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퇴직을 앞둔 교장에게 이 여유는 출근해야 하는 방학보다 더 달콤하고 푸근하다.
남들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느라 분주하지만, 이 고장 토박이인 나는 갈 곳이 따로 없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신 뒤로 내게 ‘친정’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지워졌고, 먼저 안부 전화 한 통 건넬 줄 모르는 무심한 남자 형제들과의 만남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가을비 내리는 아침, 남편과 우산을 쓰고 하천가를 산책했다. 가로수 길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모과나무에는 주먹만 한 열매들이 지천이다. 아직 덜 익은 초록 모과 하나를 따서 손에 쥐어본다.
유화 물감 Sap Green에 Zinc White와 Permanent Green Pale를 적절히 섞으면, 노란색으로 변하기 직전의 저 서늘하고 깊은 연둣빛이 나오지 싶다. 그 색의 깊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집 앞 카페에 앉아 빗줄기를 바라본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6차선 대로는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땐 없던 길이고, 대학생 땐 아버지가 계신 병원을 들락거렸던 길이다.
그 시절 아버지를 걱정하며 울먹이던 스무 살의 소녀는 이제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되어, 요양병원으로 바뀐 그 건물을 무심하게 마주할 줄 안다. 아,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그동안 나에게 고향은 늘 결핍의 대상이었다. 태어난 집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달려가고 싶은 따뜻한 그리움이 서린 곳이어야만 고향이라 믿었다.
나는 어머니가 교사로 계시던 사택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이후엔 주민등록 초본이 여러 장이 되도록 거처를 자주 옮기며 살아왔다.
내가 존경하는 김훈 작가는 저서 『허송세월』에서 새들의 죽음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한강 하구에서 죽지 않는 새들이 기어코 시베리아로 돌아가서 죽을 까닭도 없어 보였다. 죽을 자리를 애써 고르지 않는 듯싶다. 떠나온 자리와 떠나갈 자리가 같다. 여기는 새들의 고향이 아니고 거기도 새들의 고향이 아니다."
그에게 포착된 철새처럼, 나 역시 여기도 저기도 절대적인 고향은 아니라고 부정하며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해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 유년의 대부분은 이곳에 있었다. 여기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했고, 병든 아버지를 보냈으며, 10여 년 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재개발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옛 집터는 우울했던 기억 때문에 일부러 외면해 왔지만, 이제는 그 기억마저 많이 무뎌졌다.
굵어진 모과나무 몸통과 바윗덩어리만큼 커진 열매를 보며 세월을 실감한다.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인생 무대의 막을 내리지 못하던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전 무대가 지금의 무대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버티는 배짱이 생겼다.
정처 없이 헤매던 과거와 장막을 치고 절연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역설적으로 나를 고향으로 이끌었다.
"지난 과거는 지나간 대로 두자(Let bygones be bygones)."
한때 이곳만 생각하면 눈밑이 시렸으나, 이제는 남들이 명절마다 달려가는 정겨운 고향이나 진배없다.
나는 이번 긴 연휴 동안 나의 고향에서 푹 쉬어보려 한다. 떠나온 자리와 떠나갈 자리가 같았던 철새는 결국 한 마리의 텃새가 되어 제 자리를 찾았다. 그래, 이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