨어 있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차림과 용모였어도 어느 구석인가 작은 부분이 달라져 있어서 하루하루 새로운 의미와 느낌으로 울렁인 데이트였다. 그렇게 섬세하고 소중하게 만남을 준비하고 가꾸어서 지금의 행복이 된 것 같다. 그런 아내를 만난 나는 행운의 사람이다.     


매력(魅力), 한자로는 도깨비가 잡아당기는 힘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을 말한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도깨비가 잡아당기나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남녀 사이의 매력을 생물학적 본능이 강하게 작용한 이끌림이라고 이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섹스어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가 보다. 그런데 만일 매력이 주로 섹스어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처음에는 강하게 이끌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는 것이라면 매력은 자극 또는 현혹에 가까운 것일까. 아닌 것같다. 서로를 오래 붙들어주고 관계를 키워서 행복의 출발점을 만들어주는 매력은 외모와 같은 외적 요소와 성격, 태도, 삶의 자세와 같은 내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지고 밖으로 스며 나와서 꽃의 향기처럼 퍼지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을까 염려하는 딸에게 너의 그 염려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딸아, 너는 지금 너무도 충분히 매력적이란다. 그 매력은 네가 건강함과 신선함, 유능함과 자신감을 키우면 더 크게 자라서 짙고 넓은 향기를 펼칠 것이란다.

     

                                                                  <강한진  hjkangmg@hanmail.net  010-6657-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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