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를 키우는 토양, 부모라는 이름의 전략

by 해림

누구에게나 처음은 중요하다. 특히 성장의 궤도에 들어선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늘 강조한다. 아이가 홀로 날아오르기 전, 부모와 함께 다지는 ‘출발점 지도’가 그 아이의 평생 학업 자존감을 결정한다고 말이다.


우리 집 두 딸에게 가장 강렬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입학 전 치르는 ‘배치고사’였다. 지금은 풍경이 달라졌지만, 당시 고등학교 배치고사는 사실상 ‘미니 수능’과 같았다.


중학교의 기본 개념을 복습함과 동시에,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고등학교 공부를 감당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목격한 경험적 통계는 냉정하다. 고교 입학 시 상위 성적을 거둔 아이가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확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아름다운 쓰레기’라 불리는 중학교 성적표의 환상에 안주하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의 냉혹한 상대평가 앞에 좌절할 때, 출발점에서 1%의 자신감을 선점한 아이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역시, 견뎌봤던 놈들이 잘 견디는 법이다.


나는 배치고사를 앞두고 두 딸에게 이른바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다. 시중의 문제집을 섭렵하게 하고, 현직 교사의 전문성을 발휘해 과목별 오답을 철저히 분석하도록 도왔다.


큰딸은 과제를 처리하는 빠른 속도만큼 생기는 빈틈을 메우기 위해 유형 반복을, 작은딸은 완벽한 이해가 선행될 때까지 의문을 파고들며 밤을 지새웠다.


내가 모르는 과목은 동료 교사들에게 물어가며 아이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고등학교라는 낯선 세계를 맞이할 전투태세를 함께 갖춘 것이다.


그 결과, 큰딸은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고 작은딸은 전교 1등으로 입학식 선서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상위 그룹에서 출발한 아이들은 주변의 기대와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높은 문지방을 한 번만 같이 넘겨주면, 그다음은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낯선 방 안을 탐색할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남들이 말하는 ‘엄마 찬스’가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인정하겠다. 부모의 역할이란 결정적인 시기에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한 단계 올라서도록 돕는 가장 가까운 조력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조력자의 삶은 고달프고 힘들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유전자가 남달라서 그렇겠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의 문장을 빌려 대답하고 싶다.


“숲에서 가장 키가 큰 상수리나무가 그토록 성장한 것은 가장 단단한 도토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나무가 햇빛을 가리지 않았고, 토양이 깊고 풍요로웠으며, 토끼가 밑동을 갉아먹지 않았고, 벌목꾼이 잘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단단한 도토리가 된 것은 결코 유전자의 승리만이 아니다. 평생 가르치며 공부에 몰입해온, 그래서 공부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엄마를 만나 훈련받을 ‘기회’를 가졌고, 아이가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할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풍요로운 토양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의 가능성을 계발하는 기회이자 넛지(Nudge)가 되기를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오늘 나는 교장으로서 학부모들 앞에 섰다. 교장이 되기 직전 고등학교에서 정리해둔 고교학점제 자료를 바탕으로 고교 진학을 앞둔 학부모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내 강의의 핵심은 명확했다. 아이의 재능을 믿되,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매번 시작 단계에서 ‘첫 단추’를 함께 끼워주는 부모의 태도가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자식이 상위 1%이기를 바란다면, 부모의 치밀한 전략과 아이의 뜨거운 노력이 만나는 접점에서 탄생한다. 쉬운 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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