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고운 손을 물려주고 싶다.

by 해림

최근 큰딸이 아이의 교육을 위해 엄격히 제한해 왔던 영상 시청을 허락했다. 이제 겨우 두 돌을 넘긴 손녀는 생애 첫 영상을 마주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더니, 화면 속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


급기야 바이올린을 내놓으라고 성화인 통에, 딸은 신기해하며 자신이 어릴 적 쓰던 악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 물어왔다.


집안 구석에 소중히 보관해 온 바이올린을 꺼냈다. 활에 달린 말총은 너덜거리고 몸체에는 줄이 두 개뿐인 초라한 몰골이었지만, 내게 그것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두 딸에게 예능을 가르쳤다는 자부심의 증표이다.


손녀는 낡은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투박한 소리에도 매료되어 아예 제 집으로 가져가겠다며 욕심을 부렸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나는 기꺼이 그 소중한 추억을 내어주었다. 그 부서진 바이올린을 마중물 삼아 손녀는 이제 새 악기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일전에 함께 조성진의 연주회를 시청할 때면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연주자의 동작을 흉내 내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딸들에게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재능이 이 작은 아이에게 숨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설레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사실 나의 큰딸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 가방이 아이들의 필수품이던 시절, 우리 딸들의 교육은 바이올린, 미술, 발레로 쉼 없이 이어졌다.


형편이 여유로워서가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의 사정과 방과 후 돌봄이 없던 시대적 환경이 만든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두 딸은 중학생 무렵 악기를 그만두었다.


만약 아이들이 특출 난 재능을 보여 험난한 연주자의 길을 가야 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자식 뒷바라지에 노년을 온통 바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역시 예능과 맞닿아 있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기 전, 부모님은 하나뿐인 귀한 딸에게 그 당시 드물게 예능을 가르치셨다.


분홍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 섰던 기억,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바이엘을 채 마치지 못하고 피아노를 그만두어야 했던 기억은 낡은 사진 속에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이후 가세가 기울어 더는 예능을 더는 배울 수는 없었지만, 사실 그 짧았던 경험만으로도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내게는 음악이나 무용에 눈에 띄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반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미술 분야에서는 뜻밖의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시절 유명 서양화 화가였던 미술 선생님께서는 나만의 독창성이 담긴 정물화에 서슴없이 A+를 주셨다.


하지만 그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배고픈 화가’의 길을 꿈꾸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고, 예술의 가치를 귀히 여기지 않던 시대적 공기 속에서 나 역시 미술을 전공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두 딸을 그토록 줄기차게 예술의 세계로 밀어 넣었던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신 후 더 이상 발레복을 입을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나를 위로하고 달래주는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바랐던 것은 단 하나였다. 나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바쁜 어머니를 도와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는 대신, 내 딸들이 건반을 두드리고 활을 잡는 ‘희고 고운 손’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삶이 나보다 조금 더 다채롭고 우아하며 아름다워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옛날, 피아노 레슨을 가기 싫어 도망치는 나를 질질 끌고 가셨던 나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현실 속에 묻어두어야 했던 당신의 예술적 갈망을 딸인 나를 통해 해소하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까. 나는 최근 중고 디지털 피아노 한 대를 사서 방에 들여놓았다.


이제 타인의 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 의지로 건반 앞에 앉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나만을 위한 선율을 즐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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