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편지
오늘 새벽 3시 47분 나는 처음으로 ‘춥다’는 혼잣말을 했어. 거실에 나와 잠옷 위에 옷을 입었지. 거실문을 닫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볼까 하고 앉았어. 실은 모든 것이 나에겐 놀라운 일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춥다 느낀 것도 무엇보다 일어나 ‘써야겠다’ 생각한 것도. 날씨도 내 마음도 변했구나 느껴지는 새벽이야.
올여름도 진짜 더웠지? 그리고 너무 습했고. ‘완전 동남아야’라고 여러 번 말한 것 같아. 나중엔 동남아 사람들도 말할까? ‘완전 한국이야’라고.
나는 생각해 이제 여름은 바깥에만 있다고. 우리는 전기 요금과 한 계절을 맞바꿀 수 있잖아. 폭염을 사무실에서 집에서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 아래 바라만 보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 아빠는 여전히 뙤약볕 아래서 쓰레기를 줍고, 가축은 폐사하고, 밭에서 콩대를 뽑는 일을 하던 박모 할머니는 열사병으로 숨졌어. 더위에도 가난은 있는 걸까. 춥다로 시작해 가난으로 이어지는 이 두 문단은 뭘까. 글은 참 신기하지.
너는 그사이 첫 책을 냈고 나는 그사이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지. 너는 글을 쓰느라 나는 우느라 바빴던 날들이었다. 우는 것도 바쁘게 하고 나면 끝나나 봐. 이제 나는 아침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울지 않아. 참 다행이지. 내가 나의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낸 우울에 미쳐 날뛸 때 붙들어 줘서 고마워. 그때마다 누를 수 있는 통화버튼이 있어 견딜 수 있었어. 휴대폰 위엔 항상 네 이름이 떠 있었지.
며칠 전 너와 함께 마셨던 낮술이 나를 구원했어. 예전에 우린 밤사이 마셨다면 이젠 ‘낮사이’ 마시는구나. 나의 저질 체력과 아이 때문에 밤늦게 새벽까지 고주망태가 되던 우리는 낮맥을 마시고 똑바로 집에 걸어 들어가게 되었어. 아무렴 어떠니 우리의 대화는 한낮에도 깜깜할 수 있고 우리의 술은 언제나 달고 맛있으니 무슨 상관이람. 우리가 갔던 맥줏집 앞에도 적혀있었잖아. ‘일찍 마시는 자가 한잔 더 마신다’ 계산할 때 사장님이 8천 원짜리 감튀 무료 쿠폰을 주셨으니 어쩔 수 없이 또 가야겠다. 그치?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어찌하게 만들더라. 밤맥이 힘드니 낮맥을 마시고, 우울이 사라지지 않으니 우울과 함께 살고, 그러니 나는 지금 당장 다시 태어날 수 없으므로 나로 잘 지내야 하는 거겠지. 어찌어찌 넘어가고 지나가고 그렇게 살아가고. 하지만 알면서도 우린 자주 어찌할 수 없는 일들 앞에 무너지잖아. 어쩔 수 없는 일의 해결 방법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걸 텐데 나도 그게 참 힘들었어. 밤맥을 그리워하고, 우울과 못 살겠어서 발버둥 치고, 당장 다시 태어나거나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그 용납을 연습해 보려고 해. 어쩌라고? 나도 이렇게 생겨 먹은걸. (이렇게 하면 되니?)
네가 준 너의 책 저자 싸인 본에 적었지. ‘다음엔 네 차례야’라고. 3년 전 내가 책을 내고, 얼마 전 네가 책을 내고. 그다음으로 다시 내가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을까? 내 차례가 올까? 일단 써볼게.
그러려면 이 잡담 같은 편지는 집어치우고 내 글을 써야겠다. (갑자기?) 너도 알겠지만 출산 한 이후로 일과 육아에 찌들어 있는 나는, 이 고요와 글발이 너무나 드물고 어렵거든. 근데 많이 내려놨어. 무언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고 끊어지는 건 아니라 믿고 싶거든. 뜨문뜨문 쓰지 뭐. 난 알아. 내 글을 써야겠다며 이 글을 급 마무리 짓지만, 글이 끝나면 글발도 끝나고 난 잠들 거라는 걸.
어쩌라고? 졸린걸. (이렇게 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