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위로 높이 걸린 만국기가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인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인조 잔디 위로는 흙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학급마다 제각각 색을 맞춰 입은 아이들의 함성이 학교를 가득 채운다.
“여러분, 오늘 날씨가 정말 끝내주네요! 즐겁고 신나는 체육 한마당이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다치지 않도록 합시다.”
교장으로서 체육 한마당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의 환호 속에 축제는 시작되었다. 운동장은 열심히 뛰고 웃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치지만, 교장인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서늘하게 비어 있다.
이토록 눈부신 날에도, 끝내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나눌 친구 하나 없어 서너 시간도 학교에 머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타인의 행복이 극대화되는 이런 축제일은 오히려 가장 잔인하고 외로운 날이 아닐까.
며칠 전 교장실에서 만난 학생은 이전 학교에서 교우 관계의 상처를 입고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부모님은 환경이 바뀌면 나아질 거라 믿었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끼리끼리 견고한 성을 쌓은 여학생들의 세계에서 전학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좁았다. 한 번 다친 마음은 방어기제가 되어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잊게 했고, 교실의 배타적인 분위기는 아이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매일 지각하고, 급식실에 갈 용기가 없어 굶다가 조퇴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아이는 이제 ‘학업 숙려제’라는 이름 뒤로 숨어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아이에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 나오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친구)를 하나 안겨주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는 인간의 감정을 인지하고 성장하며, 인간보다 더 격조 높은 희생으로 아픈 소녀 ‘조시’를 돌본다. 소설 속 조시의 아버지가 인간의 마음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묻자, 클라라는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마음은 방이 아주 많은 집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신중하게 연구한다면, 그 방들을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은 타인의 마음이라는 방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모두 가정에서 귀하게만 자라 양보나 희생에 서툰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는, 누구 하나 손해 보려 하지 않고 관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차라리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클라라 같은 존재가 이들에게 더 절실한 친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득 남편과 나누었던 농담 섞인 대화가 떠올랐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 우리 부부도 간병 로봇을 사야 하니 ‘로봇 적금’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불이익을 따지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간병 로봇을 미래의 수양 자식으로 들여야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된 나를 깊이 이해하고 오로지 선한 감정만을 배워나가는 AF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지만 지금 나를 더 깊은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기계 로봇’의 등장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서로에게 로봇보다 차가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이터로 입력된 로봇조차 타인의 마음이라는 ‘방’에 익숙해지려 그토록 정성을 다하는데, 정작 온기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서로의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글퍼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서로의 곁이 되어 그 빈 곳을 채워주기를 소망한다.
인공지능 친구 클라라를 기다려야만 하는 외로운 아이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말이다.
* 작년 운동회 때 적은 글입니다. 교장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요?에 실린 글을 재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