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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8. 2021

[여행기] 청주에 꽃핀 문화예술공간
- 청주예술의전당

[취재/글/사진] [청주 이야기]


청주에 꽃핀 문화예술공간 - 청주예술의전당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아름다운 건물 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기와집의 추녀를 본뜬 듯한 지붕은 오가는 이들을 내려보고 있으며, 그 앞으로 마련된 넓은 뜰은 사뭇 엄숙하다. 남다른 자태를 뽐내며 기품 있게 뻗어있는 건물, 분명 전통 박물관일 거란 내 추측과는 달리 이곳은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공간인 ‘청주예술의전당’이다.



전국 주요 도시마다 예술의전당이란 이름을 지닌 문화공간이 하나쯤 있지만, 도시별로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청주예술의전당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모양새로 지어졌다. 지척에 있는 흥덕사지의 역사성에서 착안하여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을 활용한 것인데, 고즈넉하면서도 위엄 있는 겉모습은 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는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실내로 들어서면 높이 솟은 천장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웅장함을 뽐낸다. 낮에는 조명을 켜두지 않지만, 밤이 되면 따스한 불빛이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주변을 환히 밝힌다. 위대한 개츠비의 연회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 선 나는 옛 연인을 찾는 주인공 개츠비의 심정을 상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로비를 바라보며 예술과 사랑, 낭만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주차장으로도 사용되는 넓은 앞마당에는 각종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어 제법 볼거리가 많다. 예술의전당 바로 옆에 설치된 ‘직지 파빌리온’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를 표현한 오브제다.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은 문화사적 의의가 큰 문화유산으로 청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조형물은 책을 펼쳐 뒤집어놓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어 언뜻 보면 천막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조형물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보면 책을 본뜬 모형임을 확실하게 알아챌 수 있다.



파빌리온 바로 옆으로는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한 신채호 선생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의미에서 설치된 조형물인데, 청주 곳곳에는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관이나 설치물이 다수 있다. 문득 직지 조형물부터 신채호 선생의 동상까지 둘러보고 나면 예술 공연을 보러왔다가도 우리 역사에 대해 이런저런 감정을 더듬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돌리니 여러 개의 타일을 이어붙인 조형물이 보인다. 언뜻 봐서는 도통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타일마다 사람들이 직접 써 내려 간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각각의 타일 위에는 청주 시민들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고, 그 모두가 모여 작품이 된 것이다. 꿈을 이루게 해달라는 어느 학생의 간절한 바람부터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따뜻한 소원까지 작품에는 소소한 내용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하나하나 꼼꼼히 읽다 보니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 덕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있던 나는 마지막으로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천년각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새해가 되면 청주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충북천년대종을 타종한다. 비록 지금 이 순간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종소리는 없지만 그 앞에서 홀로 이른 신년다짐을 해보며 새해의 기분을 느껴보았다. 


청주예술의전당은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는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청주 시민에게 익숙한 정신적 가치가 다채롭게 녹아있는 공간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소풍이나 현장학습으로 방문하는 추억의 공간, 가족 단위 시민 방문객에게는 가슴 뿌듯한 기억이 새겨진 공간이며 타지에서 방문한 이들에게는 청주라는 도시를 각인시키는 랜드마크로도 제 역할을 다한다. 청주 시내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넓은 뜰, 이 뜰에서 오래도록 문화의 꽃, 추억의 꽃망울이 피어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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