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퇴직자의 해외살이는 관광이 목적이 아니다. 날씨, 공기, 경치 좋고 물가 싼 외국에서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매일 뭘 하면서 지내야 하는가이다. 한 달 중 10일 정도는 주변을 돌아다니고 관광한다 치더라도 나머지 20일 정도는 할 일이 없다. 한국에서라면 나를 불러주거나 내가 불러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불러주는 사람도 부를 사람도 없다. 한국에서라면 문화센터나 동호회에 나가 저비용으로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으니 외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경제력이 된다면 부부가 렌터카 빌려 골프하고 여행하고 맛집 투어하면서 럭셔리하게 살면 되겠지만 그 정도 경제력 되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대다수는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 알뜰하면서도 알차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돈 안 드는 운동과 돈 안 드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할 수 있는 돈 안 드는 운동은 걷기와 뛰기이다. 괜찮은 숙소에는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어서 무료로 수영과 헬스를 즐길 수도 있다. 운동을 위해서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수영복, 운동화만 있으면 충분하다. 수영장, 헬스장이 없으면 주변을 걸으면 된다. 만보 정도 걸으면 좋다고 하니 시간을 내서 주변 좋은 곳을 찾아 걸어도 되고 아니면 매일 가야 하는 식당이나 마트를 좀 먼 곳으로 정하여 걸어갔다 오면 된다.
해외에서 돈 안 드는 취미로는 독서, 글쓰기, 영화감상, 게임, 공부, 그림 그리기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은 노트북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가능하다.
동남아는 연중 여름이어서 햇빛아래서 걷기는 힘들다. 해가 지고 난 후에 운동을 하고 해가 있는 낮에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게 좋다.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카페, 도서관, 쇼핑센터이다. 도서관은 규칙이 엄격하여 불편하고 쇼핑은 매일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대부분의 낮시간은 카페에서 지내게 된다. 카페는 노트북으로 가성비 좋은 취미 즉 독서, 글쓰기, 영화감상, 게임 등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생, 직장인들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종일 죽치고 있기도 한다.
치앙마이 한달살이 할 때 내가 갔던 카페에는 장기체류하는 한국인,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카페에서 폰, 태블릿, 노트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하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폰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카페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폰, 태블릿, 노트북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단기체류자라면 덥거나 고생스럽더라도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만 퇴직한 장기체류자는 더운 낮시간에는 시원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도 은퇴한 노인들이 동네 카페에 모여 종일 수다 떨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카페는 커피 마시는 다방이 아닌 은퇴 후 한가한 사람들의 놀이터 이자 피난처이기도 하다.
해외 한달살이 중 알뜰하면서도 알차게 하루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관 좋은 멋진 카페를 찾아 폰, 태블릿, 노트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웬만한 카페는 무료 와이파이가 되므로 인터넷검색, 유튜브, 게임,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쓸 수도 있고 전자책을 읽을 수도 있다. 폰과 태블릿으로도 가능하나 화면이 작고 문자입력이 어려워 노트북에 비해 보는 재미가 덜하고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숙소에 딸린 호텔수영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수영장에 카페가 있으니 여기도 카페나 마찬가지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야자수와 인공폭포가 있는 야외카페였고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멋진 야외수영장이 있는 야외카페이다.
멋진 카페나 수영장에서, 오가는 외국 사람들을 보면서 노트북과 놀기만 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비용도 저렴해서 오전, 오후 커피 한잔씩만 시키면 된다. 종일 죽치기 미안하면 종업원에게 팁 조금 쥐어주면 바로 VIP 대접받는다. 치앙마이 카페에서는 종업원 두 명에게 팁 100밧(4천 원)씩 줬더니 한 달 내내 내 자리에 예약석 명패를 올려놓고 아무도 못 앉게 했고 내 옆에 모기향까지 설치해 주었다. 쿠알라룸푸르 수영장에서는 관리직원에게 10링깃(3천 원) 줬더니 테이블이 부족할 때는 나에게만 비상용 테이블을 내다 주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팁 5천 원이면 대우가 달라진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다가 배가 출출하면 부근에 있는 맛집에서 식사하면 되고 분위기 바꾸고 싶으면 나가서 운동하면 된다.
한가한 퇴직자는 한달살이 숙소를 예약할 때 주변환경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주변에 좋은 카페와 맛집 그리고 운동이 가능한 수영장이나 공원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중심가가 비싸서 저렴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대중교통 이용이 쉬운 곳으로 숙소를 정해야 한다.
나처럼 노트북 놀이를 좋아하는 외국인 퇴직자가 서울로 한달살이 온다면 도보로 서울 중심가를 돌아다닐 수 있는 4대 문 안에 숙소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격이 비싸다면 1, 4 ,5호선을 이용하여 중심지로 올 수 있는 지하철 역 부근에 숙소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 광화문, 고궁, 백화점,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광장시장등을 다니며 도시생활을 즐기고 청계천을 걸으며 운동하고 시청도서관이나 스타벅스에서 노트북과 놀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와 인터넷을 뒤져보면 세계 어느 도시이건 이 정도 수준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노트북은 화면이 큼지막한 것을 추천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작은 것이 좋으나 한달살이는 한번 가져가면 한 달간 장거리 이동이 없으므로 무겁더라도 화면 큰 것이 좋다. 나는 16인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데 카페에서 내 것이 가장 컸다. 조그마한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영화 보던 사람들이 내 커다란 화면을 보면서 부러워한다. 어디 가면 살 수 있냐고 물은 외국인도 있었다. 영화, 유튜브, 게임, 전자책 읽기, 글쓰기 모두 화면이 클수록 즐거움도 커진다.
나는 카페(쿠알라룸푸르에서는 호텔수영장)에 가면 노트북에 카톡을 띄워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쓴다. 이어폰으로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 글 쓰거나 유튜브 보다가 카톡이 오면 노트북 자판으로 글을 써서 보낸다. 폰으로는 독수리 타법이어서 속도가 느리나 노트북으로는 열손가락으로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다. 어떨 때는 카톡창 대여섯 개를 띄어놓고 가족, 친구 들과 동시에 대화한다. 여러 사람과 카톡대화를 하다 보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노트북 큰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중 최고는 유튜브 시청이다. 유튜브는 해외살이에 정말 유용하다.
첫째, 내가 체류하는 지역과 다음에 갈 장소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맛집과 관광 포인트는 어디이며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등 모든 정보가 영상으로 나와있다. 심지어 내 인근에서 찍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체류하는 국가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체류하는 국가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다음에 가야할 지역의 숙소 예약에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숙소 내부는 물론 주변환경까지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숙소 예약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공항에서 내려 대중교통 이용하는 방법까지 영상으로 보여줘서 공항에 처음 내리더라도 과거에 와본 것 같은 친숙한 생각이 든다. 한달살이 중간중간 에도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여 현지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유튜브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유튜브에는 온갖 언어에 대한 기초교육자료가 나온다. 외국어 공부는 필요성이 느껴지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습득이 쉬어진다. 간단한 인사나 식당, 쇼핑센터에서 쓸 간단한 말을 유튜브에서 배울 수 있다.
유튜브에는 역사, 과학, 철학, 경제, 국제관계 등 상식과 지식을 넓혀주는 다양한 채널이 있다. 영상제작자는 조회수를 올리려고 재미있고 알차게 영상을 제작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지식과 상식이 쑥쑥 늘어난다. 나이 들어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세상 변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넋 놓고 있다 보면 과거에 매몰된 무식한 영감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정치 관련 유튜브는 안 보는 게 좋다. 좌던 우던 정치 유튜브 자주보다 보면 꼴통이 된다.
셋째, 유튜브에는 실없이 웃으며 힐링할 수 있는 영상이 많이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 애교 떠는 모습, 개그맨들의 수위 높은 섹드립, 우스꽝스러운 춤추고 있는 젊은애들 모습들은 그냥 쳐다만 보고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많이 웃는 것이 보약이다. 우아하던 그렇지 못하던 웃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보는 게 좋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하다고 한다.
넷째, 유튜브로 온갖 종류의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영상 제작자들이 기발한 방법으로 온갖 음악을 장르별로 만들어서 올려놨다. 외국 카페, 수영장에서 이어폰으로 7080 흘러간 한국노래를 듣고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유튜브 하나만 가지고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으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글을 쓰게 되면 심심하기는커녕 하루가 너무 짧다.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취미 중 글쓰기는 해외살이 중 가성비 좋은 최고의 취미이다. 돈 들지 않고 장소 구애받지 않으며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 나중 요양원에 들어가더라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려면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치매예방에도 좋다. 해외살이를 생각하고 있는 퇴직자는 취미로 글쓰기를 추천한다. 지금 서투르더라도 쓰다 보면 는다. 나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왔으나 60 넘어 조금씩 쓰다 보니 글이 좋아져서 지금은 브런치에 글까지 올리고 있다.
혹자는 한국에 좋은 도서관, 카페 놔두고 뭐 하러 돈 들여 외국에 와서 글 쓰고 유튜브 보고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즐거움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5감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외국에서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라 신선한 즐거움이 있고 음식에서 색다른 미각과 후각을 느낄 수도 있다. 한국에서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전혀 다른 감각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집 앞바다에서 수영하는 것보다는 해운대나 경포대가 더 즐겁고 지중해나 와이키키 해변에서라면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휴가철이면 집을 떠나 동해나 남해 바닷가로 가고 여유가 있으면 해외로 나가는 것과 같다.
해외 한달살이 준비물 중 대부분은 의류이고 나머지는 자질구래한 것들이다. 의류나 자질구래한 것들은 안 가져가더라도 현지에 가서 쉽게 살 수 있다. 동남아는 물가가 싸서 현지에 가서 구입하는 게 오히려 경제적일 수 있다. 그러나 폰과 노트북은 한국에서 필히 가져가야 한다. 노트북은 좀 무겁더라도 큼지막한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내가 쓰고 있는 16인치 화면을 추천한다. 폰이 여러 기능을 가진 것처럼 노트북 또한 여러 기능을 가진 한달살이 필수품이다.
큼지막한 노트북으로 인터넷검색, 유튜브, 글쓰기 세 가지만 하더라도 해외 어느 곳에서 든 지 외롭거나 무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