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학원비보다 귀한 부모의 정성

by 해림

최근 한 후배 교사가 모임자리에서 두 자녀를 모두 영어유치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아이 한 명당 학비와 차량비, 교재비 등을 합치면 매달 200만 원, 둘이면 무려 400만 원이다. 후배는 등골이 휜다며 울상을 지었지만, 평소 그의 화려한 겉모습을 아는 동료들은 그 고충이 진심 어린 토로인지 아니면 은근한 재력 자랑인지 몰라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영어 교사 출신 교장이자 손녀를 둔 할머니로서 호기심이 발동해 슬쩍 물었다. "아이들이 영어를 좀 잘하나요?" 후배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발음은 확실히 좋아요. 그런데 제가 뭘 가르치려 하면 ‘엄마, 그 발음 아니야’라며 제 발음을 지적 하네요." 3세에서 7세 사이, 언어 습득의 민감기에 외국어의 발음과 억양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 단계부터 은행 대출까지 받아 가며 '학비 지옥'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다. 두 딸을 의전원과 로스쿨에 보내기까지 치열하게 뒷바라지해 본 나였지만, 이제는 시작점 자체가 달라진 모양이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 우리 큰딸은 두 돌 된 아이에게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준다. 11월생이라 말이 유독 늦었던 손녀는 요즘 물려받은 책더미 속에서 언어 표현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며칠 전 딸이 내 눈치를 보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엄마, 내년엔 영어유치원 못 보낼 것 같아요. 우리 형편엔 무리예요." 내심 '할머니가 도와주신다면'이라는 뒷말이 나올까 봐 말을 아꼈지만, 나는 딸의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 레지던트인 딸과 공보의인 사위가 직접 공을 들이는 교육이 영어유치원보다 훨씬 ‘가성비’ 높은 투자가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과연 자녀를 꼭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할까? 사실 영어유치원은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영어로 하루를 사는 곳’이다. 게임, 노래, 역할극을 통해 한국어를 거의 배제한 채 영어에 노출된다.


문제는 이 환경이 모든 아이에게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점이다. 비용도 과하지만, 내성적이거나 새로운 환경에 민감한 아이, 혹은 모국어 발달이 더딘 아이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와 거부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직접 영어 지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업에 쫓겨 아이와 눈 맞출 시간조차 부족하거나, 영어라는 언어 자체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부모들의 고충을 어찌 모르겠는가.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전문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품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하거나 아이의 미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부모의 공부’로 채워보겠다는 용기만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강력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 옆에서 함께 사전을 찾고, 함께 영상을 보며 “이건 무슨 뜻일까?”라고 묻는 부모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가장 훌륭한 학습 모델이 된다. 부모가 영어를 ‘학습’이 아닌 ‘즐거운 탐험’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여줄 때, 아이는 비로소 언어의 바다에 기꺼이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영어 능력은 부모의 재력이 아니라 ‘부모의 관심도’와 직결된다. 부모가 먼저 공부의 즐거움을 보여주어야 아이가 다니는 교육 기관의 실태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교육의 질도 확인할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결코 돈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다. 요즘 우리 사위는 영어 교육 서적을 탐독하며 실생활 영어에 공을 들인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지시를 영어로 건네며 아이의 귀를 틔워주려 노력 중이다.


어제는 온 식구가 모여 애니메이션 '페파피그(Peppa Pig)'를 봤다. 영상의 완성도에 감탄하며 나 역시 아이와 함께 돼지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생글거리는 손녀의 얼굴을 보며 확신했다. 매달 수백만 원의 학비를 부모의 따뜻한 정성과 끊임없는 공부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보다 귀한 투자는 없다는 것을.


비싼 학원비 대신 부모가 직접 책을 펼치는 수고로움을 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교육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부모의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자라겠다는 부모의 의지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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