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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Jul 17. 2019

노인들의 악성민원 전화를 받으며

이십대의 막바지. 정당에서 당직자로서 일한 것은 햇수로 2년차가 되었다.



당직자로 일을 하며 느끼게 된 수많은 정치적 감상들이나, 견해들은 뒤로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민원전화'를 꼽을 것이다.


 


정당의 특성상 정치적 이슈에 따라 그에 관한 민원전화가 오는 일도 많고, 타당하고 좋은 견해나 충고를 전해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귀담아들어야 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 발전적인 이야기들은 듣고 내 선에서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은 설명하기도 하고, 전달해야 하는 것들은 잘 모아서 전달하고는 있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전화는 그런 상식선을 벗어난 악성 민원전화들이다. 특히 젊은 여성의 목소리여서 그런가, 타 당직자들보다도 유독 많이 겪는 것 같다. 특히 성차별적인 악성 민원전화 같은 경우는 더더욱. 


 


일반 회사나 여타 콜센터 등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악성민원전화들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의 경우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면, 악성 민원전화를 거는 분들의 99%가 노인들이었다.


 


내게 온 악성 민원 전화만 따져도 하루에 평균 1통이라고 계산했을 때, 평일 5일간 5명이니, 한 달에 총 20명인 셈이다. 내가 근무한 2년 간 거의 480명의 악성 민원인의 전화를 받은 셈인데 99%가 노인들이셨으니, 480명의 악성민원 전화를 거는 노인들을 혼자 경험한 셈이다. 이를 전체 당직자로 환산하면 얼마나 더 늘어나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약하게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짜고짜 '남자를 바꾸라' 소리를 지르는 경우에서부터, 심하게는 인격 및 성적모독이 포함된 욕설을 내뱉는 경우까지 매일 한 번씩은 겪는 듯하다. 당의 소속 의원이 자신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등, 내용도 황당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직도 그런 전화를 받으면 감정컨트롤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 정신적 타격을 크게 입곤 한다. 손이 벌벌 떨리고, 저기압인 상태로 하루 내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이 노인들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가면서까지 여기에 전화를 걸게 되었을까?", "왜 이들은 악성민원인이 되었을까?"


 


물론 일부 노인들의 '일탈행동'으로 이를 규정할 수도 있겠고, 근본적인 원인을 한 가지로만 일반화를 할 순 없을 것임은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일정부분에 있어, '노인들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곳이 사회 안에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할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인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가 떠오른다. 사실 나조차도 아침 출근길 가장 혼잡하다는 9호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사람으로서, 안 그래도 미어터지는 출근인파 속에서,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공짜로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노인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는 한다.


 


정치, 세대 간 장벽 등으로 노년층과 청년층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계층이동이 가장 어려운 세대로 꼽힐 만큼 현재의 청년세대들의 현실이 피폐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그 노인 개개인에 대한 불편함, 혐오에서만 그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적은 파이를 서로 내어주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일은 너무나도 소모적이다. 당장 노인들의 공짜 탑승을 금지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불편을 조금 해소할 뿐 문제의 본질이 사라질까? 분노와 불편함은 국가의 근본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표출하는 것이 훨씬 발전적일 것이다.


 


그러려면, 이들이 그 시간에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곳이 어디인지, 왜 그곳에 가는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노인들은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는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500원씩을 나눠주는 교회 몇 군데를 돌며 몇 푼의 돈을 손에 쥐러 간다. 청년마저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노인들이 소득을 얻을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취미생활 등 노인들이 여가를 즐길만한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2014년을 기준으로(OECD 출처) 무려 48.8%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2.1%와 비교해 볼 때에도 거의 5배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더욱 큰 문제는 올해에만 정년을 맞이하는 인구가 84만 9천명(통계청 조사)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인빈곤에 관한 우리나라의 공적지출은 국내총생산 대비 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유럽 등 여러 복지선진국의 노인들을 떠올려보면,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근린시설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며 노년을 보내는 노인들이 떠오르지만, 우리나라의 노인들을 떠올리면 대표적인 이미지로 '폐지를 줍는 노인'이 떠오르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노인들이 의미 없이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기를. 삶이 바쁘고 즐길 것이 너무나도 많아 나에게 더 이상 악성 민원전화를 걸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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