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요양병원 투어

by 해림

“여보, 오늘은 차 두고 지하철 타고 다녀옵시다.”

주말이면 정해진 일과처럼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병원은 지하철 한 구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웃해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에 남편과 나는 내의를 챙겨 입고 두툼한 패딩을 걸친 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먼저 들른 친정어머니의 병실. 어머니는 몽롱한 표정으로 두 손이 결박된 채 누워 계셨다.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보호복과 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면회를 시작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겨우 결박을 느슨하게 풀어드리고, 뼈만 남은 앙상한 팔다리를 살살 주무르는 일뿐이다. 피부가 몹시 거칠어져 있어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보습제를 듬뿍 발라 드렸다.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제발 단 하루만이라도 저 손목의 결박을 풀고 드시고 싶은 음식 한 끼 마음껏 맛보신 뒤 돌아가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이 고개를 든다.


금세 잠이 든 어머니의 귀에 대고 “엄마, 또 올게요”라고 중얼거리며 병실을 나왔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두려움을 느끼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시어머니의 병원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치매가 조금 더 깊어지신 듯했다. 흐릿한 눈빛으로 자식들이 면회도 안 오고 간식도 챙겨주지 않는다며 서러워하셨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여섯 명의 자식은 늘 두셋씩 짝을 지어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고 있다.

“집에 가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


큰소리를 치시는데, 어머니가 가고 싶다는 그 ‘집’은 최근의 거처가 아니라 70년 전 당신이 어릴 적 살던 고향 집이었다. 머위 잎을 따서 쌈을 싸 먹고, 쑥을 캐서 국을 끓여 먹겠다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신다. 뇌에 새겨진 최근의 기억들은 낙엽처럼 모두 날아가 버리고, 아주 오래전 말랑말랑했던 시절에 새긴 추억만이 짙게 남은 모양이다.


나는 “걷는 연습을 하셔야 집에 간다”며 단호하게 현실을 일깨웠고, 남편은 그저 듣고만 있으라며 내게 조용히 눈치를 주었다.


병원을 나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누군가 버리고 간 부서진 비닐우산을 주워 머리만 간신히 가린 채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마음이 착잡해야 마땅한 상황인데, 빗속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어쩐지 즐거웠던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들어간 카페.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인지 라테 크림 위에 우리 부부의 사진을 인쇄해 주는 커피가 나왔다. 데이트하는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사진 속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찻집을 전전하던 대학 시절의 낭만이 문득 떠올랐다.


불과 몇 분 전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두 노인의 고통을 잠시 깡그리 잊어버린 채, 나는 나의 빛나던 추억 속에 젖어 있었다. 나도 환갑을 넘고 보니 서서히 치매 기운이 발동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삶의 본능적인 방어기제일까.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여러 번 사선을 넘나들며 ‘살아계신 듯 아닌 듯’ 우리 곁에 머무시는 수개월 동안, 나는 세상사의 풍파에 더욱 무디어졌다. 아니, 초연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제는 어떤 폭풍이 와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미 내 심장을 때리고 지나간 수많은 역경과 고난의 타격으로 내면의 근육이 단단해진 덕분이리라.


비 오는 날의 요양병원 투어는 착잡함으로 시작해 낡은 추억의 행복으로 끝이 났다. 문득 어느 기도문의 구절을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주여, 저에게 평온을 주시어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꾸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이전 03화어머니의 집들이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