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희 Mar 01. 2023

평생 순하게 살아온 여자의 7순

준비되지 않았을때 찾아오는 것들 중

나이 듦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어떤 마음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걸까. 나에게 나이 듦은 언제나 조급하고 초조하고 붙잡고 싶은 지난날의 아쉬움으로 느껴진다.


무려 70년을 살아온 우리 엄마도 그건 마찬가지 일 것이다. 70번의 해 바뀜을 경험하면서도 나이 들기 싫다는 소리를 매해 하는 것을 보면 늙는다는 것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것 아닐까.


티비속 머리가 하얀 멋쟁이 중년 여성을 보며 우아함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본인은 뿌리가 조금만 희끗해져도 까맣게 염색을 하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자수와 빛나는 단추로 무장한 옷들에 관심을 거두며 30대 딸이 입을 법한 무난하고 명료한 스타일의 옷을 찾아 입는 엄마는 며칠 전에도 색이 들어간 본인의 안경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색을 뺀 알로 바꾸자고 했다.


겉모습은 60대 초반, 타고난 유전자로 아이크림도 평생 바르지 않았는데 주름이 별로 없는 엄마는 동안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이곳저곳 고장 나는 곳이 많아졌다.


한번 걸린 감기는 도통 났지를 않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무릎이며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보호대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몸에 부착시켰다. 뼈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고 그렇게 좋아하는 과일과 빵을 당뇨 위험 단계란 소리를 듣고는 자제를 하며 늘 한탄스러워하신다.


그나마 하루를 온전히 누리는 평온한 노후의 삶에 위로를 받아본다.


엄마가 나와 함께 산지는 2년쯤 되었다. 지방에서 평생 살아오다 경기도권으로 오시면서, 처음엔 낯설어 하셨지만 여느 넉살 좋은 아주머니들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름아름 아는 분들도 생기셨다.


나는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엔 시간을 내어 엄마에게 서울 여기저기, 가까운 맛집 이곳저곳을 데리고 갔다. 

2년 동안 그렇게 다니다 보니 알만한 곳도 꽤 생기게 되었고, 티비를 보며 아는 척을 하는 엄마의 모습에 내심 뿌듯함도 느꼈다.


언제고 친한 동생을 만났는데 그 동생 또한 엄마와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했다.


이럴 때 보면 엄마에게 딸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해 주는 사이가 또 있을까. 물론 때때로 투닥거리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마저도 애정 하게 된다.


그런 친구 같은 엄마가 벌써 7순이 되셨다. 


60대까지만 해도 엄마의 나이 듦이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우스꽝 소리로 엄마가 무슨 할머니야 하며 나보다 앞장서 걸어가는 엄마를 뒤쫓으며 아직 청춘이네를 외쳐댔다. 1년도 아닌 하루의 차이인데도 70대가 무엇인지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숫자가 있듯이 엄마에게도 그런 날이 온 것이 체감되었다. 


내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 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다. 결혼 후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는 언니들을 오랜만에 봤을 때 늘어진 눈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프면 걱정이 드는데, 겉모습이 늙으면 왜 마음이 슬플까.


그래도 우리는 엄마의 7순을 따뜻하게 축하해 주기로 했다. 나와 엄마는 성향이 비슷한데 요란스러운 것은 질색이고, 깔끔하고 단출한 것을 좋아한다. 언니는 엄마의 칠순잔치를 준비하려고 했지만(언니는 요란한 것이 좋은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와 엄마는 극구 말렸다. 


누구도 부르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만 간단하게 밥을 먹고 축하해 주는 것으로 하자고.


우리 식구는 총 10명이다. 순이는 결혼해 딸 셋을 두었다. 첫째가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둘째가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다. 그리고 아직 미혼인 셋째가 있었다. 예전엔 딸딸딸 엄마라서 서러움을 좀 겪은 것 같았지만, 지금은 딸 셋 있는 집이라고 하면 다들 부러워한다고 했다. 


아들은 없지만, 큰일에 발 벗고 나서주는 든든한 사위들이 있고 살갑고 세심한 딸들이 늘 다정하게 챙겨주고, 공부 잘하고 착한 손자 손녀가 골고루 있으니, 부자는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인생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여 호텔 뷔페를 갔다. 아담한 꽃다발과 나와 조카가 만든 작은 플랜카드가 전부였지만 우리는 웃음이 떠나질 않으며 행복하게 식사를 했다. 우리 말고도 칠순을 축하하는 테이블이 곳곳이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식사 후, 형부는 엄마에게 칠순 여행을 보내주기로 했고 딸들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현금을 선물했다.


7순이 싫다던 엄마는 그렇게 7순 잔치를 치르고 70대의 나이대에 들어섰다. 


60대에 엄마의 70이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70대에 엄마의 80이 아직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길 바란다. 나이 듦을 몸서리치며, 소녀 같은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없는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