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인 내게는 두 딸의 교육에 관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소망 하나가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영어 발음과 억양을 원어민 수준으로 완성해 주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박사과정까지 접해온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Hypothesis)’ 가설은 내게 일종의 신앙과도 같았다. 특정 시기가 지나면 언어 습득의 문이 닫힌다는 그 이론을, 나는 내 아이들의 인생을 건 나침반으로 삼았다.
얼마 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큰딸이 자화자찬 섞인 농담을 건네왔다. 본인의 영어 실력이 상위 10% 안에는 거뜬히 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이나 연수를 받은 적도 없는 아이지만, 실제로 딸은 영어의 네 영역 모두 거침이 없다. 자녀의 영어를 직접 지도함은 물론, 학회에서의 유창한 발표와 영문학 원서를 우리말 책처럼 편하게 읽어 내려가는 실력을 갖췄다. 딸은 내게 물었다.
“엄마가 설계했던 그 학습 경로가 정말 옳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 당시에 그런 환경을 만들어줬어?”
딸의 인정 한마디에 그간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가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의 대답은 간결했다. “엄마가 60년대생 ‘귀머거리 영어 교사’로 살며 느꼈던 그 절실함 때문이었어.”
외국어 습득에서 3세부터 7세에 이르는 ‘민감기’는 음운 체계가 형성되는 골든 타임이다. 성인이 되어 영어를 정복하려 애썼지만, 요즘 큰딸 부부에게 지도를 받는 여섯 살 손녀보다 투박한 내 발음을 체감할 때마다 조기 노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가끔 손녀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다 내 발음을 망칠까 걱정이 되고, 도리어 손녀가 내 발음을 교정해 줄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가 민감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격차가 벌어짐을 알았기에, 우리 집은 온종일 영어 소리로 가득했다.
내가 듣던 CNN 뉴스부터 영어 테이프, 노래들을 백색소음처럼 틀어두었다.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영어의 운율을 세포마다 새겼다.
한글도 깨치기 전이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수없이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소리와 장면을 연결하며 스스로 의미를 포착해 나갔다.
자막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소리를 먼저 깨쳤고, 그 과정에서 한글까지 부수적으로 습득하는 마법 같은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마법은 이제 내 손녀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유명 원어민학원을 찾았다. 수년간 이어진 원어민 수업 비용은 실로 막대했다.
그 당시 형편으로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치였을지 모르나, 아이들이 영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그 시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학원 숙제 중 내 귀에도 희미하게 뭉개지던 원어민의 발음을 큰딸이 정확히 잡아내던 순간, 나는 아이의 청각 주파수가 영어에 완벽히 동기화되었음을 직감했다.
나의 국비 장기 연수는 중학생이던 작은딸에게 일취월장의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서 다진 기본기 덕분에 아이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미국 공립학교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영어를 체득했다.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어 실력을 넘어 세상에 맞설 자신감까지 안겨준 귀한 시간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화룡점정은 뜻밖에도 《해리포터》였다. 어학원 교사에게 상으로 받은 원서 1권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마법 같은 영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지루한 공부가 아니라 친구 ‘해리’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넘기던 페이지들은 아이들의 독해력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큰딸은 결혼하며 우리 집에 있던 손때 묻은 《해리포터》 전 권을 챙겨갔다.
가끔 상상해 본다. 그때 학원비 대신 서울에 소형 아파트라도 사두었더라면 지금쯤 강남에 번듯한 집 한 채는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영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딸들은 각각 의사와 검사가 되어 글로벌 시대의 주역으로 당당히 섰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 영어는 극복해야 할 장벽이 아니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닦아놓은 길 덕분에 아이들의 세상은 날개를 달고 무한히 확장되었다.
그것이야말로 교사이자 엄마로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