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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un 14. 2019

작가의 준비물

- 펜, 노트북, 책 그리고

글이 잘 안 써지는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날은 무수하겠지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정도로 안 써지는 날들이었다. 사실 쓰는 날과 안 쓰는 날은 겉으론 차이가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안 쓰는 날은 애쓰는 것이 줄어 덜 피곤한데 이상하게 쓰지 못하는 날이면 자책하고, 찜찜하고, 불안했다. 쓰는 사람. 작가. 그건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와 관련된 생각을 쓰려다 몇 줄 쓰고 또 지워 버리고 말았다. 시작은 의외로 쉽다. 항상 글 앞에서의 문제는 끌고 가는 동력과 마무리였다.     




볼펜을 사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워드도 메모장도 아닌 노트에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원초적인 것들이 가장 확실한 법이라 차오르는 생각들을 키보드가 아닌 펜으로 눌러쓴다면 좀 더 나은 소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가 왜 들었을까. 글이 안 써지니 펜 하나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원래 아마추어들이 장비 탓을 하는 법이랬다.  

   

사실 펜에 돈을 써 본 기억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잘 없었다. 학생 때는 하루 일과 중 하나가 꼭 문구점에 들러 종류와 색색별로 펜이 잔뜩 꽂아져 있는 진열대 앞에 서보는 것이었다. 그 앞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 위에 펜 뚜껑을 열어 물결 모양으로 선을 출렁여 보고는 선의 굵기와 부드러움 같은 것들을 가늠하며 아주 신중하게 펜을 고르곤 했다. 그 나이 때는 내가 고민하며 고를 수 있는 것들은 주로 문구점에 있었다.      


내가 펜 앞에서 신중했던 그때에는 메이드 인 재팬이었던 수성펜이 인기였고, 0.38 밀리미터라는 아주 가느다란 심의 펜이 인기였다. 500원이 넘었던 이 두 펜 앞에서 나는 아주 심각해져야 했다. 그렇게 쥐어보고 뚜껑도 열었다 닫아보며 샀던 펜들. 새 펜을 처음 공책에 써보는 날이면 조금 설레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종이와 펜 앞에서 기뻤던 감정은 내가 삼십 대가 되어서야 다시 돌아왔다. 나는 작가가 되었으니까. 어떤 원로 작가는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고, 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오래된 작가는 아직까지도 종이 위에 손으로 직접 오프닝 멘트를 써서 디제이에게 준다고 한다. 오 그렇다면 볼펜도 오랜만에 새로 샀겠다. 나도 이들을 흉내 내어 한번 컴퓨터가 아닌 종이에 글을 써 볼까? 호기롭게 종이를 꺼내 새로 산 펜을 쥐어본다. 당연히 몇 줄 써보고는 단념한다. 아니 내가 이렇게 글씨를 못 썼나? 당황하고, 뭐야 내 악력이 이렇게 약했나? 황당하다.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 건 이제 펜보다 휴대폰이 익숙하다. 동시에 갑자기 컴퓨터 키보드에 대한 애정이 마구마구 생겼다. 쥐고 쓰는 것보다 두드리며 쓰는 것이 빠르고 편했다. 역시나 택도 없는 것들은 될 턱이 없다.   


그 나이 때는 내가 고민하며 고를 수 있는 것들은 주로 문구점에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든지 들고 다니며 두드릴 수 있는 노트북이 중요하겠구나. 지금 나의 노트북은 너무 무겁고, 자주 버벅거리고, 몇 번의 글을 날린 경험이 있고... 핑계를 대며 ‘초경량’ 노트북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작가가 이렇게 돈이 드는 직업인 가요? 아닌 줄 알고 좋아했는데 좀 이상했다.


CPU 메모리, 썬더볼트 단자, 멀티태스킹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무조건 가장 가볍고 MS 오피스 혹은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있다면 그만 이었다. 직원은 나에게 이 노트북은 180도가 접힌다는 등, 펜 기능이 있어 다양한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등, 슬롯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중에 언제든 용량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등,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한참을 유심히 듣던 나는 질문했다. 한글 프로그램 여기서 깔아 주나요? 직원은 순간 어이없고 기운 빠진 썩소를 보이며 “2만 3천 원 상당의 정품 오피스와 한글 프로그램 설치가 포함되어 있으십니다.”라고 말했다. 종결어미를 존대하는 저 표현이 거슬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졌지만, 150만 원짜리 노트북을 11만 원 할인해 주겠다는 말보다, 2만 3천 원의 한컴과 MS 오피스를 증정한다는 말에 혹해 나는 카드를 꺼낼 수 있으셨다. 아. 말은 생각보다 전염성이 크시다.     


아 맞다! 그리고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가나요? 질문했다. 아주아주 중요한 물음이었다. 나는 글 앞에서 오래 망설일 테니까. 내가 글에 공들이는 만큼 노트북은 배터리에 공들여줘야 할 테니까. 직원은 내가 아주 예리한 질문을 했다는 듯이 약간 나를 귀엽게 째려보며, 원래 이게 공식 설명 상으로는 한번 충전으로 최대 30시간이 넘는다고 되어있지만 그건 와이파이 연결 없이 화면 밝기를 최저로 했을 때의 설명이고, 인터넷 연결과 밝기를 최대치로 문서작성을 한다고 하면 최소 10시간 넘게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10시간’이라는 단어를 듣기 위해 불필요한 수식어구가 많은 설명이었다. 한 편의 글은 10시간까지만 망설여야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글 앞에서 오래 망설일 테니까.


그렇게 6개월 할부로 산 노트북을 들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무거웠다.(마음이) 분명 초경량이라고 했는데... 무겁네... 결국 나는 서점으로 향한다. 읽자. 돈 쓰지 말고 읽자. 그게 더 나은 작가가 되는 방법일 테니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래도록 책을 둘러보다가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말 앞에서는 10년의 경력자이지만 글 앞에서는 고작 2년의 신입이었기에, 작가 앞에 ‘젊은’ 이 붙은 이 수상작들은 얼마나 글이 뻗쳐 있을지 궁금했다. 젊은 나는 항상 열이 뻗쳤으니까. 치열하게 궁리하고 한순간에 뒤엎고 그 열을 식히러 밤새 차가운 술을 마셨으니까. 물론 수상 작가들의 나이가 모두 이십 대라거나 첫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여러 작가의 이러저러요러한 글들을 읽어 볼 수 있다는 것은 기꺼이 설레는 일이었다.      


휴대폰으로 책 제목을 검색해 보니 ‘한국소설의 내일을 담당할 젊은 작가들의 젊은 소설!’ 이라며 거창하게 시작하는 책 소개 문구도 있고, ‘참신하고 당돌한 젊은 소설의 맛’이라는 기사 제목도 보인다. 아 무언가를 설명하는 한 줄 문장은 얼마나 과장되고 응축되어야 하는가. 나중에 내 책 제목은 어떻게 부풀리고 얼마나 축약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대상 수상작은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우럭이라니. 바다를 땅 삼아 배를 집 삼아 고된 일을 하는 어부의 삶이나 어느 유명 횟집의 성공기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 광활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제목 몇 글자에도 나는 빨리 달려가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재끼고 싶었다. 급하게 읽어 체하고 싶었다. 겨우 에세이를 쓰는 나에게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나의 상상력은 항상 경험치에 한계 되어있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도 너무 얕기 때문이다. ‘이 상은 무조건 좋은 소설에 주어진다’라고 쓴 은희경 소설가의 평도 보인다. 아.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쓰는 글은 좋은 글 일까. 그저 노력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 손에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한 손에는 초경량인데 이상하게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작가의 준비물은 무엇일까. 내가 사기로 마음먹었던 볼펜과 초경량 노트북과 누군가의 책일까. 우선 앞선 체험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 볼펜과 노트북은 거둘 뿐이라는 걸 알았다. 다 핑계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서점으로 발길을 돌린 것처럼 누군가의 책은 준비물이자, 부지런히 읽어야 할 과제이자, 배워야 할 예습지 같은 것이다. 나도 항상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내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단어와 표현을 마주할 때마다 감탄하며 질투하곤 했다. 다시 써 볼 자극을 받았다.    

 

그렇다면 책 말고 진짜 작가의 준비물은 무엇일까?     


분노의 타자질을 할 수 있는 빠른 손가락과 실체 없는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넓은 어휘와, 글의 질 만큼이나 오래도록 쓰고자 하는 지속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자주 실패하고 한숨 쉬고 스스로를 자책할 활자들 앞에서 다시 힘을 내보는 의지가 아닐까.     


쓰는 사람. 오래도록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은 나의 바람이자 누군가의 기대이며 힘들 것 같지만 못할 것도 아닌 일 그리고 놓지 않고 길게 길게 마음먹어야 하는 일이다. 적어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반복해 내보내며 또 사유할 수 있는 기억의 순환이 남들보다 많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도는 삶 속에 맞춰 동그랗게 회전하는 감응의 덩어리들을 잘 굴려보는 일이다. 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잘 쓰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계속’ 쓰는 것. 글이 책이 되려면 분량도 필요하니까. 그 분량을 위해 쓰고 또 쓰고, 글 앞에서 내리 지탱해 보려는 의지와 다짐이 작가에겐 아주 중요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시간이 넘었다. 노트북 배터리의 남은 용량을 확인해 본다. 8% 11분. 이제 나의 퇴고는 앞으로 11분 동안 가능하다. 책이 나오는 그 전 날 더하기 11분. 초고는 짧고 퇴고는 길다. 노트북과 함께 나도 다시 충전하고 또 써야 한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고치고 쓸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글 앞에서 ‘계속’을 계속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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