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크레이지 드라이버, 그 지독했던 자화상

by 해림

최근 교무부 협의회 자리에서 뜻밖의 '고해성사'가 이어졌다.


평소 누구보다 차분한 교무부장님이 운전대만 잡으면 노란 불을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헐크'로 변한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는 그분의 말씀에, 나 역시 감춰둔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저도 그렇습니다. 도로 위에만 서면 어느새 '크레이지 드라이버(crazy driver)'가 되고 말아요.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요. 계속 운전을 해도 될지 모를 정도입니다.”


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여자가 이런 무법적인 발언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것은 나의 삶을 관통해 온 지독한 습관이자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남의 자식 교육하느라 정작 내 두 딸은 집에 버려두고 다녔으니, 퇴근길 내 마음은 언제나 엄마 없이 지낼 아이들을 향해 무섭게 질주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수십 년 내 삶은 '자식 교육'이라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오직 정상을 향해 달렸던 고난의 레이스였다.


부실한 소형차에 두 딸을 싣고,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돌진했던 미친 운전자의 삶. 돌이켜 보면 내가 달려온 길은 잘 닦인 8차선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굽이굽이 험난한 산길을 오르는 비포장도로였다. 내가 몰던 소형차는 외양만 그럴듯했을 뿐,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면 엔진에서 거친 소음이 새어 나왔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혹여 미숙한 상대 차량이 내 아이들을 해칠까 봐 두 눈을 부릅뜨고 운전대를 악력으로 움켜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방만 주시하라"던 강사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도록 정면만 응시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리는 정복자였다. 코너를 돌 때마다 긴장은 더해졌고, 어느새 최종 목적지가 어디였는지조차 망각한 채 속도를 높였다. 그 광기 어린 질주 속에서 나는 아이들이 동승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곤 했다.


차의 진동 때문에 아이들이 어지럽지는 않은지, 잠시 내려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을 감상하고 싶지는 않은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특히 예민하고 멀미가 심했던 큰딸은 엄마의 과격한 운전 속에서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요동치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겁에 질려 엄마가 손을 잡아주길,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로 위에서 단 1초도 허비하지 않는 야비한 운전자가 되어 정상을 향해 핸들을 꺾었다.


예순이 넘고 급할 게 아무것도 없는 지금까지도 신호등 초록 불에 집착하고 지름길을 샅샅이 파악하는 나쁜 버릇은 여전하다.


이제 나의 독재가 지배하던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각자 운전하는 새 차로 옮겨 탔다.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야 뒤늦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엄마가 너희 마음을 세심하게 읽지 못했구나. 내 감정을 다정하게 전하는 법도 몰랐어.“


기특하게도 나의 두 딸은 정상을 향해 돌진하는 엄마의 옆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엄마를 이해해 주었다. 스스로 생각을 키우고 자신을 치유하며 어른이 되어주었다.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목덜미를 세게 물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나의 거칠었던 운전 실력과 낡은 차, 그리고 험난했던 경로가 아이들에게 부디 상처로만 남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정상을 향해 미친 듯이 핸들을 꺾어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이제는 아이들도 그리고 나 자신도 조금은 가엾게 여겨주길 조용히 기도해 본다.


* 연재했던 작품 '의사딸, 검사딸이 받은 진짜 운빨'에 올렸던 글을 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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