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던 때에, 네 또는 흐으음 이라고 대답하기가, 심지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아이가 백일째 되던 날 오랜만에 아는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잘 지내냐고. 몸은 좀 괜찮냐고. 나는 한참 동안 문자 속 ‘잘 지내요?’ 네 글자를 바라보며 답하지 못했다. 그 물음은 나에게 제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대답 대신 그 동생의 이름만 겨우 부르며 말 줄임표를 찍어 답문을 보냈다. 그랬더니 바로 이어 동생이 묻는다.
“언니 할 말 많은데 말할 시간도 힘도 없죠?”
세 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동생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이미 겪은 사람의 말.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누군가의 말은 항상 내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도 정확하게 말과 글로 먼저 얘기해 주었다. 지친 나는 그저 ‘응’이라고 한 글자만 적으면 되었다. 긍정할 수 있는 대답을 하게 하는 질문이 고마웠다.
그때 당시 나는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의 연락이 참 무거웠다. 나에게 복잡한 질문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어올 뿐인데 ‘잘 지내냐’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난감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그저 멍하니 육아를 반복하는 날들인데 그 반복 속에 엄청난 고됨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날들을 도저히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 나는 스치는 누군가의 작은 인사에도 눈물이 터지고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상태였다. 온전하지 못하다는 건 말 한마디에도 허물어져 버릴 수 있는 거였다.
아이를 낳고 육체적으로 가장 고됐던 3개월. 그 석 달의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출산 후 백일의 서사는 너무 길었다. 처음 살아보는 석 달이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얘기해야 할지 답답했다. 망연자실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앞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엄두가 나지 않을 때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막연함이었다.
대화도 의지와 힘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정말 말할 시간도 힘도 없는 나는 할 말이 너무 많지만, 매번 말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니 번번이 지인들의 연락에 대답을 망설이다 답하지 못했다. 분출되지 못한 고단은 내 안에 쌓여 모든 의욕을 흡수했다. 아이를 끌어안고 점점 고립되어 갔다. 출산을 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과 세상과 단절되는 것만 같았다. 그저 지치고 지치고 지치는 날들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어려움과 힘겨움, 억울함은 이렇게 지치고, 귀찮고, 고단한 상태 앞에 사라지고 만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법을 몰라서 결국 자책으로 결론짓는다. 누구나 다 하는 건데 나만 유별난 것은 아닌지, 누군가는 나보다 더한 시간을 살았을 텐데 나만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그런 책망이 나를 무너뜨린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나아지지 못한 채 반복된다. ‘육아’의 영역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그렇게 흘러간 엄마의 시간은 기록되어야 한다. 받아들여지고 회복되기 위해서. 지금 당신이 느끼는 아이에 대한 ‘분노와 애정’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맞장구쳐주어야 한다. 엄마 작가와 엄마 독자들이 서로에게 ‘나도 그랬다’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는 항상 애쓰고 허덕거리며 육아와 일을 해내면서도 결국 자책하고야 마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육아’라는 단어 앞에 할 말과 감정과 마음이 한 가지인 엄마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엄마도 없다. ‘엄마 작가’가 된 내가 힘들지만 힘써 글을 쓰는 이유다. 아기띠 매고 한 줄 쓰고, 아기 잠들면 한 문단 쓰고, 아기 분유 먹이면서 머리로 퇴고하고, 피곤과 잠을 이겨가며 그렇게 글 한 편을 더디게 그리고 꾸준히 썼다.
복잡하고 지난한 엄마의 시간들을 애써 기억해 기록한다. 이 흔적이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을 거치고 있을 엄마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성장하기를 바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생명은 태어나고 엄마는 시작된다. 나는 아이를 재우고 또 한 줄의 글을 쓴다. 아이가 크는 시간 동안 한 줄은 한 문단이, 한 문단은 한 편의 글로 자랄 것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의 수만큼 이 세상에 내놓아져야 할 이야기들.
출산이 출간으로 이어지는 마음으로 엄마의 시간을 힘써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