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선생님, 다른 학교로 이동하시나요?”
공식 발표가 나기도 전인 점심시간 직후, 부장 선생님 한 분이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오후 2시, 교육청 전보 명단에서 나의 새 부임지를 확인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남자 고등학교였다.
몇 달 전부터 구순인 친정어머니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조석으로 살피기에 지금의 학교는 너무 멀었다. 그동안 도로 위에서 목숨을 건 질주를 하며 버텨왔지만,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인생의 이치라 했던가.
새 부임지는 교사 신축 공사로 인해 열악한 모듈러 교실에서 수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운동부와 기숙사까지 있는 그곳에서 나는 9월부터 지금보다 더 깊은 '일 구덩이'에 빠지게 될 터였다. 업무 인수인계 자료를 준비하다가도 자꾸만 창밖 운동장으로 시선이 머문다.
배산임수의 정기를 품은 넓은 운동장, 푸른 수목과 단정한 교사(校舍)를 두고 떠나려니 울컥한 마음이 차오른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화단 구석구석을 거닐며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는지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이름 없는 잡초가 어디서 돋아나는지조차 다 외워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어제의 기억조차 예고 없이 사라지곤 한다. 새 학교에서의 분주한 일상이 시작되면 이곳의 아름다운 기억마저 일시에 망각하게 될까 봐 두렵다. 겨울 끝자락의 목련, 초여름의 앵두나무, 화단의 수국, 그리고 따뜻했던 동료들과 아이들. 나는 이 모든 풍경을 되도록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며 길게 그리워하고 싶다.
옛말에 ‘구수존명불상(久受尊名不祥)’이라 했다. 귀한 이름이나 명성은 너무 오래 가지고 있으면 상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나는 이곳에서 평교사로 4년, 첫 교감 부임지로서 다시 2년을 근무했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3대 덕을 쌓아야 온다는 여자 인문고이자, 수려한 산 아래 공기 맑은 평지에 자리 잡은 곳. 학생들이 단정하고 학업 열의도 높아 교사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이 학교에서 나는 충분하게 행복했다. 그러니 흔적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지도 모른다.
교직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교사로서 다시 이곳에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것이다. 훗날 어느 마을 할머니처럼 슬며시 찾아와 운동장을 돌며 추억을 복기할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제 아크릴로 된 묵직한 교감 명패를 상자에 담는다. 스쳐 지나간 교감이었던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곳에서 성심을 다했고, 내 한 몸 편 하자고 꾀를 부리지 않았으며, 소신껏 정직하게 일했음을 스스로 알기에 그것만으로 족하다.
안녕, 나의 정든 배산임수 학교여. 내가 다시 찾는 그 날까지 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