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회복시키고, 일은 복귀하자.
산후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산후’니까 이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산전의 상태로 회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를 낳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가장 많이 변했고 힘들어했던 게 무언인지 먼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많이 변한 건 ‘몸’이었다. 안 아픈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린 내 몸. 움직일 기운도 없고 여기저기가 다 아프니 보약과 진통제, 수액과 파스에 의지한 채 자주 누워만 있었다. 사실 무겁고 아픈 몸으로는 누워있는 게 아니라 쓰러져 있는 거였다.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응시하다 보면 고통은 더 세밀하고 강하게 느껴졌고 삶의 의욕도 함께 널브러졌다. 오랫동안 내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축 처져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가라앉아 있는 시간을 살았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 내가 바랐던 건 단 하나였다. 내가 이 우울에 잠식되지 않고 질려버리길. 그래서 끊임없이 이 우울을 싫어했다. 계속 계속 싫어하다 보면 넌더리 나겠지. 정 떨어지고 지긋지긋해지겠지. 그러면 이 우울에서 달아날 수도 있겠지 싶었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나는 이 우울이 지겨워졌고, 세상에 끝도 없는 건 우주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늘어진 마음을 다잡고 침대에서 일어나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은 저 멀리 어딘가도 집 밖도 아닌 화장실이었다. 화장실로 가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자. 다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생각이 아닌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달래질 때가 많았다. 부러 거품을 많이 내, 내 몸 구석구석을 오래오래 문지르려고 했다. 아픈 내 몸을 어루만지며 쓰다듬고 살폈다. 바디워시와 뜨거운 물로 내가 나를 달랬다. 적어도 그동안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씻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또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지 않고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집중해 맛있는 걸 오래오래 먹으려고 했다. ‘뭐가 먹고 싶어?’ 내가 나에게 자주 물었고, ‘나 이게 먹고 싶어’ 내가 남편에게 자주 말했다. 뜨끈하고 제철인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웃음이 낫고, 먹고 난 후에는 기운이 났다.
점점 일상의 자극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늘렸다. 아파서 누워 울기만 했던 내가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몸도 맘도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던 내가 운동화를 신고 집 앞을 걷고, 마음을 닫고 입을 다물었던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하고. 씻고, 먹고, 걷고, 말하는 감각에 집중하는 동안 우울은 어김없이 옅어지거나 잠시 잊혔다.
물론 우울이 심했을 때는 이런 것들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울고 울고 또 울다가 눈물을 닦으러 세수하러 가는 것부터 마음먹어야 한다. 처음부터 우울증을 극복한다고 운동부터 하려 하지 말고, 침대에서 화장실로 걸어 나가는 것부터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우울을 좋아하거나 익숙해해서는 안 된다. 우울 극복에도 감당 가능한 범위와 순서가 있었다.
가장 많이 힘들었던 건 ‘일’이었다. 출산 전 10년 차 아나운서였고, 막 첫 책을 출간해 작가가 된 나는 말하고 쓰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오랜 경력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고 새로 시작한 일도 잘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출산은 나에게 모든 걸 차치하고 엄마가 되라고 했다. 아이를 낳았으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고 예상은 했지만, 그 상실과 공백 앞에 많이 두려웠다. 엄마로 사는 건 나의 선택이었지만, 엄마로만 사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프리랜서였기에 간간이 들어오는 일도 하고 드문드문 글도 썼지만, 항상 육아에 밀려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나는 무럭무럭 늙어가는 것 같고. 이렇게 닳고 닳아 내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제일 힘이 났더라? 나는 언제 가장 반짝였더라? 그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힘이 났지. 힘이 나야 힘을 내서 내 새끼 잘 키울 수 있지. 몸은 회복시키고 일은 복귀하자. 나는 아나운서이자 작가, 선생님 그리고 엄마다. 나에게 상기시켰다.
임신 전 나갔던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연락해 강의를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에서 학원까지 왕복 4시간 가까운 거리가 엄두가 안 났지만 먼 거리보다 당장의 일이 더 급했다. 하루 일하고 오면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 전엔 아프면 쉬면 됐지만, 이젠 아프다고 아이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으니까. 그래도 약 먹고 다시 일했다. 선생님이 되어 기 받고, 받은 기로 아이 똥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더디게 내 글도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글을 한 달 가까이 걸려 쓰고 나면 돈을 받는 것도, 어딘가에 내놓아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써진다는 건 무너진 내가 복구됐다는 증거 같았다. 허물어진 마음을 쓰자 내가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쓰기 시작하며 다짐했다. 나는 대작가가 되려고 쓰는 게 아니라 앞으로 오랫동안 작가로 살고 싶어 쓰는 거라고. 쓰고 읽는 동안에는 엄마가 아니라, 내 글의 작가이자 독자가 되었다. 그게 좋아 또 썼다.
마지막으로 다시 방송을 하고 싶었다. 일을 시작하고 글을 써도 자꾸만 예전의 나를 그리워하는 내가 남아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빛났고 에너지 넘쳤으니 그 일을 꼭 다시 하고 싶었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을 가르치며 아나운서 모집 공고를 살폈다. 몇 번의 서류접수를 했지만, 통과된 적은 없었다. 이력서에 이름 석 자를 쓰면 괄호하고 (엄마)라고 자동으로 적히는 것 같았고, 경력을 다 입력하고 나면 맨 윗줄에 ‘2020년 출산’이라고 남는 것 같았다. 84년생이라는 생년월일 칸 앞에서도 매번 망설여졌다. 서른여덟에 방송사에 입사한 ‘엄마’ 아나운서가 있던가. 자꾸만 내 실력과 경력을 잊은 채 엄마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할까. 내 잘못인가. 사회 문제인가. 세월의 탓인가. 엄마가 엄마라서 움츠러들지 않아야 하는데. 엄마인 각자와 엄마가 아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발 한 번만 서류가 통과되길 간절히 바랐다. 서류만 통과된다면 내 모든 힘과 경력과 실력을 펼치리라 다짐했다. 쓰고 좌절하고 또 쓰고 낙담하던 어느 날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서류합격 전화였다. 1차만 통과됐을 뿐인데 최종 합격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실력과 나를 믿었다.
2차 카메라 테스트 때 아끼는 제자를 만났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제자와 준비생들에게 이 자리가 가야 하는 건 아닌가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누구보다 간절했다. 미안함을 뒤로하고 뉴스 원고 연습을 했다.
3차 면접 때 말했다. ‘지원자 중 아마도 제 나이가 가장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험은 더 많고 실력은 더 더 많습니다. 저는 제 나이 때문에 조금 주눅이 들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일흔두 살의 나이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 당당히 합격해 아파트 청소원으로 근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다짐했습니다. 나도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겠다고요.’
면접을 볼 때 아빠가 생각났던 건 내가 엄마가 됐기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아빠도 나처럼 간절했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나도 서른여덟의 나이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 당당히 합격해 다시 아나운서가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서류 심사 때 나이 때문에 맨 마지막이었던 나는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에서 만장일치로 1등으로 뽑혔다고 했다. 지원자 수는 420명이 넘었다고. 접수한 이력서의 나이보다 동영상의 실력과 경력을 먼저 봐준 PD님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처음 아나운서 준비생이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뉴스 연습을 하고 간절히 면접을 준비했던 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내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어느 작가는 ‘우울증에 빠지는 게 싫었지만 우울증 속에서 나 자신의 크기, 내 영혼의 최대한의 범위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지독한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내 마음의 치수와 부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파고 들어가 깊이를 다 재고 나니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내 마음 안에 차지하고 있었던 생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몸이 아파 일할 수 없었고, 일할 수 없어 맘이 아팠다. 마음이 아파 우울했고, 우울해서 또 몸이 아팠다. 우울은 이렇게 몸도 마음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다. 그 고리를 끊어야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뜨거운 물에 샤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우울의 고리에는 금이 가고 있었다. 그 선 하나가 점점 굵고 깊어져 내가 내 우울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우울이 산후를 만나면 엄마를 부정하고 싶어 진다. 아이가 원망스러워진다. 그러니 산후 우울증은 반드시 잘 다스리고 치료하고 극복해야 한다. 나와 남 모두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몸은 회복하려 노력하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복귀하려 애쓰자. 그 회복과 복귀가 우리를 살게 한다. 엄마에게 제일 중요한 건 엄마임을 잊지 않고 나도 앞으로도 계속 말하고 쓰며, 아나운서로 작가로 그리고 엄마로 잘 살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