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5
우리 반 교실에는 나를 포함해 26명이 있다. 나는 학습과 놀이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25명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25명을 위한 학습을 계획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속도이다. 아이들의 과제 해결 속도는 다르다. 빠른 속도를 가진 아이들은 습득력이 빠르거나 교사의 지시를 잘 알아듣거나 손이 빠르거나 대충 하거나. 느린 속도를 가진 아이들은 교사의 말이 어렵거나 생각을 먼저 많이 해야 결과물이 나오거나 의욕이 없거나. 빠르고 느린 속도 안에서도 각자의 사정은 다르다. 과제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 해낸 아이들의 추가 과제, 과제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보충으로 줘야 할 과제, 대충 하는 아이들에게 건네야 할 말, 하고 싶지 않은 아이를 독려하는 말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 저학년을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과제 난이도 조절이었다. 아이들이 한글을 모른다는 가정하에 수업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미 한글을 아는 아이가 더 많았다. 그래서 제일 많이 준비한 수업 구조는 수업 목표에 충실한 교과서 위주의 짧은 수업과 쉬운 게임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그를 위해서는 준비와 생각이 많이 필요했다. 조금 귀찮거나 시간이 없는 날에 교과서 위주로 수업하다 보면 각기 다른 과제 해결 속도 때문에 수업이 늘어지거나 그로 인해 아이들은 산만해지기 십상이다. 교사 입장에서 “과제를 다 한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라는 말보다 쉬운 건 없지만 저학년에게 그 말은 곧 “마음껏 놀아도 됩니다.”와 같다. 그래서 준비한 것은 '자투리 시간'이라는 파일함이다. 칠판 앞쪽에 걸려 있는 7개로 분류된 무지개색 파일함은 속도 조절을 도와주는 장치이다. 숨은 그림 찾기, 미로 찾기, 종이접기, 빈 종이, 색칠하기, 만다라 그림 등이 걸려있다. 과제를 빨리 마친 아이들은 지가 입맛에 맞는 자투리 시간을 보내기 위한 프린트를 찾아가서 자리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아직 과제 해결을 다 하지 못한 아이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과제가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가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업이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느끼며 안도한다.
모두의 속도가 이렇게나 다름을 매 수업시간마다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도 자투리 파일함은 중요한 도구다. 빨리 끝낸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서 “선생님 다 했어요. 뭐 해요?”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한두 명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바로 다음 과제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든다. 속도가 빠른 아이들을 지나 고개를 조금만 빼꼼히 내밀어 보면 아직 산 넘어 산인 아이들이 80프로다. 교사는 빠른 아이들보다 느린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집으로 돌아가 텅 빈 교실에 앉아서 오늘 한 과제가 몇 개인지, 얼마나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갔는지 돌아본다. 반 아이들 중 이 과제가 버거워서 교실이 싫어지는 아이가 있을까 짚어본다. 놀이와 학습의 줄다리기를 적절히 조절하고 과제 해결하는 각자의 속도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적어도 공교육은 느린 아이들을 위해 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연의 그림 에세이집 <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읽다 수영 선생님이 한 말을 읽고 한참을 멈춰 있었다. 아, 교사만 속도를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타인을 돌아보고 배려할 줄 아는 걸 알려줘야겠다 생각했다.
“앞사람이 느리다고 도중에 서지 마세요. 속도를 느리게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해요. 그저 빨리만 간다고 잘하는 게 아니에요.”
놀이에서도 분명 이 말은 힘이 클 것이다. 내가 먼저 가야 해, 내가 꼭 일등이 되어야 해, 라 여기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교사가 가진 생각대로 교실이 아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믿는다. 가끔은 성악설이 있다고, 악의 힘이 크다 느끼지만 그래도 그 믿음을 계속 다잡아 본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여겼지만 생각보다 어린이는 똑똑하다.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다음 주에는 학습과 놀이 중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에게도 속도에 대한 태도를 돌아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