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남편도 외출하고 지극히 한가한 일요일 오전, 단호박죽 한 그릇을 비우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영화 <더 웨일(The Whale)>을 만났다.
주인공 찰리가 온라인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설정이, 부족한 글을 세상에 내놓는 나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영화 <미라>의 브렌던 프레이저는 이 영화에서 272kg의 고도비만자 '찰리'로 완벽히 변신했다. 거대한 몸을 소파에 파묻은 채 피자와 치킨을 흡입하는 그의 모습은 비참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마주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체구를 보며 느꼈던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들과 친해지며 "제발 건강식을 드세요(Please eat healthy food)"라며 한국 음식 전도사를 자처했던 기억이 스친다.
찰리는 단순한 ‘카우치 포테이토’를 넘어선 ‘카우치 웨일(Couch Whale)’ 그 자체였다. 그 형상은 미국식 식습관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상실의 고통 속에 스스로를 벌하듯 자신을 방치해 온 시간의 물리적 귀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단 비만만을 다루지 않는다. 한때 영문학 교수였던 그는 이제 외부와 단절된 채 온라인 작문 강사로 생계를 잇는다. 자신의 흉측한 몸을 가리기 위해 카메라를 끈 채 수업을 하던 그가 수강생들을 향해 신랄하게 내뱉는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발, 정직하게 좀 써보세요(Write me something honest)."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찰리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딸 엘리를 찾는다. 상처 입은 십 대가 된 엘리는 아빠를 향해 "죽어버리라"며 경멸을 쏟아내지만, 찰리는 엘리가 쓴 에세이에서 가공되지 않은 진정한 솔직함을 발견하고 "너는 정말 영특하고 놀랍다"며 찬사를 보낸다.
딸이 뱉어내는 날것의 감정, 그 지독한 솔직함이야말로 그가 평생 가르치고자 했던 진정한 '글'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 카메라를 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가족을 떠났던 과오를 사과하며 생을 마감한다.
영화를 보며 자문했다.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두어야만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는 걸까. 법정에서, 혹은 뉴스 속에서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는 이들은 결국 자신이 만든 거짓을 진실이라 믿으며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나의 삶도 반추해 본다. 나 역시 선명히 기억하는 어떤 순간에는 나를 보호하거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둘러댔던 거짓들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솔직하게 살아온 게 아니냐"며 자신을 방어하는 나의 전략과 재주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오늘 찰리를 만나고 나서, 내가 왜 이 늦은 나이에 '시답잖은 글쓰기'를 계속하는지 그 이유를 더 명확히 찾았다.
요즘, 2년 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속에 가득한 거짓과 위선에 부끄러움이 하늘을 찔렀다.
처음엔 그저 기록하는 심정으로 적었으나, 다시 들여다본 문장들 사이에는 나를 포장하려는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다시 쓰며 거짓을 한 겹씩 걷어내고 있다. 문장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나의 진심을 채워 넣을 때마다 내 마음은 비할 데 없이 후련해진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막으려 해도, 글을 쓰면 쓸수록 문장의 틈새로 거짓이 조금씩 누수되었다. 그리고 그 누수된 만큼 역설적으로 내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이것이 바로 강사 찰리가 말한 '정직한 글쓰기'의 구원이 아닐까.
그동안 나는 세상과 나를 인위적으로 연결하느라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나의 진심을 살피지 못했던 어리석은 '모지리'였다. 정작 나의 진심은 한쪽으로 던져 놓았던 셈이다.
하지만 늘그막에 시작한 글쓰기는 나의 진정성을 찾고 모자랐던 나를 용서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찰리가 마지막 순간 무거운 발을 떼어 딸에게 다가갔듯, 나 역시 매일 한 줄의 정직한 문장으로 내 안의 진심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