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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란 무엇인가?

어질러져 있는 상태는 사람을 참 무기력하게 만드는구나.

by 임희정

이사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부터 결혼을 한 후 신혼집까지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산 아래 아담한 주택. (자연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초록색 녹색 연두색 나무와 파란색 청색 푸른색 하늘밖에 없다. TV 대신 책장을 놓고 둘이 사는 집에 욕심을 부려 6인용 긴 테이블을 놓았다. 여기서는 먹고 읽고 나무를 보는 일을 잘할 수가 있다. 그전에 살던 아파트는 2년 전세 계약이 끝나자 8천만 원을 올려 달라고 했다. 우리는 대출 대신 전출을 택했다.


아파트 전셋값 8천만 원 오른 거 실화냐?? (주인공은 나야 나...)


이사를 준비하며 제일 크게 느꼈던 것은 어느새 모두의 일상 속 주거 공간은 아파트로 대부분 인식되어 있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청소 업체와 이삿짐센터와 물류센터에 이사를 갈 것이라 말하면 모두 ‘몇 동 몇 호냐’ 물었다. 열심히 상황과 과정을 설명한 후 집이 ‘주택’이라 말하면, 입주 청소는 아파트만 전문적으로 한다는 응답과 주택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사람 손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사비용이 더 비싸다는 설명과 번지수 만으로 집을 잘 못 찾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우리 집은 몇 동 몇 호가 아니라 골목에서 다섯 번째 집 주택 왼편에서 오른쪽 현관이라고 좀 더 길게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숫자가 아닌 글자로 설명해야 하는 우리 집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이삿날 수많은 기사님들이 우리 집을 찾았다. 인터넷과 TV 이전 신청을 해야 했고,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중계기 설치를 해야 했고, 새로 산 테이블을 들여야 했고, 세탁기 설치와 화장실 줄눈 작업도 해야 했다. 이사란 사람만 옮겨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딸려있는 '반려물' 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사님들이 올 때마다 새삼 느꼈다.

반려견, 반려묘도 없는데 반려물이라니... 맙소사


인터넷 설치 기사님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집 속의 단자들을 속속 찾아내 선을 꼽았다. 선이 잘 빠졌다며 집을 칭찬했다. 중계기 기사님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기지국 수신호를 찾아 집 속을 활보했다. 손바닥 만한 까맣고 작은 중계기를 보물 다루듯 소중하게 설치하고 나에게도 귀하게 여겨줄 것을 당부했다. 테이블 설치 기사님은 내가 의자를 한번 잘 못 치자 ‘이 친구’는 세게 치면 자국이 남을 수 있다며 의자를 의인화했다. 줄눈 기사님은 작업 후 선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타일 바닥에 그림을 그리듯 온 정신을 집중해 마무리를 하셨다.


나는 범위가 다른 탐사가, 탐험가, 박애주의자, 화가를 그저 ‘기사님’이라 통칭해 불렀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을 신경 쓰는 기사님들의 모습이 프로 같았고 좋아 보였다. 나도 한동안 글을 쓸 때 조금 더 살살 그리고 신중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나도 글 쓰는 프로이고 싶었다.


지문이 남지 않을 정도로 살살 그리고 신중하게


며칠 동안 이사 외에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쌓여있는 짐과, 풀지 못한 상자와,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짐 하나를 풀고 한숨을 쉬었고, 상자 하나를 열고 응시했고, 물건을 정리하다 말고 콜라를 원샷했다. 포장이사란 무엇인가. ‘이삿날이 휴일이 됩니다’ 어느 한 이삿짐센터의 홍보문구를 떠올리며 3초 원망했다.


하나 둘 물건들이 자리를 찾고 빈 박스가 늘고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가 가득 찼다.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몇 글자 끄적일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어질러져 있는 상태는 사람을 참 무기력하게 만드는구나. 어느 책 제목처럼 ‘신경 끄기의 기술’이 없는 나는 이사 후 며칠 동안 멍텅구리 같았다. 정리를 할수록 점점 덜 멍텅구리가 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이제 글을 쓰니 콜라를 마실 때보다 개운하다. 쓸 수 있다니 후련하다. 겨우 속이 트인다. 회복이라는 건 이 전에 해오던 것을 이어갈 수 있는 상태 같았다.


그나저나 산 아래 조용한 집으로 이사를 오면 글이 절로 써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꾸만 글이 아닌 산만 쳐다보게 되어서 멍만 때리게 되는 현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나 글쓰기는 그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고 이유도 갖다 댈 수 없는 영역이다.


그저 써야지. 공간을 옮기고, 어딘가를 떠나고, 저 멀리 가버린다 해도 써야지. 또 써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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