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팽이로 느끼는 소리의 희열

by 수연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아프지만, 밖은 오늘따라 너무 어둡다. 동생을 설득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밖에서 좀 기다려줘.」

「싫어. 자부루와(잠와).」

「한 번만~」

「엄마한테 얘기해.」


아~ 슬프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데 화장실 동행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엄마는 말해야 소용없다는 걸 아는 난 결국 포기하고 만다.


「엄마 성냥 어디었어?」

「변소 가봐 안에 있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창고에 쌓여 있는 철 지난 교과서 한 권을 들고 골목을 지나 변소로 들어갔다.

달빛으로 겨우 성냥을 찾아 종이 한 장을 찢어 불을 붙였다.

그제야 자세를 취하고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해서 교과서 한 장, 두 장을 찢어가며 똥을 누는데, 참~ 집중 안 된다. 하지만 참았던 만큼 급하게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불이 꺼질세라 볼일을 보면서도 손으로는 계속해서 종이를 찢어 넣어 줘야 한다. 겨울엔 불을 붙이면 따뜻해서 좋지만, 여름은 정말 덥다. 주위사항이 있다면 바로 앞에서 불을 붙이고 있으니 앞머리 타지 않게 조심해야 하며,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남은 재는 아침에 아버지가 치워주신다.


이쯤 되면 발이 절여 오기 시작한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남은 종이를 몇 장 찢어 구깃구깃 부드럽게 만든 후 뒤처리를 하고,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손과 옷에서, 변소 냄새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초롱초롱 밝게 빛나고 있다. 저 밤하늘 위에는 내가 점찍어둔 나만의 별이 하나 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비춰주는 듯한 느낌 있는 나의 별,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대부분은 내 소원을 말하는 일방적인 대화지만 말이다. 들키지 않아야 하니 속으로 눈으로 말할 뿐이지만..


사람은 누구든 어느 한 곳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어느 정도 냄새가 사라졌다. 이제는 어둠이 익숙해져 조금 더 있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마루에 앉았다.


오빠 방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친구들이 놀러 온 모양이다. 육남매에 셋째인 오빠는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귀한 존재이다.

동생과 나는 한참 아래라 심부름하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지만, 언니들은 오빠 때문에 자라면서 쌓인 것이 많은 가 보다.

특히 둘째 언니와 오빠는 자라면서부터 많이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승자는 늘 오빠였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우리 집에서 아들에 존재란 특별한 것이었으리라.


그런 오빠는 동네 형, 친구들과 싸워도 지고 온 적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고생한 건 늘 엄마였다. 오빠가 사고를 치고 올 때면, 어김없이 다음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다녀야 했으며, 가끔 말싸움도 오갔기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엄마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오빠보다 한 살 위에 동욱이 오빠가 주황색 자그마한 말을 타고 놀면서 오빠를 놀려 됐던 모양이다. 우리 오빠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으리라, 나이도 어린 오빠는 결국 말을 빼앗아 탔지만, 동욱이 할머니에게 혼줄이 났다.

며칠 뒤 오빠에게도 말이 생겼다. 험한 산을 올라 고사리를 팔아서 아버지가 사 오셨다.


오빠가 중학교 때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몇 날 며칠 산을 오르고 올라 고사리를 꺾고 가마솥 아궁이에 삶고, 엮어 내다 팔기를 몇 번 엄마, 아버지의 노력으로 우리 집에도 자전거가 생긴 것이다.

아부지는 20km 이상 걸어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한 번은 엄마, 아부지를 따라 산에 함께 간 오빠는 중간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다. 그만큼 산이 험하고 가팔랐기 때문이다.

매년 한 철 고사리는 부모님의 농사 외 또 다른 부업이었지만, 그만큼 고된 일이었다. 오빠 또한 자전거가 어떻게 생겨난 걸 알기에 더 소중히 탔던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과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 오빠에 별명은 ‘바우’다. 내가 아는 바우(BAU)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 토지신(土地神)인 니누르타의 배우여신(配偶女神)으로서 건강의 신이다. “그 순결한 손의 접촉으로써 죽은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여의(女醫)”라고 불렸는데, 바빌론을 비롯하여 각지에 그 신전이 있었고 한다.


대충 이러한 신화가 존재하지만 오빠에 별명은 여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오빠가 ‘바우’로 불린 까닭은 단 한 가지다.

바위처럼 이리저리 부딪치며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을 뿐이다. 당시에만도 어린아이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고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집에도 큰언니 위로 남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백일 조금 넘어 체한 걸 모르고 방치했다가 그만 잘못됐다고 들었다.


그 뒤 엄마는 우리가 자라면서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으면 무조건 우선 바늘로 머리를 쓱쓱 문지른 다음, 손마디를 바늘로 쿡 찔러보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고 두 손으로 찔린 곳을 꾹 눌러준다. 그러면 검붉은 피가 나오거나 가끔은 투명한 물이 나오기도 한다. 동네에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엄마에게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더 이상 우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엄마에 마음이었으리라.

나의 오른손 가운데 두 번째 마디엔 찔렀던 바늘의 위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팠다 하면 무조건이었으니까..


아무튼 당시에는 아들이 부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딸이 대세가 아닌가.

결국 시대의 선택은 늘 달라진다.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된 지금, 삶의 방식이 달라졌듯 말이다. 가족의 모습이 바뀌면서 역할 역시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가치에 따라 정해지게 되었다.

그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방향을 바꿔왔다.


오빠는 중학생이 되면서 부쩍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어울리지도 않은 기타는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하모니카는 또 뭔가 싶다. 어린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어김없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는 것을 내 눈으로 여러 번 확인했다.


한참을 마루 앉아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방으로 들어가니 엄마와 동생은 맨바닥에서 벌써 잠들어있었고, 아버지와 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이불을 깔고 자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여러 명이 함께 자다 보니, 자는 시간이 전부 틀렸기 때문이다.


「귀신 안 나오데?」


아버지가 놀리신다.


「즐겁게 얘기하다 왔어」


그렇게 나 또한 엄마 옆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 동생과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가마솥에 있는 밥과 부뚜막에 있는 반찬을 챙겨 마루에서 함께 먹었다.


「밥 먹고 희정이네 놀러 갈래.」

「오늘 토요일이잖아, 희정이네 교회 가는 날이야.」


희정이는 동생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다. 희정이 오빠 창수는 나와 동갑이며, 부모님들은 절실한 교회 신도들이시다. 집으로 자주 가서 놀 때면 어김없이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니들 교회 잘 다니고 있재, 빠뜨리지 말고 가서 기도해래이”

“네 “


애써 일요일엔 교회에 나가지만,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맛있는 간식을 주기 때문이다. 아 또 하나 예배를 듣는 시간은 지루 하지만, 예배 시작 전과 끝날 때 부르는 성가는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나에겐 간식만큼이나 즐거운 시간이다. 사람들이 많아 소심한 내 성격에 크게 소리 내어 불러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주에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 좋은 장소가 교회이다. 엄마는 싫어하셨지만..


「그냥 한 바퀴 돌아보자.」


동네가 조용하다. 다들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둘이라는 것이 참 좋다.


우리는 마을 회관 마당에서 사이다나 콜라, 오란씨 등에 빈 병뚜껑을 모이기 시작했다. 쓰레기통도 한번 뒤져보고 돌이나 화단 근처를 돌아다녀 주워온 것이 한 움큼이다.


지금부터 실팽이를 만들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단추구멍에 실을 꿰어 만드는 것이지만, 남는 단추도 없거니와 좀 시시하다 싶다. 단점이라면 위험성이 많이 따른다는 것이다. 병뚜껑의 끝이 날카로워 종이는 물론 상처도 입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권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지만, 없던 시절 우리는 병뚜껑을 이용해 실팽이를 만들었다. 사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실팽이는 단추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이 모았나?」

「여섯 개, 난 이것만 할래.」

「나는 다섯 개 모았는데.」

「이제 돌 주러가자.」

「도랑에 가서 깨끗한 걸로 골라올래?」

「어 가자.」


우리는 바로 건너편 동네 빨래터 또랑 물속으로 들어가 단단하고 둥그런 손바닥만 한 크기에 돌을 주웠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 바느질 실 중에서도 제일 굵은 실을 골라 다시 회관으로 갔다. 뭐 바로 코앞에 마을 회관이 있어 집에서 놀기보다는 항상 회관 마당에서 놀았다. 단점이라면 조용한 날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에 놀이터이자 마을에서 유일한 가게가 회관에 있었기도 했고, 동네 어르신들에 술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

병뚜껑과 실, 둥글고 단단한 돌, 회관에서 뒹굴고 있는 못하나 끝이다. 동생과 나는 회관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병뚜껑을 바닥에 두고 주워온 돌로 강약에 힘을 조절해 병뚜껑에 톱니모양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요령이 있다. 우선 돌로 병뚜껑을 내리칠 때 +자 모양으로 돌려가면서 몇 번 두들긴 다음, *모양으로 반복해서 두들기다 보면 톱니 모양이 펴지면서 둥글게 그릇모양이 된다.

아직 확실히 펴지지 않은 톱니모양에 끝을 돌아가면서 돌로 잘 정리한다. 오목해진 병뚜껑을 뒤집어서 강약의 힘을 잘 조절해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여기까지면 거의 다 만든 셈이다. 평평해진 병뚜껑을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바닥에 놓고, 주워온 못으로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돌을 이용해 구멍을 두 개 뚫는다. 실을 병뚜껑 두 개의 구멍에 넣어 매듭을 지으면 정말 끝났다.


「돌린다. 잘 봐봐.」

「니네 뭐하노.」


실에 끝과 끝을 잡고, 병뚜껑은 가운데로 한 다음, 반복해서 돌린다. 느낌으로 한 스무 번 이상 돌렸다 생각되면 끝과 끝을 힘껏 잡아당긴다. 두 손을 모았다. 당겼다. 반복하다 보면 실팽이에서 “씽, 씽”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을 가르는 이 경쾌한 소리, 태풍이 지나가는 소리와 정말 비슷하다.

실이 약해서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끊어지는 단점과 끝이 날카로워 살을 벨 수 있어 위험성이 많이 따른다. 가끔 상대방에게 종이를 들고 있게 하고 실팽이를 가까이 대보면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종이가 어느새 두 장으로 나눠져 있다.


여러 개의 병뚜껑을 평평하게 만들어 딱지치기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쪼그리고 병뚜껑을 돌로 찢고 있다 보면 지루했던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것이다. 혼자 놀기에 딱 좋은 놀이 방법인 것 같다.


회관 마당에는 어느새 우리들 외에 몇 명이 더 모여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거 줄게 만들어. 실만 끼우면 된대이.」


우리는 도랑에 들어가 남은 몇 개에 실팽이를 씻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남겨두고 염소 몰이를 위해 논두렁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지만, 오늘은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어 자진해서 일찍 나섰다. 텔레비전 보는 중간에 분명 엄마의 잔소리가 떨어질 것을 미리 예상해서였다.


몸집이 작은 우리지만 염소를 집까지 끌고 오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 염소 마릿수가 많아도 암컷과 수컷 두 마리만 끌고 오면 새끼 염소와 나머지는 그냥 따라 들어오기 때문이다.

겁 많은 염소들 같으니, 나 같았으면 벌써 도망쳤을 거다. 자유를 찾아서 말이다. 겨울이면 반드시 희생양이 한 마리 나와야 할 텐데, 뭘 모른다. 그래서 너희들이 동물인가 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대충 방을 치우고 텔레비전 덮개를 양쪽으로 펼쳤다. 아랫묵에 자리를 잡고 동생과 나는 만화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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