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한달살이
1. 아파트 동거보다 더한 시련, '호텔 원룸'
안나와 카이로에서 지낸 지 어느덧 일주일.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졌다. 나의 엄한 지적과 '거리두기' 전략이 통했는지, 제멋대로였던 안나의 태도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기특해진 안나가 룩소르를 가고 싶다기에 2박 3일 일정으로 함께 길을 나섰다.
문제는 숙소였다. 카이로에서는 방이 두 개인 아파트라 각자의 영역이 있었지만, 룩소르에서 호텔 방 두 개를 잡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결국 싱글 침대 두 개가 있는 트윈룸 하나를 예약했다.
체크인을 앞두고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한집에 있는 것도 대단한 극기심이 요구되는데, 좁은 호텔 방에서 이틀 밤이라니... 설렘과 부담이 파도처럼 동시에 밀려온다. 카이로에서는 수행자 정도면 되었지만, 룩소르에서는 진짜 '돌부처'가 되어야 할 판이다.
문득 한국에 있는 독실한 불자 지인이 떠올랐다. 그 보살님은 인도나 티베트 오지로 성지순례를 자주 가는데, 숙소가 열악해 스님과 부득이하게 한 방에서 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가 "스님이 어떻게 여자랑 한 방에서 잡니까?"라고 펄쩍 뛰자, 보살님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쏘아붙였었다. "거사님, 왜 그리 생각이 세속적이세요? 불교에는 **'사다함(斯陀含)'**의 단계가 있는데, 이 경지에 이르면 절세미녀가 나신으로 춤을 춰도 마음의 호수에 물결 하나 일지 않습니다."
그래, 나도 이번 여행에서 사다함 경지의 돌부처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돌부처가 되려는 건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나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지금 나에게 안나는 보물이다. 2년 넘게 4개국을 함께 여행한 소중한 길동무이자, 나에게 젊음의 활기를 주는 존재다. 이 관계를 깨지 않으려면 안나가 원하는 선을 지켜야 한다.
안나에게 나는 그저 '믿음직한 할아버지'일뿐이다. 그런데 내가 남자의 냄새를 풍기는 순간, 안나는 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고 떠날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순 없다. 그래서 나는 돌부처처럼 무념무상을 견지하려 하는 것이다.
2. 흙빛 신전에 피어난 분홍 꽃, '여사제 안나'
새벽 비행기로 룩소르에 내리자마자 카르낙 신전으로 향했다. 거대한 돌기둥 숲으로 유명한 이집트 최고의 신전이다. 웅장함에 압도되어 구경하고 있는데, 안나가 잠시 사라지더니 가방에서 꺼낸 분홍색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온통 황토색인 거친 돌기둥 사이로 하늘거리는 분홍색 드레스라니. 편한 여행 복장을 한 수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그녀는 단연코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신전을 지키는 현지 관리인들조차 그녀에게 홀린 듯 다가와 특별 설명을 해주겠다며 이끈다.
마치 수천 년 전 신전을 거닐던 고위 여사제가 환생한 듯, 안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 나는 그 곁에서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보디가드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화려한 여사제와 근엄한 보디가드, 룩소르 신전의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된 셈이다.
3. 43세 차이, 우리를 향한 따가운 시선들
관광을 마치고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히잡을 쓴 직원 두 명이 우리를 번갈아 보며 여권을 요구한다. 금발의 젊은 여자와 동양인 중년 남자가 한 방에 투숙한다니,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아가씨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나 보다. 43세라는 나이 차이가 적힌 여권을 확인한 직원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역력하다. 작은 호텔이라 금세 소문이 났는지 모든 직원이 쳐다보는 눈초리가 야릇하다.
불편함은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도 이어졌다. 투숙객들이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훔쳐본다. 특히 나이 지긋한 60대 서양 여성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저 관계는 도대체 뭘까?" 하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안나와 단둘이 여행을 온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커피를 들이켰지만, 속으로는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안나는 그런 시선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신전 관광을 다녀온 안나가 호텔 수영장에 가겠다며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그러더니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을 훌러덩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2년 전, 베트남 해변에서도 그랬지만 그때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훔쳐보기가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20대의 건강미 넘치는 육체가 너무나 눈부셨기 때문이다. 군살 하나 없이 탄력 있는 피부, 생명력으로 꽉 찬 그 몸은 마치 얼마 전 유럽의 미술관에서 보았던 '나신(裸身)의 명화'가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너무나 투명하고, 아름다운 '젊음' 그 자체였다. 70세의 건조한 눈에 비친 그녀의 몸은, 감히 손댈 수 없는 예술품처럼 빛나고 있었다.
4. 신뢰와 상실감 사이
우리는 2년 전 냐짱에서 시작해 부다페스트, 트빌리시를 거쳐 이곳 카이로까지 왔다. 그 긴 시간 쌓인 신뢰가 있기에, 안나에게 나는 더 이상 '낯선 남자'가 아니다. 그녀에게 나는 그저 '완벽하게 믿음직한 할아버지'일뿐이다.
안나가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옷을 갈아입은 것은 나를 유혹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를 이성(異性)으로 의식하는 세포가 0.1%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안나에게 책임은 없다. 그녀는 나를 믿었을 뿐이다.
문득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야기가 떠올랐다. 백인 농장주 부인은 조선인 하인이 있는 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하인은 남자는커녕,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
의 범주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나가 내 앞에서 옷을 벗는 것도 어쩌면 그녀에게 내가 성적 긴장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무해한 존재', 즉 거세된 보호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비록 한국 나이 70이지만 4년째 해외를 종횡무진하는, 아직은 테스토스테론이 철철 넘치는 남자이다. 더 큰 설렘과 즐거움을 위해서 참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현재 상황을 누드촌으로 설정했다. 작년 비엔나 한 달 살이 때 가봤던 '누드 공원'을 떠올린 것이다. 모두가 알몸으로 앉아있는 모습에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엔 아무렇지 않았던 그곳처럼, 여기는 호텔이 아니라 비엔나 누드 공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안나가 벗은 것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5. 마귀와의 싸움, 그리고 작가의 본능
내 방을 누드촌이라 설정하고 '소 닭 보듯' 하려 했으나, 마음속 마귀가 계속 나를 괴롭힌다. 안나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겨우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안나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오빠!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한숨도 못 자겠어! “
안나는 나를 깨워놓더니 이내 '쌔근쌔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멀뚱히 눈을 뜨고 안나의 자는 모습과 천장을 쳐다보았다. 룩소르의 밤은 길고, 마귀와 싸우는 수행자의 밤은 더더욱 길었다.
이튿날이 되자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갔다. 어제 내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켜만 봤더니, 안나는 나를 '완벽하게 안전한 가구' 쯤으로 인식했나 보다. 침대 위를 뒹굴거나 옷을 갈아입는 동작에 거침이 없다. 잘 때는 알몸으로 잔다고 하면서 옷까지 벗어버린다. 힐끗 쳐다보는 내 시선을 피하기는커녕, 마치 그 시선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당하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안나가 서 있다. 빛을 받은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안나, 지금 빛이 참 좋네. 뒷모습이 아주 예쁜데... 그대로 있어봐. 사진 한 장 찍어줄게."
나의 말에 안나가 뒤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고는 포즈를 취해준다. 찰칵. 한 번 찍다 보니 연이어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이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이 찬란한 젊음과 이 기막힌 상황을 기록하고 싶은 작가의 본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