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이 떠나기 전 주로 유튜브를 보면서 해당지역의 정보를 구한다. 영상으로 현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정보이다. 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다양한 영상을 올려놓아서 필요한 정보를 맞춤형으로 찾아볼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행 유튜버 대부분이 2030 젊은이들이어서 60대인 내가 참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맛집 소개이다. 유튜버가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추천하는 식당을 몇 번 찾아갔는데 내 입맛에 영 아니었다. 2030이 먹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60대와 달라서 이를 감안해야 한다.
해당지역 유튜브 영상 제목과 썸네일만 보고도 그 도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스탄불 영상에는 역사유적 관련내용이 많지만 사기, 도둑, 소매치기 관련 부정적인 영상이 의외로 많다. "이스탄불에서의 사기유형 10가지", "이스탄불에서 사기당하지 않는 법"이라는 영상이 있고 심지어 이스탄불 여성 2명이 "티르키에 에서 살아남기"라는 영상이 있을 정도이다. 부정적인 내용의 영상을 몇 개 보고 나니 이스탄불이 사기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2년여 해외 유랑생활을 하면서 도둑이나 사기당한 적이 없는데 이스탄불에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며 유튜버가 권고하는 사기유형별 대응방안을 공부했다.
밤늦게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탔다. 택시사기 유형에 대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탑승전에 운전사가 보는 앞에서 차넘버와 운전사가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 사기 치면 이 사진으로 경찰에 고발하겠다는 경고이다. 운전사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정부에서 인정한 공항택시이고 미터기로 요금을 받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택시 미터기를 속이는 사기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숙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공항에서 집까지 택시비 얼마 나오느냐고 물어서 개략적인 요금을 확인했다. 숙소까지 오는 동안 구글지도를 보면서 줄어드는 거리와 늘어나는 택시요금을 확인하면서 운전사가 미터기를 속이고 있지 않나 점검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주인이 말한 것보다 저렴하다. 내가 사진을 찍는 등 오버하는 바람에 기사가 놀라서 속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양심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의 예방활동 덕분에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자찬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사기 예방법 중 1번은 누가 친절하게 다가오면 의심하라는 것이다. 이스탄불 도착 다음날부터 구석구석 걸어 다녔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거나 말을 걸면 일단 경계했다. 그런데 나에게 미소를 보이고 말을 걸거나 친절을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개는 식당이나 가게 앞을 지날 때 호객꾼이 말을 걸지만 버스나 트램 옆자리 사람도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젊은이는 손흥민과 김민재를 언급하고 노인들은 한국전쟁 때 파병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골목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말을 붙이기도 한다. 80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는 마주 오던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가지고 있던 호두 두 개를 준다. 나에게 친절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전혀 사기 치려는 분위기가 아니다.
식당에서는 음식값을 과다청구하거나 먹지도 않은 음식을 계산서에 포함시키는 사기가 많다고 했다. 식사 후 계산서를 받으면 일일이 메뉴판 가격과 비교했다. 식당에 열댓 번을 갔는데도 가격 속이는 식당은 없었다. 내가 동네식당만 가고 관광지 식당을 가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맛은 없었지만 식당 주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정직했다.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잠깐 앉았는데 옆 벤치에 새까만 차도르를 둘러쓴 여인이 홀로 앉아 보온병에 담은 차를 마시고 있다. 내가 쳐다봤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종이컵에 차를 따라준다. 남이 주는 것은 먹거나 마시지 말라는 영상이 생각나서 차를 마시지 않고 여인을 유심히 살폈다. 차도르 밖으로 보이는 눈, 코, 입이 참 이쁘다. 여인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으니 부끄러운지 차도르를 당겨 입과 코를 가려버려서 눈밖에 안 보인다. 눈이 맑고 예뼈서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는다. 맑은 눈의 여인에게 홀려 차를 홀짝 마셔봤다. 은근한 향기가 온몸에 퍼진다. 차에 약을 타서 약기운이 온몸에 퍼진 건가? 의심이 된다. 주변을 보니 가까이에 경비원이 보인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혼미해지면 저 경비원에게 가서 쓰러져야겠다는 대비를 했다.
한참 지나도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는다. 차를 다 마시고 나니 여인이 상큼한 눈웃음을 보이며 한잔 더 따라준다. 새까만 차도르를 입고 눈만 나온 여인이 공원에서 옆 밴치에 앉은 남자에게 차를 권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친절과 배려가 몸에 배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것 같다.
이스탄불 버스는 운전석 쪽 문으로 승차하면서 카드기에 요금을 지불하고 하차 때는 뒷문으로 내린다. 승객이 많아서 운전석 쪽 문이 막히면 뒷문으로 승차하기도 한다. 뒤문으로 탄 사람들이 본인들의 교통카드를 모아서 앞으로 전달하면 앞쪽승객이 카드마다 한 번씩 터치하여 요금을 지불한 후 사용한 카드를 뒤로 전달한다. 꽉 찬 버스에서 뒤쪽 승객들이 카드를 모아 앞으로 전달하고 요금 지불 후 다시 뒤로 전달하는 것이 이채롭다. 모두 한국사람들 만큼이나 친절하고 정직하다.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으려고 하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되지 않는다. 내 뒤에 있는 노부부가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내 카드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노인부부 사기단 유형도 공부한지라 노인의 손놀림을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현금인출이 안된다. 노부부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돈이 급하면 주겠다고 자기 지갑을 꺼낸다. 앞사람이 카드 현금 인출이 안되니 자기가 필요한 돈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런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을 사기꾼으로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유튜버들이 얘기한 이스탄불 사기꾼은 과장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박하고 몹시 친절하다. 오지랖이랄 정도로 다정다감하다. 버스나 트램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서로 마주 보는 4인석 자리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일행이나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식당이던 가게던 주인들이 몹시 친절하며 길을 묻는 여행객에게 정성껏 알려준다. 이스탄불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직하다고 느껴지면서 경계심을 풀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 가던지 나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스탄불에도 사기꾼이 있고 소매치기가 있을 것이다. 사기나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은 유지했다. 외출할 때는 항상 백을 가슴 쪽으로 해서 소매치기를 예방했고 상황에 맞지 않는 분위기에서 접근하는 사람은 단호히 배격했다. 대표적인 유형의 사기가 교통카드를 사거나 충전할 때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후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주로 외국관광객이 붐비는 곳에서 발생한다. 내가 카드를 충전하려 충전기 앞에 갔을 때 도와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아하! 바로 이놈들이구나 하면서 거절했다. 어떤 놈은 버스를 기다리는 나를 잡고 교통카드를 꼭 사야 한다면서 나를 카드 발급기로 끌고 가려고 했다. 산전수전 겪은 지공거사의 눈에는 그 정도 사기꾼은 외모와 태도 만으로도 알 수 있다.
탁심광장을 걷는데 어떤 30대 커플이 나에게 오더니 영어로 지하철 역을 묻는다. 터키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원정온 사기꾼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칭찬을 엄청 하더니만 한국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본 사기 유형이다. 돈 보여주겠다고 지갑 꺼내면 지갑위치를 파악하고 나중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 정신없게 만든 다음 지갑을 털어간다는 유형이다. 아! 이놈이 바로 그놈이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크게 웃었더니 놈이 뻘쭘한 표정을 짓더니 가버린다.
사기까지는 아니지만 황당한 일이 있었다. 밤늦게 집옆 구멍가게에 가서 물한 통을 사는데 새까만 차도르를 입은 노숙자 수준으로 불쌍하게 생긴 60대 여인이 나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뭐라고 얘기한다. 터키어라서 알아듣지 못하지만 애절한 눈빛에 나도 고개를 숙이면서 웃어줬더니 땡큐땡큐 하면서 더욱 머리를 조아린다. 가게 주인이 우리 둘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담배를 한 갑 꺼내 차도르 여인에게 건넨다. 그러더니 내 물값에 담배값을 추가해서 계산한다. 헉!!! 불쌍하게 생긴 차도르 여인이 담배가 떨어졌는데 돈은 없고 해서 가게에서 무작정 담배 사줄 독지가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나에게 터키어로 담배 한 갑 사달라고 얘기했는데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니까 주인이 내가 허락한 걸로 알고 계산한 것이다. 젊은 시절 담배 떨어지면 꽁초까지 주워다 피웠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얼마나 담배가 당기면 그랬을까 생각하며 그냥 계산했다.
해외 나가서는 소매치기나 사기에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많이 했음에도 소매치기나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도 과도하게 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뭔가를 잊어버리거나 사기를 당하더라도 피해복구가 용이하지만 해외에서 지갑이나 폰을 잊어버린다면 재난이다. 지갑이나 폰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잊어버렸을 때의 대비책도 만들어 놔야 한다.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여권이 가장 중요 하지만 한달살이 하는 나는 여권을 집에 보관하고 들고 다니지 않아 분실 위험은 없다.
지난 1월 라오스 비엔티안 공원에서 실수로 폰을 잊어버렸다. 폰을 두 시간 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항공권, 숙소 예약 관련 모든 자료가 폰에 있는데 더 이상 해외 살이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귀국을 생각 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내 폰을 발견하고 공원 경비원에게 맡겨서 찾을 수 있었다. 폰을 찾은 후 분실에 대비한 계획을 세웠다. 폰에서 쓰는 앱을 모두 노트북에 깔아서 폰 분실 시 노트북으로 대신하기로 했고 필요한 자료는 내 이메일에 보관하여 유사시 어느 곳에서나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해외에서 폰을 잊으면 현지 폰과 유심칩을 사서 폰 기능을 살리고 필요한 앱을 깔아 사용할 생각이다. 지갑 분실을 대비해서는 신용카드 4개를 가지고 다니며 두 개는 지갑에 두 개는 가방에 보관하고 현금도 반반씩 분산 보관 하고 있다.
사기꾼이나 소매치기는 약한 사람이나 돈 있어 보이는 사람이 타깃이다. 관광지에 멋진 옷 입고 고급스러운 가방 들고 폼 잡고 다니면 소매치기의 대상이 된다. 해외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은 옷차림이 깔끔해서 돈이 있어 보인다. 이스탄불에서 가끔 마주치는 한국인들은 옷차림이 깔끔하며 특히 5060 여성 여행자들은 멀리서도 한국인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차려입고 다닌다. 여행 중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니 옷차림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깔끔한 모습은 소매치기나 사기꾼의 표적이 된다.
내 옷차림은 전혀 돈 있어 보이지 않으며 가슴에 간단한 가방만 매고 다녀서 사기꾼들의 호기심을 받지 못한다. 이것도 소매치기 예방 전술이다. 터키 성인 남자는 기본으로 턱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나도 면도를 안 한다. 얼굴에 털 없는 사람은 여자와 애들뿐이다. 없어 보이는 옷차림에 면도도 안 한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니다 보니 훔치거나 사기치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길 성싶다.
한 번에 3개국 3개월간 해외살이 하기 때문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에 대한 안전이 중요하지만 도난, 분실에 대한 안전 역시 중요하다. 소매치기 많은 유럽에서 아무 문제 생기지 않도록 과도할 정도의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