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쪼~금 긴 메모 25

용이 되려다 지친 너에게

by 김현정

숲에서 악명 높은 구렁이 미르는 또다시 사자가 숲 속 왕이 된 데 분노해, 힘없는 생쥐를 붙잡고 괴롭힙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생쥐는 기지를 발휘해 “미르 님은 잃어버린 여의주만 찾으면 용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꾸며냅니다. 미르는 그 말에 속아 넘어가,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고, 바다 깊은 곳까지 헤엄치며, 끝내 불길 속 아궁이로까지 들어갑니다.


『초등 문해력을 부탁해』 중 「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




엄마가 기억하는 참 행복했던 시간이 있어.

그중 일부는,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3년의 시간 속에 담겨 있단다.

아이들의 말과 표정을 매일 마주하던 그 시절,

엄마는 ‘순수함’이라는 게 어떤 감정인지, 처음으로 깊이 느껴봤어.

그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유독 마음에 남아.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표정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단다.

그 아이는 ‘이무기 이야기’를 참 좋아했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이야기.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였는데도, 계속 들려달라고 졸랐지.

“선생님, 이무기 그림도 보여주세요.”

그래서 나는 이무기 이미지를 하나 찾아 보여줬단다.

그걸 본 아이가 갑자기 말했지.


“나, 이무기 되고 싶어요!”


순간 엄마는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편이 조금 걱정됐어.


‘이무기보다는 용이 되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이 말을 부모님이 들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지.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어.

‘이건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이니까.’

굳이 아이의 마음을 고쳐 잡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이무기를 좋아했던 일도 잊어버릴 텐데 말이야.

그래서 그냥, 그 순간 그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싶었단다.


하지만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부탁하셨어.


“앞으로 제 아이한테 이무기 이야기는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왜 하필 이무기일까.

왜 우리 아이는 용이 아니라, 용이 되지 못한 존재에 끌리는 걸까?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를 나이인데, 벌써부터 뭔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마음을 주는 게 불안해.’


엄마도 아이를 키워본 부모로서,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어서, 조심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더라.


왜 우리는 아직 ‘되는 중’인 존재를 불편하게 여길까?

왜 ‘성공’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 동화에 구렁이 ‘미르’라는 캐릭터가 나와.

매번 숲의 왕이 되지 못한 미르는 결국 가장 약한 생쥐에게 분노를 쏟으며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 모습은 SNS 속 '이미 용이 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괜히 작아지고, 초조해지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모습을 떠올리며 구상했어.


이어서, 화풀이 대상이 되어 죽을 위기에 놓인 생쥐가 살기 위해 내뱉은 거짓말.


“너도 용이 될 수 있어”


구렁이 미르는 그 말을 믿고 모든 걸 걸고 달려들지.

구슬을 물고 높은 나무에 오르고,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고,

심지어 아궁이 속 불길에까지 몸을 던지지.

옆에서 방울뱀 친구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어.


‘지금 이 고통만 견디면 언젠가 용이 될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스스로 아궁이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물론 현실에서는 누구를 직접 원망하진 않겠지만,

그 불편한 감정이 자꾸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일이 많지 않니?


나는 「생쥐와 구렁이의 지혜 대결」 이야기를 통해 내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

왜 구렁이 미르는 초등학생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시도를 하면서 스스로 고통을 쌓아가는 걸까?

만일, 독자가 동화 속 미르에게 ‘너는 왜 그토록 용이 되고 싶었냐’고 인터뷰를 한다면, 구렁이 미르는 그 이유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말하지 못할 거야.

처음부터 용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가 꿈꿨던 ‘용’이라는 존재도 사실 생쥐가 불어넣은 허상의 이미지였으니까.


돌이켜보면, 나 조차도 내가 만들어낸 구렁이 캐릭터 미르처럼 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SNS도 해보면서

남들처럼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적이 많았지.


그런데 요즘은 문득,

그 아이가 왜 이무기를 좋아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돼.

어쩌면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용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는 이무기를 좋아했던 건지도 몰라.

그 아이가 지닌 순수함이 오히려 진실을 꿰뚫어 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되레 어른인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아이들의 순수함과 지혜를 잃게 만들고, 자신을 혹사하라고 부추겨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해.


그래서 이제는 엄마도,

그 아이처럼 이무기를 좋아해 보려고 해.


용도 멋지지만,

이무기나 구렁이도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충분히 괜찮은 존재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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