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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un 28. 2019

나는 이렇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공적 글쓰기의 시작


나는 은유 작가의 글을 참 좋아한다. 처음으로 읽었던 책은 ‘쓰기의 말들’ 초록색의 그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에는 모조리 외우고 싶은 명언과 격언들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다 밑줄 긋고 필사하고 싶은 글들이 가득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최전방에 나가 생각을 장전한 멋진 글발을 휘날리고 싶어 졌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나 자신과 싸우며 삶을 투영해 글을 쓰는 투명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첫 책인 ‘올드 걸의 시집’은 절판되어 정가 12800원짜리 책을 중고로 4만 원을 주고 구입해 읽었다. 돈은 아깝지 않았다. 절판된 것이 안타까웠을 뿐. 책 속 그녀의 생각과 표현들이 기가 막혔다.      



박보검느님도 읽었다는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출처 : JTBC 효리네 민박>



삶이 치열하고 매일 밤 내일 아침을 고민해야 했던 시절 소설이 잘 읽히지 않았다. 작가들의 기막힌 상상력과 주제들이 멋지고 매력적이었지만 감정이입이 잘 안됐다. 마치 콘서트장 2층 가장자리 제일 뒤쪽 좌석에 앉아 보는 공연 같았다. 귀로는 잘 들리지만 눈으로는 너무 멀어 까마득했다. 열심히 재밌게 읽어도 때때로 나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반면에 수필이나 시는 VIP 좌석에 앉아 주인공을 코앞에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생생했고 놀라웠고 무엇보다 각자의 영역에서 살아낸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그때의 나는 기본적으로 사유와 고뇌, 무엇보다 고생이 없는 글은 흥미가 없었다. 나의 온 감각이 그것이었으니까. 내가 너무 번뇌했으니까. 나도 참 나다. 가난, 성찰, 궁색, 번민 이런 것들이 끌렸다. 사람이든 책이든 기본적으로 고생이 깔려 있어야 인정을 했다. 도대체 무슨 취향인지.     


은유 작가의 책 마지막 장을 덮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기웃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작가가 하는 글쓰기 모임인 ‘감응의 글쓰기’를 신청하게 됐다. 타이밍이 좋았다. 8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매일이었고 치열하게 내몰아친 나날들이었다. 매일 출근은 이제 그만.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고자 결심하고 스스로 돈과 일보다 ‘여유’를 욕심부리자 결단했을 즈음이었다. 내 삶에 처음으로 틈이 생긴 그 시기에 나는 글쓰기로 바빠지고자 다짐했다. 어찌 됐건 뭐라도 하지 않으면, 바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다. 지팔지꼬. 지 팔자 지가 꼰다.     


삐~이 삐~이 꼬였네! 들쑥날쑥 해~~~~ (내 인생이...)                      <출처 : 롯데 스크류바 CF 오아시스 편>



10주 동안 열 권의 책을 읽고 열 편의 자전적 글을 썼다. 스물다섯 명의 학인들을 만났다. 매주 똑같은 주제로 모두 다른 스물다섯 편의 글이 나왔다. 매주 수요일 수업시간마다 스물다섯 개의 세계를 들여 다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들은 서로 제대로 된 통성명 한 번 한적 없지만 스스로가 경험하고 사유해 통찰력 있게 써 내려간 글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알게 됐다. 서로의 글을 살펴봐주는 관계는 말로 하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상대방의 깊은 마음들을 알게 되는 사이다. 이미 글로 생각을 다 읽어오니까. 행간에서 이해되니까. 그 사람의 과거를, 경험을, 세계를, 들여다보고 느끼게 된다. 서로가 공들이지 않아도, 길들이지 않아도, 글로 돈독해질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매일 감응의 글쓰기 모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3주 차 수업. 가족을 주제로 글을 써야 했는데 내가 기다렸던 주제이기도 했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아버지의 노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큰 맘먹고 써보자 다짐했다. 그렇게 평생 첫차를 타고 출근해 50년 넘게 막노동을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아버지의 노동의 역사를 딸의 시선으로 절절하게 담아낸 글입니다. 세상에는 가진 자, 배운 자뿐만이 아닌 노동자의 글도 유포되어야 하는데, 노동자는 노동하느라 바빠 기록할 수가 없는데 딸이 이렇게 증언해주니 고맙습니다.”     


그 글에 은유 작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버지의 삶이 나의 글로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첫 순간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그날 모니터를 부여잡고 참 오랫동안 흐느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아빠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 장 그르니에 <섬>     



나에게는 처음 아버지 글을 썼던 그 순간이 그러했다. 나는 정갈한 글을 쓰며 동터 오르기 시작했다. 은유 작가는 수업 내내 '공적 글쓰기'를 강조했다.  드러내는 글쓰기. 하다못해 개인 블로그에라도 올려야 한다고 그래야 글에도 책임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쓴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보라고 부추겨 주었다.


'내가 이 글을 어딘가에 올려도 될까? 누군가 읽는 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빠 이야기가, 아빠의 노동 이야기가 글이, 기사가 될 수 있을까?' 글 앞에서의 겁은 자꾸만 늘었다. 하지만 공들여 고민해 쓴 이 글을 어딘가에 내놓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비겁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의욕이 동시에 생겼다. 글을 송고했다.


다음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글을 잘 읽었다며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가 일종의 기사화되는 일이라 그래도 괜찮겠냐 묻는 전화였다. 나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지만 “괜찮습니다.” 한마디에 아빠의 삶은 글이 되었다.     




그렇게 은유 작가가 강조했던 나의 공적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첫 계기는 과제였으나 수업이 끝난 후로도 자발적 시민기자가 되어 부모의 삶을 열심히 복기하며 꾸준히 써내려 갔다. 아무도 글을 써라 강요하지 않았고,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나를 보챘고 독려했다. 쓰자. 또 쓰자. 그리고 계속 쓰자. 제대로 된 글을 위해 스스로 최소 분량을 정한 후 적어도 스무 번 정도는 읽어가며 퇴고했고 무엇보다 자기 한탄으로 끝나지 않기를 경계했다. 우리 아빠 고생했어. 우리 엄마 희생했어. 나 힘들었어. 탄식만 가득한 글이 아니기를. 아빠가 왜 고생했고, 엄마가 왜 희생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힘들었지만 뭘 배웠는지. 생각에 물음표를 붙였고, 글에 느낌표가 찍히도록 많이 고민했다. 쓰며 그간의 감정들을 수습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내가 쓴 글에 같이 눈물 흘리고 감응해 준 독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나의 아버지처럼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분, 나의 어머니처럼 가족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온 분, 그리고 나같이 참회하는 자식들이었다. 오마이뉴스에는 독자들이 좋은 기사에 소액결제를 해 원고료로 응원을 해 줄 수가 있는데,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쓰면 ‘나도 막노동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댓글과 함께 천 원, 이천 원 소액결제를 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천만 원 이천만 원 같은 원고료였다.      


시간이 지나고 브런치에 글을 올렸을 때도 비슷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며 썼던 나의 글에 사람들은 나도 그랬었다며 많이들 공감해 주었다. ‘우리 아빠도 막노동으로 저를 키웠어요.’‘제 아버지는 청소차 일을 하셨어요.’‘저의 부모님도 정육점을 하셨는데 고기 비린내 가득한 곳이 참 싫었습니다.’ 누가 묻지 않아도 모두가 대답하고 있었다. 내가 나의 부모 이야기를 써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내가 나의 부모 이야기를 써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용기를 내니 용기가 생겼다. 정돈된 글로 흔적을 남기니 명확해졌다. 용기는 순간 차올라 생겨지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 달리기가 아닌 점프 같은 것. 그동안의 것들을 건너뛰게 하는 힘. 그것이 용기였다. 마치 영화 속 ‘몇 년 후’처럼 용기의 의외의 기능은 삶의 편집이었다. 애써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는 순간 건너뛰어진다. 삶을 깔끔하게 잘 편집하고 싶다면 써야 한다. 글을 쓰며 용기의 수많은 효과와 결과들을 체득했다. 그 용기는 한번 냈을 뿐인데 여러 번 놀라웠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리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작가의 말처럼 나는 글을 쓰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삶의 위엄이 생겼고, 순간을 채우며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다.


나는 이렇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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