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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Dec 07. 2023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인도 여행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2023년 8월 일본 한달살이를 마치고 11월 태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9,10월 두 달간의 공백기에 인도 패키지여행을 했다. 인도는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일단 패키지여행으로 중요한 유적지와 관광지를 돌아보고, 돌아본 지역 중 인상 깊은 도시를 선정해서 나중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다. 추석연휴기간 7박 9일짜리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다. 


인도는 진즉부터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인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며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등 다양한 종교의 탄생지이다. 몇 년 전 인도사상사를 읽으면서 인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불교와 자이나교 탄생의 토양이 되었던 힌두교, 힌두교의 원천이 되었던 브라만교와 베다경전 그리고 베다경전의 근원이 되었던 아리안족의 이동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진진했다. 중앙아시아에 살던 아리안족이 남하하여 토착민인 드라비다족과 투쟁과 이합집산을 통해 서로의 토착신앙이 결합되었고 이로 인해 카스트 제도와 윤회사상이 등장한다. 윤회사상은 이후 등장하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시크교의 중심사상이 되며 서양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도사상과 현지인의 삶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울러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흔적과 몽고침략의 영향인 이슬람 무굴제국의 영향도 확인하고 싶었다. 


여행사 패키지에 참여한 인원은 11명으로 단출했다. 대부분 60대였으며 여느 여행단체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70%인 8명이었고 남자가 3명이었다. 국내던 해외던 단체여행을 가게 되면 대부분 여성이 70% 정도로 많다. 60대가 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동적이 된다고 하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 패키지 인원이 많으면 단체관광객의 일원이 되지만 11명 정도의 단출한 인원끼리는 서로 어울리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기간 내내 일행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첫 방문지는 바라나시에 있는 녹야원(사르나스)이다. 이곳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처음 설법(초전법륜)을 한 곳이며 불교 4대 성지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절마다 모셔져 있는 부처님이 바로 이 자리에서 최초의 설법을 하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자만 산을 다니다 절에 들리면 반드시 부처님께 합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치자면 부처님께 수천번 아니 수만 번 합장했을 것이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도 마음이 뭉클한데 신심이 깊은 신자라면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종교인들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성지순례를 하고 자기가 따르는 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 이해가 된다.


두 번째 방문지이자 가장 감동스러운 장소는 갠지스 강변에 있는 바라나시 힌두교 성지였다. 강변에서는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힌두교 예배가 열린다. 매일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인파가 모여 경건한 표정으로 예배를 지켜보며 일부는 갠지스강에 들어가 물속에서 예배를 드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길바닥에서 먹고 자면서 성지순례에 참여한다. 강변에는 많은 화장장이 있어서 계속 불이 타오르고 있다. 화장불은 3천 년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굳이 바라나시에 있는 갠지스강가에서 화장을 하고 탄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이유는 죽은 자가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에 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도사상을 근거한 종교는 죽은 후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믿으며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 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힌두교는 열반, 해탈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삶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죽은 후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열반, 해탈이다. 신이 되어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던지 힘든 세상 더 이상 태어나지 않던지만 다를 뿐이다.

바라나시 숙소에서 강변을 오가는 길은 인도인들의 현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현지인인 가이드는 갠지스강으로 가는 여러 길중 현지인들의 생활을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골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람들이 길바닥 곳곳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으며 지나는 길옆의 마구간 같은 좁은 방안에는 온 식구가 옹기종기 앉아서 먹고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참하게 가난한 모습이지만 방마다 제단을 꾸리고 힌두교 신을 모시고 있다. 소들은 어슬렁 거리면서 길을 배회하고 있고 비쩍 마른 개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자고 있다. 사람이나 가축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인생은 살아있는 자체가 “고”라고 하면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 태어나지 않고 열반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했을 만하다.

강변 근처에 15세 정도의 소녀가 누워있고 빙 둘러 사람들이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소녀는 죽어가고 있고 소녀의 가족들이 죽어가는 소녀를 이곳으로 옮겨서 죽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갠지스강 옆 신성한 곳에서 죽고, 화장하여 갠지스강에 재를 뿌리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 해탈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병원에 데려가야 할 어린 딸을 강변으로 데려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처연했다. 다음날 새벽 배를 타고 갠지스 강 화장터 인근을 지나갔다. 화장터에는 여러 곳에서 시신을 태우고 있었으며 화장이 끝난 가족들은 갠지스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재를 강에 뿌렸다. 모든 광경을 지켜보다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과연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의문이 생겼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다음에 인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 힌두교 성지에 숙소를 잡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보고 싶다.


무겁고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나시를 떠나 카주라호로 이동했다. 카주라호는 10세기 찬델라 왕조시기에 많은 사원이 건설되었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많이 파괴가 되었음에도 아직 20여 개의 힌두교 사원이 남아있으며 조각이 아름답고 웅장한 자이나교의 사원도 인근에 있었다. 카주라호의 힌두교 사원은 로맨틱한 외부 조각으로 유명하다. 남녀가 섹스하는 민망한 조각품과 부조가 탑 곳곳에 있으며 다양한 체위의 성행위 모습을 생생하게 조각해 놓았다. 당시 출산율이 낮아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왕이 직접 성행위 하는 것을 공개하고 성을 장려했다고 하는데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힌두교를 포함한 인도종교는 윤회를 끊고 열반에 들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깨달음을 얻는 수단이 수행, 고행, 무소유, 금욕, 비살생, 선한 행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어떤 사이비 종파가 성행위를 통한 극치감을 통해서도 깨달음 얻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한 모양이다. 그래서 까마수트라 라고 하는 성지침서까지 만들어 여성의 성을 착취한 듯하다.  우리나라 일부 종교지도자들도 여신도를 신의 이름으로 겁탈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한다. 어떤 종교던 종교지도자의 성욕을 채우려는 사이비가 있기 마련인데 힌두교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로맨틱 사원의 성행위 조각이 여러 군데 파손되어 있다. 12세기 무굴제국시절 성행위 형상이 신을 모독한다고 하여 이슬람 신도들이 조각들을 파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의 부처님 목을 잘라버린 것과 유사하다. 이슬람은 이교도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유명한데도 성행위 조각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카주라호에 있는 많은 사원은 힌두교 사원이지만 특이하게 자이나교 사원이 함께 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이다. 불교와 달리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고행, 금욕, 무소유, 불살생을 강조한다. 자이나교 지도부는 극심한 고행을 하면서 신도들을 지도한다. 이들은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완전히 발가 벋고 다니며 마음이 흐트러짐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온몸의 털을 손으로 뽑아버린다. 불살생을 위해 맨발로 땅바닥을 보면서 조심조심 걸어 다니고 모기가 물더라도 절대 쫓지 않고 헌혈을 한다. 이렇게 해야 윤회를 끊고 해탈한다고 하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정말 싫은 가 보다. 


카주라호 사원 순례를 마치고 아그라로 향했다. 아그라는 타지마할로 유명하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왕비를 추모하여 건축한 건물이다. 그동안 타지마할 사진을 각종 역사책에서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아름답다기보다는 익숙한 내 전생의 고향에 온듯한 푸근한 느낌을 받았다. 타지마할 인근에는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자한이 아들에 의해 유폐되어 말년을 보낸 아그라 성이 있다. 엊그제 본 바라나시 힌두교 성지에서는 시신을 화장한 후 갠지스 강에 뿌리는 게 최대의 축복이었고 자이나교 사원에서는 금욕, 무소유로 옷까지 벗어버리고 고행하는데 이슬람교에서는 죽은 후 호화찬란한 묘를 만들어 영생을 꾀하고 있다. 이 무슨 모순적인 세상인가?? 여행은 세상의 다양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유적지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웅장하고 호화스러운 것 들이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진시황릉 등 죽은 사람을 위한 유적은 수많은 산사람들의 고통의 산물이다. 과거 대부분의 문명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아니면 죽어서도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묘를 만들었다. 산 사람들의 고통과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후대 사람들을 감탄시킨다. 인도 사상에 기인한 종교는 죽은 사람을 위한 묘를 호화롭게 만들지 않는다. 죽은 후 화장하고 재를 강물에 흘려보낼 뿐이다. 중동에서 발흥하여 인도로 들어온 이슬람교 만이 인도 대륙에 타지마할을 비롯한 여러 왕들의 무덤을 호화스럽게 만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것들이 세계인을 불러들여 관광수입으로 인도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뒤로하고 무굴제국의 유적이 가득 찬 자이푸르로 갔다. 인도는 동남아시아 전체 또는 동서유럽 전체와 비슷한 광활한 면적이다. 동남아시아나 동서유럽에 수많은 국가들이 있고 그 국가들 마다 흥망성쇠가 있었듯이 인도 대륙 역시 수많은 국가가 명멸했다. 자이푸르가 속한 라지스탄 지역은 상당기간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가 몽골제국의 후예인 무굴제국에 편입되었다. 자이푸르는 주변의 강력한 힌두교 세력들로부터 방어를 위해 성과 성곽을 쌓는 한편 혼인동맹을 맺고 타협함으로써 수백 년간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18세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는 영국에 협조하면서 자국의 안정과 발전을 꾀했다. 이런 실리정책 덕분에 자이푸르에는 전쟁을 회피하여 국토를 보전하고 번영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이슬람과 힌두교 양식이 조합한 특이한 암베르 성 그리고 한양도성을 연상케 하는 성곽, 바람의 궁전인 하와마할 그리고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 등이 잘 보전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왕의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택하여 전쟁을 회피하여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발전시킨 자이푸르 지도자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린 뉴델리는 무굴제국 때부터 수도였기 때문에 무굴제국 이전의 힌두교 유적과 무굴제국의 이슬람 유적이 산재해 있다. 간디를 화장했던 라즈가트, 타지마할의 원형이 된 무굴제국 2대 황제 후마윤의 묘,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미나르 사원 등이 과거를 보여준다. 역사 유적은 아니지만 시크교 사원과 바하이 사원도 방문했다. 방문한 시크교 사원에서는 특별한 신이 나 종교지도자 없이 신도들이 자유롭게 기도하고 율법을 읽고 있었다. 누구든지 무료로 숙식을 할 수 있어서 이곳에 머무르는 한국 여행객이 꽤 있다고 했다. 


시크교는 15세기 펀잡지방에서 탄생했다. 당시 이슬람과 힌두교의 극심한 대립을 완화시켜 보고자 힌두교와 이슬람의 교리를 모두 받아들여 시크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힌두교와 이슬람 양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을 치렀다. 시크교는 카스트제도를 반대하고 여성차별을 철폐하는 등 인도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교인수는 비교적 소수이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인도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시크교도는 초기부터 이슬람과 힌두교 양측으로부터 박해받아 많은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16세기부터 자위를 위해 몸에 칼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인도 공항에서 기내 탑승 시 칼 소지는 엄격히 금지되었으나 시크교도 에게 만은 칼 소지가 허용된다고 한다. 시크교도는 신에 대한 헌신의 징표로 머리카락은 물론 몸의 털을 제거하지 않는다. 긴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터번을 두르며 남자는 모두 긴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자이나교는 온몸의 털을 모두 뽑아 버리고 시크교도는 온몸의 털을 평생 기르고 있다. 같은 인도사상에서 기인한 종교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신기하다.


바하이 사원은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기원한다. 유일신인 하나님 아래 전 인류가 화해하고 융합하며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모세, 예수, 모하메드 등 메시아는 그저 지나가는 현인에 불과하므로 오직 하나님 만을 숭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바하이 사원 내에는 아무런 상징이 없다. 얼핏 보면 커다란 강당처럼 보인다. 인도의 바하이 사원이 전 세계 바하이 사원중 가장 크다고 한다. 종교가 많은 인도에 바하이교까지 들여온 것은 이슬람, 힌두교, 시크교등 종교 간 반목과 대립을 회피하고 서로 화해하고 협조하자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인도여행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여행이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해외여행을 다녔으나 인도여행이 가장 울림이 컸다. 특히 바라나시 힌두교 성지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에 대한 인도인들의 태도는 나의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인도대륙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의 현장을 둘러본 것도 나의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다. 유태교,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으로 발전하는 아브라함계 종교처럼 브라만교,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시크교로 발전하는 인도사상의 변화와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계 종교와 인도사상계 종교 모두가 바하이 교로 통합되어 세계인이 동일한 신을 믿으며 모두가 하나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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