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의 이름을 짓기 위해 찾았던 철학관에서 나는 기묘한 예언들을 만났다.
작명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작명가는 큰딸의 사주를 보며 말했다. "칼을 세 개나 차고 나왔네. 옛날 같으면 장군감이야."라는 뭔가 무서운 사주풀이를 내놨다. 날카로운 '칼'이라는 단어에 남자도 아닌데 장군감이라니, 혹시 정육점이라도 운영하게 되는 건지 되묻는 내게, 그는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요즘 세상엔 이런 사주는 말로 칼을 휘두르는 판검사가 되거나, 메스를 드는 의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
그날 이후 '세 개의 칼'은 자주 우리 집안의 화두가 되었다. 딸은 자신의 사주를 간간이 언급한 엄마의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 자신에 대한 예언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칼날처럼 예리한 언변을 뽐내던 큰딸은 판검사가 아닌 의사가 되었다.
둘째 딸의 운명은 더 극적이었다. 여섯 살 무렵, 나는 둘째를 위해 다시 철학관을 찾았다.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 걱정되었고, 남동생을 보게 한다는 이름은 발음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면 아이의 성격이 달라질까 기대했는데, 작명가는 한술 더 떠 둘째의 사주가 아주 좋다며 언니보다 공부를 더 잘해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풀이를 건네주었다. 남편은 아이를 앉혀두고 작명소에서 받아온 세 개의 후보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었고, 아이는 그중 '크게 벼슬한다'는 뜻의 이름을 제 귀로 듣고 스스로 골랐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름을 바꾼 뒤 아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보고 "장차 크게 될 인물이니 미리 한번 안아보자"던 인근 부동산 소장의 기이한 예언까지 더해지며, 아이의 진로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작은딸은 그 예언들을 증명하듯 완벽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피 말리는 선발 과정을 거쳐 스물다섯의 나이에 대한민국의 검사가 되었다. 사주가 예언한 대로, 제 이름의 뜻대로 '크게 벼슬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아이들의 삶이 오직 정해진 사주대로만 흘러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여정의 고비마다 엄마인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지원과 희생은 물론, 둘째의 탄생이 예사롭지 않다던 외할머니의 기도와 바람이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아들 귀한 집안에 훌륭한 자식을 점지해 달라며 매일 아침 성철 스님께 108배를 올리셨다. 고즈넉한 절터 아래 비탈진 땅에서 탐스러운 고구마를 끝도 없이 캐내던 나의 태몽도 아이의 운명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이제는 내 곁의 남편을 본다. 5녀 1남, 2대 독자 귀한 아들로 태어나 '개천에서 난 용'이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참으로 영특하고 출세하려는 욕망도 커 보였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귀한 아들에게 앞길을 열어주기보다 "너무 힘들게 애쓰지 마라"라는 과한 걱정으로 도리어 기를 꺾은 게 아니었나 싶다. 유일하게 "너는 대학원까지 가야 한다"며 학업의 길을 일깨워주셨던 시할아버지의 혜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지 모른다.
남편이 세상 풍파에 부딪혀 주저앉을 때마다 나는 '자기 충족적 예언'을 남발하며 그를 밀어 올렸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야, 잘 될 거야." 그의 능력이 사주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미 다 자란 어른을 내 아이처럼 다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소박한 평온을 찾았지만, 거울 앞에 선 남편의 뒷모습에서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의 잔해를 읽을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한 번씩 나는 호기롭게 말한다. “여보, 다음에는 꼭 내 아들로 태어나줘요, 당신같이 영특하고 성실한 아들이 있으면 내 손으로 키워서 큰 인물로 만들 자신이 있어요.”
* 멤버십 글 한편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