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고'와 '죽고' 사이, 눈물 가득했던 밤
아이를 낳고 죽고 싶었다.
‘낳고’와 ‘죽고’ 사이에 눈물 가득한 수많은 밤이 흘렀다. 나는 아이를 낳고 너무나 신기했고, 행복했고, 기뻤고, 막막했고, 슬펐고, 아팠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고, 괴로웠고, 그리고 죽고 싶기도 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옆에 죽음을 생각하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매일 나를 갈아 넣어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 고통이었다. 아이가 피어나는 만큼 나는 사그라들었다. 나도 한때 꽃이었었다. 그 생각에 눈물만 났다.
아이는 실컷 먹었고, 줄곧 잤고, 마냥 울었다. 나는 겨우 먹었고, 설핏 잤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배부르게 아이를 먹이고 난 후 싱크대 앞에 서서 국에 밥을 말아 몇 숟가락을 급하게 삼켰고, 똥오줌 가득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난 후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아이를 바라보며 급하게 볼일을 봤다. 내려놓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앞에서 모든 일이 조바심 났고 불편했다.
왼팔로는 항상 아이를 안았고, 오른팔로는 젖병과 청소기, 손수건과 빨랫감을 번갈아 집었다. 두 손으로 안아도 무겁고 불안한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서 남은 한 손으로 모든 걸 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잠깐 잠이 들면 그제야 내려두고 소리 내지 않고 빠르고 바쁘게 남은 집안일을 했다.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고 불가능했다. 씻지 못한 얼굴에 아이 침이 가득 묻은 휘늘어진 옷을 입은 나는 마음마저 얼룩지고 처져버렸다. 나날이 지쳐갔다.
도저히 이유를 모른 채 한없이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나도 따라 통곡했다. 온종일 말 못 하는 갓난쟁이 앞에서 혼잣말을 쏟아내며 누군가와 제대로 된 대화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먹이고 재우고 달래는 하루가 무한히 반복됐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시계는 돌아가는데 시간은 멈춰 있는 듯했다.
집안은 감옥 같았다. 현관문 밖을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햇살이 좋아도,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공기가 맑아도, 집안에서 아이 얼굴만 내내 바라봐야 했다. 그날그날의 햇살, 비, 구름, 바람, 기온은 나와 무관했다. 아이가 잠든 새벽 그 문을 열고 나가 몇 발자국 걸어보며 한꺼번에 숨을 몰아쉬고는 얼른 들어오기도 했다. 언제든 열 수 있는 문이었는데 마음껏 드나들 수 없었다. 끊임없이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곁을 떠날 수 없어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 세상의 공기는 무한한데 내가 들이마실 수 있는 바깥공기는 너무나 적었다. 독박육아를 하며 집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감상이 아닌 슬픔이 되었다.
산후통에 내 모든 관절은 고통이었다. 손가락 마디부터 발가락까지 온몸의 모든 뼈가 삭아버린 듯했다. 아이를 낳는 데는 몇 시간이 걸렸을 뿐인데 몸의 세월은 30년쯤 흘러있었다. 아이는 자라려면 아직 까마득한데 나의 쇠약은 바싹 와있었다. 팔목과 발목, 허리와 무릎에 보호대를 감싸도 내 몸은 지탱되지 못했다. 날로 무거워지는 아이를 나날이 약해지는 내가 수시로 들어 올려야 했다. 반복적으로 들어 올려도 단련되지 못했다. 매번 아팠다. 몸의 회복은 멀어지고 신음과 한숨은 깊어져 갔다. 쉴 틈 없고 여유 없는 이런 하루들이 계속 반복되니 죽음을 생각할 만큼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죽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이 너무 괴로워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커버린 몇 년 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길 바랐지만, 어제보다 포동포동해진 하루 치의 살이 차오른 내 새끼를 보면 쑥쑥 크는 것이 못내 아쉬워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말 못 하는 아이 앞에서 애가 타고 갑갑해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걸 원하는지 말해줬으면 싶다가도, 날로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옹알이 소리를 들으며 아이의 첫 언어와 표현을 잘 해석해 답해주고 싶었다.
내내 보채고 울고 찡찡거려 시달리다 지쳐 화가 나려 해도, 입을 벌리고 밝게 웃는 아이의 표정 하나에 나도 따라 순식간에 환해지곤 했다. 깐깐하고 복잡하고 어려웠던 내가 아이 앞에선 뭐든 쉬웠다.
내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볼 때면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흘러, 울다가 웃다가 지긋이 바라봤다가 지어야 할 표정이 많았다. 밀려오는 감정이 넘쳐났고, 몰려드는 생각이 가득했다. 절로 글이 써졌다. 뭐라도 쓰고 싶었다. 아이의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 잘 기록해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아이의 자람을 위해 내 늙음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 내 미약이 당연한 듯 보였다. 나는 많이 아파도 아이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는 나의 고통이자 환희, 눈물이자 웃음, 내 모든 기분과 마음이었다. 사랑이면서도 사랑만은 아닌 어떤 것. 새롭고 무한한 이 기운을 나는 무어라 이름 붙어야 할지 몰랐다. 이름 모를 이 마음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다가도 결국 길이길이 건강해지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졌다. 아이와 함께.
아가야. 삶은 나에게 이미 익숙해진 것이었는데 갑자기 새로운 생을 살게 하는 네가 나는 두려우면서도 기쁘다. 나도 너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났으니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생을 너처럼 힘껏 먹고 자지러지게 울며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내가 너를 태어나게 했으니 내가 너를 살아가게 해야 한다.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내가 엄마 되기를 선택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분명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고 나의 몫이다. 그러니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숨을 몰아쉬고 그래. 내뱉고 다시 마음먹어야 한다.
앞으로 우린 같이 자랄 것이고, 함께 기쁠 것이며, 서로 슬플 것이다. 우리 앞에 여러 가지인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뭐든 겪고 어떻게든 하며 생을 보내자. 그렇게 기꺼이 엄마와 딸이, 부모와 자식이 되어보자. 잘살아 보자.
이제 나는 아이를 낳고 살고 싶어졌다. 아주 잘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