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범대 가는 게 최고지.“
어머니의 그 한마디가 내 운명을 결정지었다. 아버지는 병환 중이셨고 집안 형편은 기울어 있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셨다.
의대에 다니던 오빠가 내 성적이면 충분히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며 직접 물리를 가르쳐주겠다고 나섰지만, 학비가 버거웠던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사범대의 저렴한 학비와 ‘선생이 돼라’는 어머니의 열망을 등에 지고 교단에 섰다.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교사가 된 분이었다. 여성이 초등학교 문턱조차 넘기 힘들었던 시대에 어머니의 교직 진출은 지금의 서울대 진학만큼이나 독보적인 성취였다.
내가 대학에 갈 무렵에도 여성이 경력 단절 없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은 교직뿐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교사였기에 아픈 남편을 수발하며 네 자식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
교직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내게도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하셨으리라. 그렇게 등 떠밀려 교사가 되었지만, 정작 내 안에는 교직과 맞지 않는 묘한 거부감이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 결핍 때문이었는지, 나는 내 자식만큼은 절대 사범대에 보내지 않겠노라 결심하며 살았다.
지금은 교장이 되어 교장실 한 칸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심으로는 교직에 온전히 침잠하지 못한 듯하다.
수십 년간 쥐꼬리 같은 박봉을 받아서도, 추락한 교권에 기가 꺾여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교사라는 직업이 나 자신을 단단히 옭아매며 흐트러지지 않도록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서 가르치기 위해 자신을 가혹하게 다스리고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삶은, 내게 불가능하면서도 가혹한 ‘천형(天刑)’과도 같았다.
나는 때로 파격적으로 살고 싶었고, 위험한 시도도 감행해보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열정이 터져 나갈 듯 벅찬 사람이었기에 교사가 아닌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내면 깊은 곳에서 늘 이글거렸다.
교사에게는 안정과 성실, 규칙과 일관성이 요구된다. 간밤에 영혼이 괴로워 잠을 설쳐도, 남편과 크게 다투어 눈이 부어올라도, 토하는 아이를 유치원에 간신히 맡기고 온 날에도 여지없이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어느 직장인들 비슷하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는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사적인 감정을 깡그리 털어내고 '새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부처나 예수라도 쉽지 않을 그 ‘가면무도회’를 나는 40년 가까이 수행해 왔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미숙했던 지난날의 언행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인생을 리셋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끝내 하차하지 못했다. 달아나려 할 때마다 교직이라는 놈은 간교한 마술을 부려 나를 붙잡았다.
그 마술은 꽤 정교해서, 때로는 붉은 색종이가 진짜 장미가 되어 내 품에 들어왔고, 작은 상자 속에서 수십 마리의 비둘기를 날려 보내며 다시 희망을 품게 했다.
한편으로는 학교 밖 세상은 순진한 교사 출신에게 위험하며, 호기롭게 외치던 재취업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교묘한 위협으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현실적인 보상도 있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채우려 매진하다 보니 내 아이들을 코치할 실력이 생겼고, 국가는 해외 파견과 연수의 기회를 주었다.
학교는 자녀 교육의 가장 훌륭한 정보처였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 아이를 이해하고, 내 아이를 보며 제자들의 마음을 읽어냈다.
수업 잘하는 교사라는 자아도취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새 모이 같은 봉급에 안주하며, 나는 다람쥐 쳇바퀴를 39년째 돌려왔다.
첫 교감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병환 중인 어머니를 핑계 삼아 명예퇴직 서류를 썼다. 학교를 떠날 구실을 찾지 못해 미적거리다 내린 결심이었다.
며칠을 고민한 퇴직원을 품고 교장실로 향했지만, 결국 나는 그 서류를 다시 품에 안고 돌아 나왔다.
“이제 곧 교장이 될 텐데, 아쉽지 않겠어요?”
교장 자격 연수를 앞둔 상황보다 나를 멈춰 세운 건 교장 선생님의 인자한 표정이었다. 그는 내가 만난 어떤 관리자보다 합리적이고 멋진 분이었으며, 내가 그의 그늘 밑에서 편히 교감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분 역시 내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를 교직에 묶어두기 위해 배치된 ‘운명의 등장인물’이자 최종 인물이라는 것을.
만약 그때 교감을 괴롭히는 치사한 교장을 만났더라면, 그런 꼴을 참지 못하는 성미인 나는 진즉에 학교를 떠났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39년을 교사로서 지독하고 힘겹게 ‘생존’해 왔다. 이제 남은 1년도 교장이자 교사로서 마무리할 숙명이다.
평생 도망치고 싶어 했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투덜댔지만, 결국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