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을 이제 내가 살아간다.
나는 엄마가 엄마일 때의 모습만을 안다.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엄마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엄마가 엄마이기 전에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끔 전해 듣는 얘기와 오래된 빛바랜 사진을 통해 짐작해 볼 뿐 잘 알지 못한다. 나에게 엄마는 항상 엄마였다. 하지만 엄마도 아이, 소녀, 아가씨, 여자로서의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때의 이야기들은 이제 너무 멀고 아득해졌다. 엄마는 아주 가끔 딸의 모습에서 자신이 딸의 나이였을 때를 어렴풋이 떠올려 볼 뿐이다.
종종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엄마는 말했다.
“엄마도 너만 했을 때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다녔어.”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짧은 머리의 엄마가 긴 생머리인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얘기했다. 엄마는 가끔 내 뒷모습에서 50년 전 소녀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때의 엄마는 왠지 이름도 순덕이가 아니었을 것만 같다.
예전에 이모 집에 놀러 갔다가 엄마가 어릴 적 이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가냘픈 몸매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허리가 잘록한 엄마가 나무 앞에 기대서 있었다. 나는 그때의 가느다란 엄마가 어색하면서도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50년 전으로 돌아가 그 나무 옆에 나란히 서서 ‘순덕아 너 너무 예쁘다!’ 말해주고 싶었다.
작년 9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만삭인 지금도 나는 묵직하고 볼록 나온 배가 어색하고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처음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걱정의 말을, 남편에게는 어깨를 토닥이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엄마는 나를 갖고 키우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임신이라는 것이 주변 이들은 한없이 기쁘고 당사자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힘들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는 것을. 무언가를 경험해 본 사람이 건네는 진솔한 반응 같았다. 이제 엄마는 나에게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화하며 안부를 묻고 37년 전 나를 품었던 그때의 시간을 떠올린다.
“잠이 쏟아지지? 낮잠 많이 자둬. 졸리면 무조건 자야 해.”
“배 많이 나왔지? 소화도 잘 안 되고 화장실도 자주 가고. 밤에 잘 때 많이 뒤척이지?”
“엄마가 너 가졌을 때 과일이 그렇게 땡겼어. 할머니는 장 보러 가서 올 때마다 사과 사다 주고, 니 아빠는 자전거 타고 읍내에 나가서 참외 사다 날랐지. 엄청 먹었다 엄청.”
자신이 겪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딸이 겪고 있는 요즘 엄마는 무슨 마음일까. 이제 엄마와의 모든 대화는 ‘엄마가 너만 했을 때’가 아닌 ‘엄마가 널 가졌을 때’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낳고, 그 딸이 다시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이 온다. 임신 초기 온종일 두통에 시달릴 때도 아이에게 안 좋을까 약하나 먹지 못했고, 임신 중기 입덧 때문에 잦은 토를 해도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를 먼저 생각했다. 어느새 나보다 품고 있는 아이를 내 앞에 두게 되는 이 마음이 엄마가 되어가는 마음일까. 엄마는 오랫동안 그렇게 나를 앞에 두고 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너무나 늦게 엄마의 시간을 조금씩 뒤따라가고 있다. 먼 훗날 나도 엄마처럼 내 딸을 보며 내가 아이였고, 소녀였고, 아가씨였고, 여자였던 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부모의 이야기를 써 온 지 2년 반. 이제 내가 부모가 될 시간이 온다. 사실 나는 자신이 없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고, 엄마처럼 내 딸을 보살필 자신도 없다. 그리고 솔직히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낳고 엄마로만 살아왔지만, 나는 내 딸을 낳아도 나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못 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한 아이의 생에 한결같고, 조건 없는 사랑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안다. 내가 경험했으니까. 내가 엄마로부터 많이 받았으니까. 그래서 그것 하나만큼은 열렬히 노력하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 늙어갈 엄마도 자라날 내 딸도 고루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