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히 보관된 그때, 그 기억 속의 행복을 다시 만나게 하는 힘
얼마 전 재개봉한 해리포터의 첫 번째 시리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관람하러 영화관에 다녀왔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해리포터를, 마지막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로 마무리하며 아쉽게 작별한 지 오래인데, 이렇게 다시 영화관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던지라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해리포터가 명작이라 칭할 만큼의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영화라고 말하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개봉한 지 20여 년이나 지난 세월의 간극을 반영하듯 기술이 매우 발전한 2018년 지금에 보기에는 아무래도 CG도 허술하고 티가 많이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일주일 전쯤에는 예매해야 관람이 가능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나는 영화에 그다지 감동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영화를 보다 울컥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이(Kid)와 어른(Adult)을 합친 '키덜트'는 현대 성인들이 추구하는 재미, 유치함, 판타지 등의 가치가 대중문화의 하나로 나타난 사회적 현상을 명명한 것이라 한다.
이러한 키덜트 문화의 현상에 대해 '현대 성인들의 각박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를 기반으로 한', '어린 시절의 환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쯤으로 이유를 분석하곤 한다.
내가 어릴 때 즐기던 '해리포터'를 성인이 다 된 지금에도 소비하며 즐거움을 느낀 것도 이처럼 키덜트의 한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대에서 매년 증가해 지금은 1조 원을 넘어섰을 정도로 유통업계에서도 주목하는 트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어쨌든 분명한 건, 이러한 키덜트 문화가 지극히 일부에게서 향유되는 '소수 문화'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문득 그 노래를 듣던 그 어떤 시간의 이야기들이나 장면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거나, 갑자기 맡은 익숙한 향기에서 그 향을 풍기던 누군가와의 추억이 훅 와 닿으며 그때의 감정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을 겪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는 해리포터를 보다가 그런 무언가를 느꼈던 것이다.
문득 팝콘과 콜라를 들고 아빠, 동생과 함께 나와 해리포터를 보며 설렜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 행복했던 감정들과, 그때 눈에 담긴 장면들. 책으로만 보던 마법세계가 커다란 화면 속에 구현되어 있는 광경을 보며 신기해 마지않던 나와 동생의 얼굴, 흥미도 없는데 딸들을 위해 함께 영화관까지 와서 결국 졸고 있는 아빠를 보며 낄낄댔을 때 느꼈던 그 사소한 감정들까지도 파노라마처럼 아주 상세히 느껴지며 저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해리포터를 '향기', 혹은 '노래' 등과 같은 하나의 매개체로 하여 깊숙하게 잘 보관되어 있던 나의 추억과 감정들을,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나'를 그대로 꺼내어 보게 된 것이다.
그건 어떤 한 마디의 위로나, 술 한 잔 보다도 더욱 쉽고 확실하게 내가 행복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강한 힘이다.
약국에서 어린이 영양제를 한 통 사다 하루에 몇십 개씩 한 번에 먹으며, 식사 후 엄마에게 배급받아 하나씩 그걸 먹으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던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고.
월급을 털어 가장 좋아했던 만화의 굿즈를 구매할 때, 놀이터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다 "그만 놀고 밥 먹으러 들어와라"하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흙 묻은 발로 급히 집에 들어와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켜며 맡았던 맛있는 밥 냄새를 떠올리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다.
켜켜이 쌓아 올려져 현재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 된 것들.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너무 사소한 것들로도 행복했던 그 감정들과 따뜻했던 기억들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보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