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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Aug 28. 2022

반창고

22.08.28

 4년 만의 복직, 내가 맡은 학년은 2학년이다. 휴직하기 전 1학년 담임을 했어서 저학년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물론 모든 게 처음인 아이들은 쉽지 않다. 9살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는 지금 4살 어린이를 키우고 있다. 모든 것을 할 줄 모르는 유아였다가 하는 일이 서툴지만 전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래, 해봐라” 하고 팔짱 끼고 있어야 하지만 마음과 시간이 그렇게 두길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윗도리도 스스로 입겠다고 나서다 팔이 빠지지 않아 운다. 바지는 한쪽에 두 다리를 넣어 울상을 짓기 일수다. 그래도 신발 하나만큼은 잘 신는다. 어린이집에서는 스스로 신어 야하기 때문에 많은 시도 끝에 오른쪽, 왼쪽도 구별해서 잘 신는다. 아직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할 게 많다.

 6시에 일어나 우리 집 어린이가 등원을 잘할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잘 챙긴 뒤 9살 어린이가 기다리는 학교로 출근했다. 내 복직 첫날은 2학기 개학날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와 인사를 나누고 책걸상을 바로 하는 모습을 본다. 색연필을 꺼내 미리 올려둔 삼각 이름표에 색칠을 시작한다. 슥슥- 삭삭- 소리만 들린다. 삼각 이름표는 A4 용지가 네 번 접혀 있고 그중 두 칸만 색칠하면 된다. 이름은 작게 쓰기 십상이라 색칠만 할 수 있도록  글자 테두리만 남게 설정해 프린트해놨다. 1학년에게 같은 과제를 주었을 때 한 시간이 걸렸다면 2학년인 아이들은 그보다 더 금방 끝냈다. 정성을 들이는 정도에 따라 속도에 차이가 나지만 색칠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4살의 속도에 맞춰져 있는 나에게 9살의 속도를 마주하니 천재들을 만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9살은 큰 아이구나,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나에게 속속 달려왔다. “선생님 여기가 아파요.”해서 보면 모두 콩알만 한 상처다. 나에게는 콩알만 하지만 본인의 몸에 난 상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손가락이 몸의 일부인가 싶을 정도로 모르고 살았다가 종이에 조금이라도 베면 딱지가 앉을 때까지 손가락이 따끔거려 ‘손가락이 여기 있었구나.’하고 느낀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작은 상처여도 여간해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닐 것이다. 콩알만 한 상처를 부여잡고 나에게 달려온다. 그러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나는 아이고 아프겠다~로 시작하는 공감 어린 말이다. 두 번째는 보건실에 가도 좋다는 허락이다. 세 번째는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제일 효과적일까? 반창고를 붙여주는 동안 공감 어린 말을 함께 섞어주면 아이들은 금세 웃고 자리로 달려간다. 보건실에 갈 정도의 큰 상처가 아님을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의 토닥이는 말과 반창고만 있으면 된다.

 요즘 우리 집 어린이의 무릎 두 쪽 다 반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한쪽은 어린이집에서 놀이터 놀러 나갔다가 얻은 상처고 한쪽은 같은 날 저녁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얻은 상처다. 피도 안 났고 살짝 긁힌 정도지만 연고만 발라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울면서 “반창고 붙여줘”를 여러 번 외친다. 반창고를 붙여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을 그치고 아픔을 꾹 참는다. 살짝만 부딪쳐 아파도 반창고를 붙여달라 한다. 장난으로 “반창고 붙여줄게”하면서 뽀뽀를 해주면 “뽀뽀 반창고 말고~”하며 다시 운다. 진짜 반창고를 붙여주면 뚝 그친다. 그제야 참을 힘이 생기나 보다. 어쩌면 반창고가 붙여 있는 걸 부적처럼 보면서 아프지 않다 주문을 외울지도 모르겠다.

 복직하기 전 교실을 정리하다 보니 전 담임선생님이 두고 간 반창고가 큰 통에 많이 들어 있었다. 우리 집 어린이를 떠올리며 반창고가 유용하긴 하겠다 생각했는데 25명의 아이들을 일주일만 데리고 있어 보니 생각보다 더 필수적인 용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4살과 9살의 속도는 다르지만 아픔을 견뎌내는 방식에 있어 어린이들의 마음은 같구나.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더라도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아픔을 한 번 더 견뎌보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조금 더 큰 어린이가 되어서 다른데 난 상처에도 스스로 붙일 수 있는 반창고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길. 나는 묵묵히 반창고를 붙여주며 다정한 말도 함께 얹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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