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하자마자 큰딸 집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딸보다 먼저 퇴근한 사위가 두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나는 딸이 귀가하기 전까지 육아의 짐을 조금 나누기로 했다.
오늘따라 첫째 손녀의 짜증이 유독 심했다.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샤워를 하며 온갖 생트집을 잡아 아빠 속을 긁어놓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다 그렇다지만 지켜보는 할머니 마음은 편치 않아 아이를 곁에 앉히고 타일러 보았다. "아빠가 너랑 놀아주랴, 밥 해주랴, 일하랴 얼마나 힘들겠어? 우리 공주님이 짜증만 조금 줄여도 아빠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텐데."
손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더니, 이내 내 등 뒤로 슬그머니 붙어 업혀보려 시늉을 한다. 부실한 내 허리를 지키려 앉은 자세로 흔들흔들 업어주며 "할머니는 네가 최고야, 일등이야" 하고 달래주니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환한 화색이 돈다.
동생이 생긴 후로 부쩍 늘어난 첫째의 결핍과 응석을 사랑으로 넉넉히 채워주는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절감한다. 내가 아이를 달래는 사이, 사위는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오늘 메뉴가 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어머님, 오늘은 짜파게티입니다!" "세상에, 저녁으로 짜파게티라니. 그게 밥이 되니?"
놀라 묻는 장모에게 사위는 자신이 정말 먹고 싶어서 준비했다며 넉살 좋게 웃는다. "큰딸은 면 종류라면 질색을 할 텐데?"라고 덧붙이자, 사위가 의젓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머님. 이제는 좋아합니다. 저랑 7년 넘게 살다 보니 저희 둘은 거의 '동기화'되었습니다."
그 말이 어찌나 신선하고 기특하던지. 노트북과 휴대폰의 데이터가 일치하듯, 매사 마음과 취향이 같은 주파수로 움직인다는 뜻일 게다.
고집 센 큰딸이 그리 쉽게 동기화될 성격은 아닐 텐데,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살며 사위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성격이 유연해진 모양이다.
사위가 딸의 모난 부분을 잘 품어주며 살고 있다는 고마움과, 남편의 입맛까지 닮아가는 딸에 대한 대견함이 교차했다.
자식을 키우며 그들이 부모인 내 마음과 '동기화'되길 바랐던 순간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부모보다는, 평생 곁을 지킬 배우자와의 동기화가 훨씬 더 절실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말이다.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며 단단한 가정을 일구어가는 딸 부부의 모습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입맛을 닮아 인스턴트 면 요리를 그토록 싫어했던 딸이, 남편을 위해 그것을 즐겁게 나누어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다. 떡국을 참 싫어하던 나였지만, 날씨만 추워지면 떡국부터 찾는 남편의 식성을 따라 평생 부지런히 떡국을 끓여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도 남편과 마주 앉아 떡국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워내며, 그 맛을 '살짝' 좋아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렇게 동기화될 바에야 진즉에 고집 좀 꺾고 남편에게 더 맞춰주며 살걸. 지나온 세월 동안 남편에게 바득바득 우기며 내 취향만 고집했던 순간들이 뒤늦게 멋쩍은 후회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서로에게 동기화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절대 헤어지지 않고 이 긴 시간을 나란히 걸어오고 있으니, 이만하면 꽤 성공적인 ‘인생 업데이트’가 아닐까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방의 입맛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꺼운 동기화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