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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Dec 14. 2023

퇴직 후 나 홀로 치앙마이 살기(2)

치앙마이 한달살이 중 만난 사람들


치앙마이에서는 한 달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 앉아 있었던 덕분에 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Cafe De Sot”는 치앙마이 카페 중 관광객들이 가볼 만한 곳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매일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정원에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놀다 갔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으며 그중 한국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대는 2030부터 5060까지 다양했으며 커플로 오기도 하고 혼자온 사람도 있었다. 카페에서 자주 보는 사람 중 상당수는 치앙마이 장기체류자였고 카페를 아지트 삼아 책, 폰, 노트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페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 보니 자주 보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중 몇 명과는 함께 식사도 하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는 장기체류하는 외국사람이 많다. 특히 11월부터 3월까지는 겨울철 추위를 피해서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단히 많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만 해도 수천 명은 될 듯하다. 내가 머물고 있는 콘도에만도 체류자의 절반 정도가 한국사람이며 내가 매일 가는 카페에는 한국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시내 어디를 가도 한국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외모와 옷차림만 봐도 한국인 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치앙마이에 외국인이 많은 것은 물가가 싸고 따뜻하며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물 수 있는 숙소와 음식도 다양해서 외국인들이 장기 체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골프장이 많고 저렴해서 골프 좋아하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내 친구 부부는 치앙마이에 조그마한 아파트와 차를 사놓고 1년에 6~7개월 정도 지낸다. 특히 추운 11~3월에는 이곳에 지내면서 골프를 즐긴다. 이곳 골프비용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골프비용 포함 월 500~600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아파트 기본유지비와 항공권까지 계산하면 월 600~700만 원이 소요될 텐데 이런 생활을 하는 한국인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은퇴 후 월 생활비로 600~700만 원 쓸 수 있는 사람이 5% 이내라고 하니 아무나 골프 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골프 하지 않고 소박하게 지내면 부부가 300만 원이면 충분하고 좀 절약하면 200만 원도 가능하다. 최근에 발표한 은퇴 후 적정생활비가 369만 원이라고 하니 적정 생활비를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이면 태국에서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 혼자 와있는 한국인도 많았다. 카페에서 만난 75세 퇴직교수는 10년째 겨울마다 서너 달씩 치앙마이에서 지내고 있었으며 은퇴한 한국여성이 서너 달 쉬겠다고 치앙마이에 장기체류 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장기체류하는 한국인들은 네이버 카페 또는 아름아름 알게 된 사람들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외국에서도 외롭지 않게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만나 대화를 했던 수십 명의 사람 모두가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행복해했다. 은퇴 후 해외에 나와 서너 달 쉬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제2의 인생을 구상해 보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혼자 오던 부부가 오던 해외 장기체류 하려면 할 일이나 놀이가 있어야 한다. 한달살이를 한다고 하여 매일 주변 관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달살이를 하러 외국에 나갈 정도 되는 사람은 이미 해외여행을 할 만큼 해서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별로 없다. 한국 집에서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어서 집안에서 빈둥거려도 괜찮으나 해외살이 하는 집은 대부분 좁고 필요물품이 구비되지 않아 집안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밖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본인이 밖에서 할 일이나 놀이가 없으면 지루하다. 집안 또는 집밖으로 나가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가 있어야 한다.  

“Cafe De Sot”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달 이상 장기체류자이며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그냥 일없이 시간을 보낸다.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보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지 노트필기 해가며 노트북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노트북, 태블릿, 폰으로 넷플리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종일 보내는 사람도 있고 게임이나 SNS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고 노트북을 두드리며 열심히 글 쓰는 사람도 있다. 몇 명이 모여 앉아 종일 수다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여럿이 모여 수다 떠는 사람들은 의외로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많다. 치앙마이에 장기체류하고 있는 할 일 없는 퇴직자들이 서로 알게 되어 함께 식사하고 이런 곳에서 수다 떨고 있는 것이다. 나 홀로 장기체류자는 남자는 퇴직한 6070이 많고 여성 체류자는 4050이 많은 듯하다.


서양인들도 치앙마이에 장기체류 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은퇴 후 저렴한 물가와 따뜻한 기후가 좋아 이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태국여자와 함께 제2의 삶을 살고 있었다. 치앙마이 주말 시장이나 식당에 가면 태국여자를 도와 함께 장사하고 있는 서양인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혼인여부는 알 수 없으나 태국여자와 살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많이 오는 식당에는 늙은 서양인이 젊은 태국여자와 식사하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으며 태국엄마와 애들 두세 명이 서양남자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태국은 이혼율이 40% 정도로 높고 싱글맘도 많다고 한다. 이혼하면 여자가 자녀를 키우고 남자는 양육비조차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많은 싱글맘들이 생활고 때문에 돈 있는 늙은 서양인과 살고 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만나 친해진 내 또래의 캐나다 은퇴남자가 젊은 태국 애인이 있다고 자랑한다. 력키가이라고 웃었더니 돈이 많이 들어서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은퇴한 한국남자가 태국 여자와 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태국에 장기체류하는 한국 은퇴남들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태국 싱글맘들과 살아가는 한국 퇴직자들도 생겨날 듯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치앙마이에 오는 중국 엄마들도 꽤 되었다. 카페에서 만난 중국여인은 금년초 아들을 치앙마이 국제학교에 입학시키고 교육비자를 받아 체류하고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6년간 치앙마이에서 살 거라고 했다. 자기처럼 애들 교육 때문에 치앙마이에 와있는 중국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판 기러기 엄마들이다. 중국은 엄격한 산아제한으로 1자녀가 대부분 이어서 자녀교육이 치열하다고 한다. 이삼십 년 전 한국의 기러기부부 열풍이 중국에서도 진행되는 모양이다. 중국 기러기 엄마는 아침이면 아들을 차로 등교시키고 아들 하교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보면서 일을 했다. 윈난성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중국녀와 몇 번 대화와 점심을 함께 했더니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 중국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치앙마이 근교를 다녀왔다. 태국에서 아들 때문에 차를 샀다고 하는데 장롱 면허 10년 만에 운전하는 왕초보였다. 운전대를 부여잡고 시내는 20킬로 교외 한적한 도로는 30킬로로 운전했다. 뒤따르는 차들이 빵빵거리든 말든 앞만 보면서 달리는데 보고있는 내 몸이 배배 꼬였다. 한국 고속도로에서 1차선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김여사 차를 보고 열받곤 했는데 중국 김여사는 한술 더 떴다. 운전대를 빼앗아 내가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중국 김여사의 사기를 고려하여 안전하게 운전 잘한다는 덕담을 해주고 빵빵거리는 뒤차들을 위해서 비상등을 켜주었다.


나 홀로 해외 한달살이 시작 하면서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완전히 기우였다. 제주도와 삿포로에서는 민박집 주인부부와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으며 치앙마이에서는 카페에 오가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적적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삿포로 버스투어에서 만난 일본녀와는 서울과 치앙마이 까지 찾아오는 친구가 되었고 치앙마이 카페에서 만난 중국녀와도 함께 여행하고 SNS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삿포로와 치앙마이에서 한국 여행객들도 많이 만났지만 눈인사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나는 해외살이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글로 쓰는 여행작가 지망생이다. 익숙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생활이 궁금해서 이다.


나는 홀로 해외살이 중 외로울 일이 없다. 글을 쓰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전문 지식이나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내 전문 지식으로 글쓰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므로 이미 포기했다. 다양한 경험은 지금부터 만들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고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커플 또는 단체 여행객은 그들끼리 대화하므로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다. 나 홀로 여행객은 그들 역시 무료하므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면 반갑게 응대한다. 나는 한 달간의 치앙마이 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 부근의 카페에서 보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눈인사를 하고 눈인사를 몇 번 나눈 후에는 말을 걸고 그들의 경험을 들었다. 빈약한 영어 실력이지만 통역기까지 동원하면 하고 싶은 말은 대충 할 수 있었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좀 익숙해졌는데 귀국하려고 하니 섭섭하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5년간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떠도는 불편을 감수하기로 했다. 귀국하면 한 달간 서울에 머무르다 1.15일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떠난다.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아버님 제사, 손녀 100일 잔치, 조카 결혼식이 있으며 위암 추적검사를 위해 위내시경, 피검사, CT검사도 해야 한다. 점점 악화되는 손가락 관절염도 이번에 치료받아야 한다. 이번 치앙마이는 한달살이 후 귀국하여 여러 일처리를 하게 되지만 내년 1월부터는 한 번에 서너 달 해외살이 후 귀국하여 한 달 쉬고 다시 나가게 된다. 건강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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