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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Mar 06. 2024

나트랑 한달살기 중 만난 멋진 친구들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

     

나트랑 한달살기 중 인근의 소도시 무이네에 동창 A부부가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다른 동창 B는 부부가 호찌민 딸 집을 방문 중이었다. 우연히 소식을 알게 된 세명은 A가 머물고 있는 무이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무이네는 해양스포츠로 유명한 베트남 남부 소도시이다.     


만능 스포츠맨인 A는 57세 퇴직 후 부부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즐겁게 살고 있다. 재취업의 기회가 있었으나 남은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며 과감히 백수의 길을 택했다. 서울 변두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돈이 많아 재취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소박하게 쓰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고 하는 마음이 부자인 친구이다.      


A는 퇴직하자마자 마음에 두었던 해양스포츠를 시작했다. 그동안도 테니스, 자전거 라이딩을 즐겨왔지만 조그마한 보드 위에 서서 바다를 질주하는 윈드서핑이 하고 싶었단다. 동호회에 가입해 한강에서 기본을 익히고 바다에 나가 서핑하면서 서서히 서핑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국 바다는 바람이 불일정하고 겨울이 길어서 윈드서핑에 좋은 곳이 아니다. 퇴직 다음 해 겨울 A는 동호인 몇 명과 함께 윈드서핑의 천국이라는 베트남 무이네로 갔다. 한국바다와는 전혀 다른 풍속, 수온, 날씨로 윈드서핑의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이후 9년째 겨울마다 무이네에 머물면서 서핑을 즐기고 있다. 몸에 이상이 없다면 앞으로도 10년간은 해마다 무이네에 와서 서핑을 즐기겠다고 한다.   

   

A의 부인은 첫해에는 거기서 뭐 하며 지내냐며 오지 않았으나 지금은 해마다 함께 와서 이곳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서퍼 남편을 따라온 한국, 외국인 부인들과 어울리고 유튜브 보면서 영어공부도 하면서 한철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부부가 이곳에서 3~4개월 지내는 비용이 항공권, 숙소, 생활비 모두해서 500만 원 정도라고 하니 한국생활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즐겁고 행복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A를 방문했을 때 한국과 러시아의 서핑 마니아 수십 명이 게스트 하우스에 함께 기거하며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한국서퍼들이 많아져서 겨울이면 60명 정도가 온다고 하며 이들을 위한 한국식당까지 생겼단다. 러시아 서퍼들은 오래전부터 겨울이면 이곳에 몰려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서퍼가 줄었다고는 하나 30대에서 70대까지의 러시아인 수십 명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서핑은 바다에 떠있는 부유물에 부딪칠 경우 보드가 파손되어 조난당하기도 한다. 모든 서퍼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누군가가 조난될 경우 자기 일처럼 달려가 구조한다. 바다에서는 국적에 무관하게 모두가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과 러시아의 서퍼들이 음식물을 나누어 먹고 서핑장비가 파손되면 함께 수리하면서 형동생처럼 지내고 있었다.     


A는 무이네에서 서핑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른 스포츠를 하면서 지낸다. 매일 아침 부부가 함께 수영을 하고 날씨에 따라 자전거 라이딩이나 테니스를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부 모두 무척 건강하고 금슬이 좋다. 사이좋은 부부는 함께하는 취미가 있다.     


B는 몇 년 전 공직에서 퇴직했다. 부인이 교사 출신이라서 부부가 각각 연금을 받는 연금부자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으니 화려한 노후를 즐기며 살고 있다. 부부가 동남아시아 골프리조트를 돌아다니는 골프여행을 즐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리조트가 많다고 하니 이런 럭셔리 노후생활 하는 한국 사람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재력이 된다고 해서 모두가 이처럼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건강이 좋아야 하고 취미가 같아야 하며 무엇보다 금슬이 좋아야 한다.      


B는 한국에 있을 때는 당구를 즐긴다. 골프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 가끔 부부동반 골프를 하지만 본인은 퇴직 이후 당구에 푹 빠져서 산다. 당구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전문강사에게 배우고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연구하고 동네 당구장에서 혼자 실습하면서 당구실력이 쑥쑥 늘었다. 퇴직한 후 시작한 당구가 2년도 안 되어 300 수준이다. 항상 개인큐를 들고 다니며 친구 모임이 있을 때면 친구들을 당구장으로 유인하여 혼을 내주곤 한다. 금년 말 500까지 올리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난 대학시절 당구에 빠진 적이 있어서 300이 되려면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는 줄 잘 안다. 500이 되려면 침대에 누웠을 때 천정에 당구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로 몰입해야 가능한 일하다.      


A부부의 경우 경제력은 소박한 수준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활력 넘치는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B부부는 본인의 경제력에 맞는 화려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경제력에 맞추어 즐겁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두 부부를 보니 흐뭇하다.     


혹자는 퇴직 후 몇 달 여행하고, 몇 달 놀다 보면 무료해져서 내가 뭐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든다고 한다. 하릴없이 집에서 뒹굴다 보면 더 이상 노는 게 싫어져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고도 한다. 가능한 오랫동안 일하는 게 건강에도 좋고 행복의 비결이라고 하며 평생현역이 최고라고도 한다. 다 맞는 말이다. 일없이 그냥 노는 것은 재미가 없다.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위해서라도 평생 뭔가 할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돈과 무관한 일도 일이다. 돈을 쓰면서 하는 봉사활동도 일이다. 퇴직 후 치킨집, 카페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돈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노후자금이 부족한 사람은 돈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60대의 50% 이상이 노후 자금이 부족해서 돈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노후준비가 된 사람은 돈에 무관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여생을 살아갈 경제력이 된다면 3040도 돈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도 한다. 요즘 꽤 많은 3040 파이어 족들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자신들의 행복한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돈에 무관한 일거리는 수없이 많다. 가장 쉽고도 즐거운 일이 취미활동이다. “60대에 하기 좋은 취미 60개”라는 유튜브영상도 있듯이 취미활동은 무궁무진하다. 60개 중 자신이 좋아하는 한두 개를 골라서 열정적으로 하면 무엇을 하든지 즐겁다. 퇴직 후 몇 달 여행하고 놀다 보면 무료해진다는 말은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뭘 해도 재미없고 열정적으로 하면 뭐를 해도 즐겁다.      


열정을 가지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 거창한 목표 필요 없다. 내가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소박한 장단기 목표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하면 삶의 희열이 느껴진다.     

A는 윈드서핑, 테니스, 수영 등 각종운동을 즐기면서 서핑의 달인이 되어 남을 가르치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목표대로 겨울마다 베트남에 와서 열정적으로 서핑을 하며 실력을 향상하고 있다. B는 골프, 당구, 여행을 즐기면서 당구 500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항상 당구큐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에 까지 당구큐를 들고왔다. 베트남에 골프채 들고 오는 사람은 봤어도 당구큐 들고 온 사람은 들어본적이 없다. 나는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해외 한달살이 다니면서 글 쓰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며 목표를 달성한 후 느끼는 성취감은 덤이다.      


혹자는, 노후에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본인이 성장하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주 훌륭한 얘기이다. 성장과 선한 영향력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품격 높은 성장을 하고 사람들의 영혼에 선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윈드서핑, 당구, 글쓰기 실력이 성장하고 있으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손뼉 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선한 영향을 주면서 살고 있다. 우리셋 모두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취미생활을 즐겁게 하고있는 것 만으로도 개인이 성장하고 남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평했다.     


우리가 경제력이 충분해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 아니다. 셋 모두 경제력이 지금보다 못하다면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또 열정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A는 윈드서핑이 아닌 자전거를 열심히 탈것이고 B는 골프, 당구가 아닌 탁구, 등산을 열심히 할 것이고 나는 해외가 아닌 한국의 시골에서 한 달씩 살면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고 하고자 하는 열정의 문제이다.     



A가 친구들 방문을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해놨다. 도착한 날 저녁은 숯불구이를 먹었다. 닭가슴살과 삼겹살이 섞인 애매한 맛이다.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악어고기라고 한다. 처음부터 얘기하면 안 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쯤 먹은 다음 얘기해 준단다. 그 식당은 악어, 타조, 뱀, 개구리를 전문으로 요리하는 몬도가네 식당이었다. 악어고기 처음 먹어봤다. 뭐든지 새로운 경험은 귀하다.     


다음날은 A의 전공인 윈드서핑과 제트스키를 배웠다. 윈드서핑은 단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A의 멋진 서핑을 구경하고 서핑보드 위에 서서 기본동작만 배웠다. 제트스키는 현지인 업자에게 렌트하여 탔다. 업자가 끌고 온 제트스키는 몇십 년 된 고물인 듯 곳곳이 찢어져있고 테이프와 접착제로 붙여놨다.   

   

말 안 통하는 베트남 업자로부터 수신호로 시동버튼과 핸들조작을 30초 정도 듣고 내가 앞에서 조종하고 B가 뒤에 타고 출발했다. 조심조심 5분쯤 타다 속도를 올리고 기분을 내다보니 제트스키가 뒤집어져 버렸다. 뒤집어진 제트스키를 겨우 붙잡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다녔다. 해변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업자가 거룻배를 끌고 와서 겨우 물밖으로 나왔다. 렌트한 시간이 아직 남아서 인지 어디서 또 다른 고물을 가져다준다. 이번에는 B가 조종하고 내가 뒤에 탔다. 이번에도 몇 분 간 속도를 즐기다 또 뒤집어져 버렸다.      

무이네 바다는 윈드서핑의 성지답게 바람이 세고 파고도 높다. 이런 곳을 왕초보가 속도를 내니 파도에 부딪쳐 뒤집어져 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업자가 거룻배를 끌고 왔다. 두 번의 전복으로 화가 많이 났는지 업자는 씩씩거리면서 물에 빠진 우리를 내팽개 쳐 버리고 제트스키만 끌고 가버린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어서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해변으로 밀려 들어올 때까지 한참 동안 바다를 표류하는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렌트 중 10분간 타고 50분은 뒤집어진 제트스키를 붙들고 바다를 떠다녔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당구에 빠져있는 B는 무이네 오면서도 당구큐대를 들고 왔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당구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베트남까지 당구큐를 들고 온 성의를 봐서 물어물어 당구장을 찾아 몇 게임하고 왔다. 베트남 당구장에 가면 미니스커트 입은 미녀들이 가슴골이 보이는 섹시한 포즈로 당구를 친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으나 가슴골 미녀는커녕 꾀죄죄한 베트남 백수들만 드글거렸다.     


새로운 경험은 즐겁고 귀하다. “경험을 사라“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경험은 젊은이에게는 경쟁력이 되고 우리 나이에는 큰 즐거움을 준다. 60년쯤 살다 보면 국내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 더 이상 새로운 음식도 없고 새로운 경치도 없고 새로운 것을 해볼 기회도 별로 없다. 하지만 무이네 에서의 2박 3일은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2층침대가 세줄로 배치된 괴이한 버스를 탔고, 악어 숯불구이를 먹었고, 윈드서핑을 체험했고, 제트스키를 조종했고, 바다에 표류도 해봤다.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마다 희열을 느끼며 마음이 젊어진다. 해외에 나오면 새로운 것투성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이 즐겁다.     


무이네에서의 2박 3일간은 다섯 번의 한달살기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70다된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새로운 경험들과 함께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10년 후 다시 모여 악어고기를 안주로 술 한잔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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