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토끼 인형에게 새 옷이 생긴 날

호언장담이 불러온 거사, 깡깡이 원피스 제작기

by 해림

“오늘은 깡깡이 안 데리고 왔니?”

여섯 살 큰손녀가 분신처럼 손에 꼭 들고 다니던 애착 토끼 인형, ‘깡깡이’가 보이지 않아 물었다. 아이는 “할머니, 오늘은 안 가지고 왔는데... 지금 가져올까?”라며 배시시 웃는다.


사건의 발단은 몇 달 전이었다. 깡깡이가 입고 있던 원피스가 제 옷도 아닌 데다 너무 작아, 녀석의 커다란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게 영 거슬렸다.


무심코 “할머니가 예쁜 토끼 원피스 하나 만들어 줄게”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큰딸과 손녀가 은근히 깡깡이 원피스를 기다리는 눈치라서 어제는 큰맘 먹고 지하철을 타고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포근한 느낌의 잔잔한 꽃무늬 옷감을 한 마 사다 놓으니 숙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양재나 수선에 그리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다.


어릴 적 우리 집 방 한구석에는 검은색 재봉틀이 있었다. 어머니가 자주 쓰시지는 않았지만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한 번씩 동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으셨는데 어머니를 따라간 양장점에서 색깔 고운 자투리 천들을 얻어오기도 했다.


나는 그 알록달록한 조각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재봉틀 앞에 앉아 인형 옷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운 적 없이 어머니 어깨너머로 본 솜씨는 매번 실패로 끝났다.


내 마음은 멋진 디자이너였지만 서툰 손재주가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옷 만들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바쁜 삶 속에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런 ‘초보 디자이너’인 내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인형 옷을 만들어 주겠노라 장담했나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오늘은 그저 토끼의 몸 치수나 살짝 재어둘 요량으로 옷감을 샀다고 말했더니, 그 말을 들은 딸과 손녀는 빛의 속도로 같은 아파트 자기 집으로 달려가 깡깡이를 데려왔다. 결국, 미룰 길 없는 ‘거사’가 시작되었다.


깡깡이는 손녀가 아기 때부터 함께한 ‘젤리캣’ 애착 인형이다. 아기들의 귀에는 어른들이 말하는 ‘토끼’가 ‘끼, 까’ 정도로 들리는 모양인지, 손녀는 토끼를 ‘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큰딸의 도움을 받아 손녀의 애착토끼는 마침내 ‘깡깡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손녀의 손길에 시달린 깡깡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털은 꼬질꼬질하게 뭉치고 여기저기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새 인형을 사주려 해도 손녀에게는 이 낡은 깡깡이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그동안 팔이 몇 번이나 떨어져 나가 내가 수차례 바느질로 꿰매어 주며 겨우 형체를 유지해 온 녀석이었다.


나는 비장하게 자를 들고 깡깡이의 몸을 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녀석, 상체는 지나치게 왜소한데 엉덩이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하다.


챗GPT와 제미나이에게 인형 옷 만드는 법을 묻고, 몇 개 블로그의 인형옷 패턴을 참고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실제 몸매를 마주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목에서 시작되는 가느다란 팔과 광활한 엉덩이를 감쌀 원피스를 재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은 “엄마, 인터넷에서 파는 젤리캣 옷이 만 칠천 원이래”라며 넌지시 초를 쳤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냐며 타박하면서도, “그래도 할머니가 만든 게 의미가 있지 않겠니?”라며 과감하게 천을 잘랐다.


사실 오늘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제는 휴일이었음에도 새 학기를 앞두고 학년실에 가구가 들어온다고 해서 잠시 학교에 나갔었다.


남편과 동행해 교장실에 들렀다 마신 녹차가 화근이었는지, 어젯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야 겨우 눈을 붙인 터라 정신이 몽롱했다.


하지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손녀를 실망시킬 순 없었다.


재봉틀을 돌리고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더했다. 안감과 겉감이 헷갈려서 이미 재봉틀로 박은 부분을 다시 해체해야 했고, 군데군데 비틀어지고 좌우가 맞지 않아서 손바느질로 보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비장의 잔재주를 부렸다. 앞부분엔 앙증맞은 리본을 달고, 손녀 취향을 저격할 반짝이는 단추도 두 개나 박았다.


완성된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자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갔던 큰딸과 밖에서 사위와 함께 놀던 손녀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의외로 손녀는 토끼의 새 원피스가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래도 나는 부족한 내 실력을 노출한 게 마음에 걸려서 한마디 했다.

“할머니 실력이 부족해서 미안해. 내년에는 할머니가 교장실에 안가도 되니까 그때는 정말 제대로 잘 만들어 줄게. 당분간만 깡깡이한테 이거 입혀둬라.”


그러자 손녀가 대답했다. “할머니, 나는 이 옷이 정말 마음에 들어!”


옷 입은 인형을 소중히 쥐고 기뻐하던 손녀가 잠시 후 덧붙였다. “할머니, 강아지 ‘쿠쿠’도 태어나서 한 번도 옷을 못 입고 벌거벗고 있는데... 쿠쿠도 옷 입었으면 좋겠어.”


쿠쿠는 손녀가 두 번째로 아끼는 강아지 인형이다. “뭐라고? 그놈은 강아지잖아! 그건 또 어떻게 재단하라고?” 당황한 내 모습에 딸이 웃으며 거든다.


“어디 치와와 강아지 옷 한 벌 사 오면 안 될까요? 이제는 안돼, 그만, 할머니 힘드시다.”


딸은 내 눈치를 보며 만류했지만, ‘쿠쿠가 태어나서 옷 한 벌 걸치지 못했다’는 손녀의 말에 그만 내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그래, 장담은 못 하겠지만 언젠가 그 녀석에게도 예쁜 옷 한 벌 입혀주마. 퇴직해서 백수가 될 내년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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