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부모들을 위한 뒤늦은 고백
의사 딸, 검사 딸을 키워낸 '넘사벽' 엄마의 뒤늦은 반성문
by
해림
Jan 8. 2026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 변했다.
1990년대
, 내가 두 딸을 낳아 한창 키우던 시절의 교무실은 남편과 자식 이야기로 늘 왁자지껄했다.
임신한 여교사 앞에서 남자부장 교사가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피우던 무신경한 시대였지만, 역설적으로
'결혼과 출산'은 우리 모두의 공통되고 자유로운 노변정담 주제
였다.
지금은 180도 다르다.
결혼 여부나 자녀 교육에 관해 묻는 것조차 금기
시되는 분위기다. 학교장인 나조차 인사 기록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교직원들의 개인사를 알 길이 없다.
육아시간을 신청하는 교사를 보고서야 '아, 아이 엄마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시대가 된 것이다.
100년 후에는 인구가 현재의 15%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초저출산 국가
, 대한민국이 마주한 씁쓸한 풍경이다.
나로 말하자면, 2019년과 2022년에 두 딸을 차례로 결혼시키며 본의 아니게 개인정보가 노출되었다. 내게는 남들이 선망하거나 혹은 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의사와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두 딸
이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우신 겁니까? 선생님은 정말 '넘사벽'이세요.“
부러움 섞인 질문에 나는 마치 영웅담을 풀듯 지난날의 에피소드 몇 토막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할 때의 당당함은 이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망각된 고단함에 힘을 잃는다.
"제가 뭐 하러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딸들과 참 많이도 싸웠고, 무척이나 힘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내 딸들이 지금 정말 행복한지,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백과사전에서 본
쇠똥구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
물구나무를 선 채 가느다란 다리로 제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쇠똥을 굴리던 미련한 모습.
어린 내 눈엔 그저 더럽고 힘겨워 보였던 그 짓이 사실은 지상에 널브러진
배설물을 분해하여 생태계를 지키는 숭고한 노동
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쇠똥구리의 생태적 역할은 알지 못한 채, 제 몸에 버거운 짐을 옮기려 용쓰는 가여운 모습만 보며
대한민국 부모들의 처지를 투영
해온 지 오래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제 몸이 부서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저명한 전문가의 비방(秘方)을 따라 해보지만 내 자식에겐 통하지 않아,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닌지 가슴을 치며 자책한다.
육아 전문가도 아닌 일개 교사 출신인 내가 세상에 목소리를 보태면서
"제가 고생했던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라고 한들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기도 하다. '집안에 돈이 많았겠지' 혹은 '유전자가 달랐겠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
하지만 자식이라는 장엄한 과제를 이고 지고 험한 세상을 버텨내느라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내 심정은,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금쪽이'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는
이 땅의 모든 쇠똥구리 부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그래서 나는 이제 기록하려 한다. 완벽하지 못했던 엄마로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
를 일상의 에피소드에 담아 가볍게 풀어내고자 한다.
작년 91세로 작고하신 어머니와 환갑을 넘긴 나,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큰딸과 이제 막 엄마가 된 작은딸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엄마'라는 숙명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 글은 부족한 딸이었던
나를 향한 기록이자, 모자란 엄마였던 나를 돌아보는 뒤늦은 고백
이다. 여전히 자식을 등에 지고 굴리느라 힘겨운 동지 '쇠똥구리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 위에서 만난
고행자로서 깊은 공감
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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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에필로그
엄마
환갑에 쓰기로 한 양육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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