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간비행 Mar 03. 2024

나 홀로 냐짱(나트랑) 한달살이 일상.

  

7시 알람에 잠이 깨면 침대에서 10분 정도 뒹굴다 일어난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면 멋진 해변과 야자수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며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창밖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나오며 해변뷰로 숙소를 잘 잡았다는 만족감으로 뿌듯하다. 맘에 들은 숙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몇 번의 해외살이 경험으로 숙소 찾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러 날 해당지역 유튜브와 인터넷을 뒤져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다 보면 멍멍했던 머리가 서서히 맑아진다. 탁자 위에 있는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아침일과를 시작한다. 내가 자주 듣던 노래들이 저절로 연속적으로 나온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샤워를 한 후 어젯밤 사온 과일과 요플래로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한다. 지난달 머물렀던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가끔 누룽지를 끓어 먹었는데 이제 누룽지가 바닥나서 과일만 먹고 있다. 숙소옆에는 고만고만한 마트 대여섯 개가 있는데 마트마다 제철과일을 먹기 좋게 손질해서 팔고 있다. 저녁에 먹음직스러운 과일 몇 가지를 사 와 냉장고에 넣었다가 아침식사로 먹는다. 어젯밤에는 망고, 수박, 멜론, 잭푸르트를 사 왔다. 모든 과일이 다 먹을 만 하지만 잭푸르트가 쫀득쫀득해서 식사대용으로 좋다.     

 

조식을 마치면 백팩에 노트북을 챙겨서 숙소 주변의 카페로 간다. 숙소 주변에 있는 여러 카페를 가본 후 가장 맘에 드는 곳을 골라 한 달간 작업공간으로 정했다. 와이파이가 잘되고 실내와 실외 모두 좌석이 있으며 실외좌석에서는 해변과 바다가 보여서 앉아있는 자체가 힐링이다. 오늘은 카페 가는 길에 일주일간 모아둔 세탁물을 세탁소에 맡겼다. 내 속옷과 수건 몇 개를 합쳐 2Kg 4만 동(2200원)을 지불했다. 오전에 맡기고 오후에 뽀송뽀송한 세탁물을 찾을 수 있어서 내가 세탁할 때 보다 더 좋다. 세탁하고 말리고 보기 좋게 접어서 보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2200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     


9시쯤 카페에 도착하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노트북을 켠다. 모든 음료가 5만 동 한국 2700원쯤으로 저렴한다. 노트북 화면에 네이버, 유튜브, 카카오톡을 띄어놓고 이어폰으로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한국뉴스를 검색하고 관심 있는 브런치글을 읽는다. 요즘은 의대입학인원 증가에 따른 뉴스들을 자세히 읽고 있다. 딸과 사위가 대학병원 의사라서 정부와 의사들 간의 대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주식시장도 눈여겨본다. 퇴직금을 주식에 넣어 두었는데 내 주식이 롤러코스트를 탄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본다. 주식을 하다 보면 국내외 경제와 국제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서 좋다.     

노트북을 켜놓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내 글을 쓰다 보면 오전이 금방 간다. 12시쯤 돼서 배가 출출해지면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간다. 냐짱에 도착 후 구글 식당 리뷰를 참고하여 숙소 주변 식당 서너 곳을 돌아본 후 VIET CUISINE RESTAURANT을 내 밥집으로 정했다. 평점 4.8점이었고 리뷰도 모두 좋았다. 나 역시 식당 서너 곳에서 식사해 본 결과 이곳이 가장 좋았다. 한 곳을 집중적으로 가면 단골이 되어 종업원과 친해지게 되고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이 식당은 메뉴가 100개쯤으로 동서양 음식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베트남 음식 외에 태국의 팟타이나 똠양콩도 있고 서양의 스테이크와 피자도 판다.  음식가격은 60000~200000동(한국돈 3500~11000원)으로 다른 식당에 비해 30% 정도 비싼 편이지만 시설이 고급스럽고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가끔 한국 단체 관광객도 방문하는 꽤 소문난 맛집이다. 한국이라면 메뉴수가 적어야 맛집인데 베트남에는 고급스러운 식당일수록 메뉴수가 많다. 반찬이 따로 없어서 인듯하다.     


이 식당 메뉴 중 악어스테이크와 악어불고기, 타조 스테이크와 타조불고기, 개구리다리 무침과 개구리 튀김이 특이하다. 나는 100개쯤 되는 메뉴를 한 달간 모두 먹어보겠다는 목표로 매일 메뉴를 바꿔서 먹고 있다. 동남아 국가인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음식이 비슷한데 한국인 입맛에는 베트남 음식이 잘 맞는 것 같다.    

 

악어, 타조, 개구리 요리

점심 후에는 대개 카페로 돌아온다. 낮에는 햇빛이 강하고 바닷가마저도 뜨거워서 밖을 돌아다니는 게 고역이다. 오늘은 점심 후 버스터미널에 다녀왔다. 내일 고향친구가 겨울을 보내고 있는 무이네에 가서 이삼일 지내기로 했다. 냐짱에는 버스 회사마다 별도의 터미널이 있어서 목적지와 시간에 적합한 버스회사를 선택해서 가야 한다. 인터넷으로 예매할 능력이 안되어 그랩택시를 타고 직접 버스회사에 가서 예매했다. 동남아에서는 그랩택시가 참 편리하다. 가격도 저렴하고 호출하면 금방 온다. 치앙마이,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냐짱에서 그랩택시를 잘 활용하고 있다.     


점심 후 해지기 전까지 다시 노트북을 켜놓고 인터넷검색, 유튜브, 글쓰기를 한다. 카페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카페손님 중 절반 정도는 노트북을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치앙마이 카페에서 봤던 광경과 유사하다. 다만 치앙마이에서는 4050이 많았는데 여기는 2030이 많은 게 다르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 정도는 글을 쓴다. 글이 술술 써지는 날은 기분 좋게 써내려 가지만 글이 안 써지는 날은 유튜브를 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멍 때리고 있기도 한다. 한국에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업주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들었는데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 인 듯하다. 이곳에는 다국적의 2030 카공족이 커피 한잔 시켜놓고 노트북을 펴놓고 하루종일 시원한 카페에서 놀고 있다. 덕분에 나도 눈치 안보며 하루종일 경치 좋은 자리에서 노트북 놀이를 한다     


5시쯤 다시 출출해지면 식당으로 간다. 저녁 식사는 좀 무겁게 한다. 영양보충을 위해 스테이크 종류를 하나 시키고 추가로 면류나 야채볶음을 시켜서 맥주 한 병과 함께 먹는다. 양이 좀 많아서 남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랍스터를 시키지 않는 한 메뉴 두 개와 맥주 한 병 해도 만원 정도이다.      


100가지가 넘는 메뉴 중 매일 새로운 음식을 시킨다. 맛이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시켜서 먹어보는 재미가 있다. 기대 이하의 맛이어서 실망하기도 하고 기대이상의 맛에 만족하기도 한다. 맛이 별로여서 입안이 찝찝할때면 숙소로 들어가 컵라면에 김치로 기분을 전환한다. 맥주를 곁들인 고급스럽고 맛있는 식사가 만원 정도이니 베트남 음식은 가성비 최고이다.       


식사를 마치면 숙소에 백팩을 두고 해변으로 나간다. 날이 더울 때는 수영복에 커다란 타월을 챙겨서 해변으로 나가 수영을 즐긴다. 바람 불고 쌀쌀한 날은 해변 산책로를 두 시간 정도 걷는다.     


해가지고 나면 바닷가가 북적거린다. 낮동안 더위를 피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해변에 인접한 많은 카페, 클럽도 해 질 무렵이면 야간영업을 준비한다. 백사장에 탁자와 소파 그리고 멋들어진 조명을 설치하기 시작하며 해가 지면 야간 분위기로 한껏 들뜨게 한다. 해가 짐과 동시에 해변은 딴 세상이 된다. 해변 중간에 있는 광장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행사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활기 넘친 해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며 중간중간 버스킹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폭죽, 커다란 비눗방울, 연날리기 등으로 해변 전체가 커다란 축제장이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이 많더니 해질 무렵부터는 쌀쌀해진다. 수영을 포기하고 백사장에 인접한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백사장 양끝을 왕복하면 15000보 정도이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걷는 길 중간중간의 클럽에서는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놓고 시원한 옷차림의 여자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백사장에 설치된 간이무대에는 기분 좋은 손님들이 흥겹게 춤을 춘다. 클럽마다 특색이 있는데 제법 규모가 큰 한 클럽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간간히 한국노래가 들리며 간이무대에서 춤추는 사람은 단체로 온 5060 한국여성이다. 베트남 냐짱 해변에서 한국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한국 5060 여성을 보는 것은 참 흥미롭다. 한국 노래방에서 단련이 되었는지 노래 부르는 가수 가슴에 팁까지 꽂아준다. 헨들을 돌리는 듯한 몸짓으로 춤추는 모습은 영락없이 한국 5060 여성이다. 한국의 5060 여성은 한국의 관광지를 접수한 후 세계 곳곳을 접수 중이다.      


백사장 끝쪽에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서는 매일밤 냐짱 현지인들이 모여 사교춤을 춘다. 50명 정도의 남녀가 하늘거리는 사교춤 복장을 하고 큰 음악소리에 맞춰 부르스, 지르박, 왈츠등을 즐기고 있다. 작달막한 베트남 남녀들이 스텝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멋은 없지만 몹시 진지하다.      

떠들썩한 백사장을 걷다가 구경하다 보면 두 시간 정도가 지난다. 바닷바람에 몸을 식힌 후 마트에 가서 내일 아침을 위한 과일과 오늘밤 먹을 간식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마트마다 한국물건이 꽤 많다. 조금 멀리 있는 롯데마트에는 전시된 물건 중 한국물건이 절반쯤 되는 듯하다. 한국의 롯데마트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전시된 물건도 국산이 많고 손님들 역시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동남아 관광지나 대도시는 한국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팔고 있어서 한국인들은 외국이라는 실감이 안 날 정도이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한 후 마트에서 사 온 소주와 맥주 안주를 꺼내놓고 혼술을 한다. 방금 내가 걸었던 해변의 야경을 보면서 유튜브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마시는 한잔은 고급 카페에서 보다 더 격조 있다. 가끔 배가 출출할 때는 롯데마트에서 사온 컵라면과 김치로 고향의 맛을 느낀다. 저녁산책과 달달한 쏘맥 기운으로 달콤한 깊은 잠에 빠진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다섯 번의 한달살이를 하면서 정립된 루틴이다. 가끔은 주변 관광을 하고 마사지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일한 일상이다. 세끼의 식사 그리고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몸에 배었다.      

퇴직 전의 생활과 유사하다, 돈 버는 일을 하는가와 돈 안 되는 일을 하는가만이 다를 뿐이다. 퇴직 전 일터는 직장이었고 해외살이의 일터는 카페이다. 직장을 위한 일을 하다가 나를 위한 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상이 즐겁다. 내 일인 글쓰기 분량이 늘어나고 글의 내용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 뿌듯하고 행복하다.     


혼자라서 외롭지 않냐고?  즐겁고 뿌듯하고 행복한데 뭐가 외롭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왜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