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설, 엄마의 수고,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친구는 다 쓴 세제 통에 리필을 할 때마다 벌써 한 달이 흘렀구나 느낀다고 한다. 싱크대 한쪽에 있는 세제는 채워놓으면 보통 한 달을 쓰는데, 어느 날 ‘찍’하고 세제는 나오지 않고 요란한 소리만 들릴 때, 아 또 한 달이 지났구나!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나는 한 편의 연재 글을 송고해야 할 때가 오면 벌써 2주가 흘렀구나! 느낀다. 2주에 한 번 글을 보내는 일은 나에게 정확히 한 달에 두 번씩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한다. 하루는 바쁘고, 한 달은 훅 지나가고, 일 년은 금방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새해를 맞는다.
“또 구정이 돌아온다.”
엄마의 한마디. 한숨 섞인 체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엄마의 ‘구정’이라는 단어에는 사서, 다듬고, 조리하고, 차리고, 먹고, 치워야 할 음식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걱정과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넘어 엄마는 또 한 상 거하게 차려낼 것이다. 가족들과 친척들을 배불리 먹이고, 양손 가득 싸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한 주방으로 원상 복귀시킬 것이다. 구정 하루를 위해 몇 날 며칠을 공들이고 고생할 것이다.
구정 일주일 전. 엄마는 방앗간에 가래떡 한 상자를 주문한다. 갓 뽑아낸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가래떡을 엄마는 참 좋아했다. 가끔 가래떡이 먹고 싶다며 시장을 가셨고, 가래떡 하나를 입에 문 채 장을 봐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조청도, 꿀도, 설탕도 찍지 않고 맨 가래떡을 오물오물 씹어 드셨다. 그게 참 맛있다고 했다. 주문한 가래떡 한 상자가 집에 배달되어 오면 상자를 열자마자 한 줄을 길게 뜯어내 바로 입속으로 넣었다. 나도 하나 떼어주고 나머지는 베란다에 들러붙지 않게 잘 말려놓았다. 며칠 후 딱딱해진 가래떡을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하나하나 썰어 떡국 떡을 준비했다. 엄마의 설 떡국은 소고기와 썰어 넣은 가래떡이 전부였는데 참 맛이 좋았다. 공들여 말린 후 썰어 넣은 가래떡이 담긴 정성스러운 시간의 맛이었다.
구정 삼일 전. 엄마는 본격적으로 장을 보러 시장에 간다. 크고 예쁘고 반질반질한 것으로 사과와 배를 고르고, 푸른 시금치와 까만 고사리, 하얀 도라지와 숙주나물을 사고, 알이 큰 밤과 곶감, 전 부칠 재료들을 살뜰히 챙겨 양손 한가득 집에 왔다. 손이 부족해 떡과 생선, 고기는 사지도 못했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또다시 시장에 간다. 자기 전 침대에서 휴대폰으로 새벽 배송을 시키는 나는 따라갈 수 없는 부지런함이 엄마의 차례상엔 담겨있다.
구정 하루 전. 새언니가 전을 부치러 일찍이 집에 온다. 더 일찍이 엄마는 재료 손질을 해놓았다. 사실 전 부치는 일은 부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일일이 다듬고 썰어야 할 재료들이 있다. 엄마 덕분에 우린 부치기만 하면 되었다. 양푼에 계란을 풀고, 쟁반에 부침가루를 붓고, 묻히고 팬에 올리고 뒤집어 가며 그렇게 엄마와 나 새언니, 세 여자는 거실에 앉아 몇 시간 동안 기름 냄새를 맡았다. 손질된 재료 옆에는 1.5리터짜리 사이다도 같이 놓여있었다. 기름 냄새에 질릴 언니와 나를 위해 말없이 놓인 엄마의 마음이었다.
설. 아침 일찍 엄마는 집에 있는 가장 큰 곰국 냄비에 떡국을 끓인다. 말려놓은 생선도 찌고 제기도 부지런히 행주로 닦아 놓는다. 장롱 위에 깊숙이 눕혀져 있던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상 두 개가 거실에 펼쳐지면 그위로 하나 둘 준비한 과일과 나물, 떡과 생선, 오색 전들이 나란히 놓였다. 모두 엄마의 수고였다. 엄마는 그 흔적들을 멀찌감치 싱크대 앞에서 바라보며 남은 생밤 하나를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그 밤 하나를 씹어 삼킬 동안 겨우 쉴 수 있었다. 차례를 다 지내고 나면 엄마는 또 부랴부랴 다시 국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갈비를 꺼내고 김치 냉장고에서 김치를 종류별로 담았다. 더 놓을 자리도 없는 상 위에 가족과 친척들을 위한 음식들이 빼곡히 가득 찼다. 그렇게 엄마의 노고는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모두 바쁘고 맛있게 먹었다.
친척들이 돌아갈 시간이 오면 엄마는 다시 주방 서랍 속 까만 비닐봉지들을 꺼내 음식을 담았다. 종류별로 골고루, 조금씩 많이, 과일과 음식이 한데 섞인 봉지들이 나란히 식탁 위에 놓였다. 친척들은 현관문을 나서며 그 봉지를 하나씩 전달받았다. 손짓과 고갯짓, 토닥임의 인사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가고 나면 엄마는 이내 한숨을 쉬고 다시 부지런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설 아침부터 오후까지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고, 나와 새언니가 돕긴 했지만 대부분 엄마가 해내는 것이었다. 설 저녁 엄마의 몸은 축이 날 만했다. 불면증이 있어 금세 잠들지 못하는 엄마는 구정날 저녁이면 밤이 오기도 전에 자기 손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머리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어도 깨지 않던 엄마. 나는 엄마가 이런 수고로움 없이도 매일 이렇게 잘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설이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다 커버린 친척 동생들은 이제 큰집에 오지 않고, 전 부칠 때 결혼해 버린 딸의 손 하나가 줄었다. 엄마는 더 이상 가래떡을 주문하지 않고, 곰국 냄비 대신 그냥 냄비에 떡국을 끓인다. 준비하는 음식의 양도 가짓수도 줄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고생이, 수고로움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엔 50년 가까이 차려내고 치우고 반복했던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설은 다가온다. ‘또 구정이 돌아온다’는 엄마의 한마디에 한숨이 가실 날은 언제일까. 엄마가 더 늙지 않고, 힘들이지 않기 위해 새해는 밝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한다. 그저 여전히 올 설에도 수고할 엄마를 기억하고, 위로하고, 기록할 뿐이다.
구정이 돌아온다. 각자의 집에서 많은 엄마들이 애쓸 설이 어김없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