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의 저녁, 남편과 집 근처 돼지갈비 맛집을 찾았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와 포근한 연기가 가득한 식당 안, 사람들은 갈비를 안주 삼아 저마다의 근심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내 귀에 콱 박혔다.
"우리 집 자식들은 나를 아주 '봉'으로 알아!"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사분들이었다. 차림새나 말투로 보아 공직에서 퇴직한 듯한 그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식 이야기로 열띤 토론 중이었다.
한 분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결혼한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오면 며칠 식비로 백만 원 깨지는 건 예사고, 외식이라도 하면 무조건 본인이 계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자식들은 계산할 낌새도 없이 이쑤시개를 물고 느릿느릿 뒤따라오는데, 결국 본인이 카운터로 달려가게 된다며 허허 웃으셨다.
아들 부부 연봉 합이 2억이라며 은근히 자식 자랑을 섞으면서도, 정작 대접받지 못하는 서운함이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내가 돈 나갈 데가 없으니 내는 게 맞지, 걔들은 새끼 키우느라 힘들 텐데 뭘 바라겠나"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은근한 미소를 나눴다. 우리 부부 역시 한때 비슷한 문제로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두 딸을 교육시키고 출가시키느라 한 치의 여유 없이 살았다. 이제 큰돈 나갈 일은 없겠거니 했지만, 웬걸. 손녀가 생기고 나니 '돈 나갈 일 없다'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지던트 딸과 군의관 사위는 베이비시터 월급 대기에도 빠듯해 보이고, 주말부부인 작은딸 부부는 비행기 값으로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산다.
남들은 의사와 검사 딸에 의사사위들까지 둔 부러워하지만, 부모 눈에는 한껏 높아진 눈높이와 고물가 사이에서 허덕이는 자식들의 형편이 빤히 보인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 나는 못 입고 못 써도 자식만큼은 어디 가서 기죽지 않게 키우려 노력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자식들의 소비 수준은 그리 낮지 않다.
부모보다 자신들의 생활을 먼저 챙기는 그들의 소비 행태가 서운할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봉 높은 엄마가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자식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사돈댁 형편이 좋든 말든 그건 나와 상관없고 내 딸들의 지갑이 늘 두둑했으면 좋겠고, 예쁜 손녀에게는 제일 비싼 한우와 물 좋은 생선만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식당에 계산대에 서면 결국 내 카드가 총알처럼 먼저 튀어나가는 이유다.
유튜브의 전문가들은 노년의 '자녀 리스크'를 조심하라며, 자식에게 퍼주지 말고 역모기지론이라도 해서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경고한다.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은 이미 늦은 공염불이다. 나는 두 딸의 교육비를 내야 할 '세금'처럼 여겼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이들에게 투자하면, 적어도 자식들은 빚 없는 미래를 살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공무원이고 대출 자주 하니 나는 은행의 VIP고객이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딸들은 의전원과 로스쿨을 다녔고, 7년간 서울 유학 생활 뒷바라지는 내게 큰 부담이었지만 기꺼이 감내했다.
이제 퇴직을 딱 1년 남겨두고 목돈조차 남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식들에게 뭔 일만 생기면 돈백만 원씩 덥석 손에 쥐여주곤 한다. 부동산 중개사인 남편은 한술 더 떠, 죽기 전 딸들에게 빌딩 하나씩은 물려주겠다는 허황된 포부를 버리지 못한다.
실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소망을 말하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역시 옆 테이블 아버지들처럼 자식 앞에서는 기꺼이 '봉'이 되고 친구들 앞에서는 자식 자랑 섞인 하소연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싶은 대한민국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다. 부모는 퍼주는 게 습관이고, 자식은 받는 게 당연한 법인가 보다.
남편은 가끔 내게 '당신은 통이 너무 크다'면서 걱정하며 "다 퍼주고 나면 우린 뭘 먹고 사느냐, 나중에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청구해야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부부는 노년에 연금으로 삼시 세끼 챙겨 먹고 보험으로 병원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역모기지론으로 아파트 갉아먹고살면 되지 않겠나 싶다.
오늘도 나는 딸과 손녀가 좋아하던 밑반찬을 만드느라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다. 내 카드가 긁히는 소리가 때로는 내 노후를 조금씩 갉아먹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자식들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 시대의 '행복한 봉'이 되고 싶다. 자식들이 안정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재벌 부럽지 않은 마음의 부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