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 걸어보기
이스탄불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하물저장소와(예레바탄 사라이) 발렌스 수도교이다. 지하물저장소는 비잔틴제국 1000년 내내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물탱크였고 발렌스 수도교는 물탱크로 물을 보내주는 파이프 라인이었다. 물저장소와 수도교는 기원전 300년부터 발전된 로마의 수도 시스템이다. 멀리 떨어진 수원지에서 도시나 마을로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도교와 물저장소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수도 시스템이 콘스탄티노플에도 적용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당시 소도시였던 비잔티움으로 로마의 수도를 옮기면서 수도에 걸맞은 도시 인프라를 건설하였다. 324년에서 330년까지 6년 동안 비잔티움에 성벽을 세우고, 왕궁, 원형극장, 전차경기장, 공중목욕탕 등 주요 시설을 건설하면서 물 공급을 위한 수도시설도 만들었다. 20킬로 떨어진 강화도 크기의 벨그라드 숲에서 100킬로가 넘는 수로를 만들어 콘스탄티노플로 물을 끌어왔다. 이스탄불 서쪽 15킬로 정도에 팔당댐 규모의 호수가 두 개나 있었지만 굳이 더 멀리 있고 소규모인 벨그라드 숲에서 물을 끌어온 것은 고도 때문이다. 궁전과 주요 시설이 70미터 정도의 높이라서 그보다 높은 곳에서 물을 끌어와야 물의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가 늘어났고 물수요가 증가하여 수도 시설을 보강해야 했다. 364년 황제가 된 발렌스는 수로를 확충하고 효율적인 물의 흐름을 위해 발렌스 수도교를 건설했다. 높이 약 20미터, 길이 1km가량의 석조 다리는 궁전의 핵심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19세기까지 약 1400년 동안 사용되었다. 발렌스 수도교는 지금도 도시 중양에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527년에 즉위한 유스티아누스 1세는 아야소피아 인근에 지하물저장소인 예레바탄 사라이를 건설한다. 물저장소는 유사시 물공급이 끊기더라도 도시전체가 3개월을 버틸 수 있도록 큰 규모로 만들었다. 축구장 보다도 큰 가로 140미터 세로 70미터 깊이 9미터의 규모로서 무려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물 저장소였다. 내부에는 석조기둥 336개가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로마전역의 신전에 있던 석조기둥을 가져와 건설하여 기둥 모양이 모두 다르며 눈물모양 문양의 기둥과 메두사의 머리를 한 기둥받침이 특이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의 물은 20킬로 떨어진 벨그라드 저수지에서 지하수로와 수도교를 거쳐 공급되었다
지하 물저장소는 오스만 시절 폐쇄되었다가 1925년 지하철 공사 도중에 발견되었다. 무슬림은 고인 물을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있어서, 물이 흐르는 수로와 수도교는 사용하였지만 지하물 저장소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물저장고는 아야 소피아 부근에 있지만 지하라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발렌스 수도교는 아야소피아와 숙소를 오가는 중간에 위치하여 멋진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발렌스 수도교를 거쳐 지하물저장소로 흘러가는 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까지 오게 되는가가 궁금하다. 비잔틴제국 시절 물을 끌어 온 벨그라드 숲을 가보기로 했다.
벨그라드 숲은 가로 20킬로 세로 10킬로쯤 되는 강화도 정도의 면적이며 100~200미터 높이의 야트막한 숲이다. 숲 전체에 나무가 빽빽하고 고지대에 대여섯 개의 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가 있는 계곡별로 구분하여 3개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마다 숲 곳곳에 캠핑장과 산책로가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즐긴다. 이곳의 저수지들이 비잔틴 제국시절 콘스탄티노플에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였으며 지하수로와 수도교를 이용하여 콘스탄티노플로 물을 공급했다. 직선거리는 20킬로이지만 수로의 총길이는 100킬로에 달했다고 한다.
3일에 걸쳐 세 곳의 저수지를 각각 가보기로 했다. 모두 진입로는 다르지만 5킬로 이내의 가까운 지역이며 콘스탄티노플에 물을 공급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세 곳 모두 숙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세 번 환승에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은 교통카드(이스탄불 카르트)를 사서 사용했다. 버스, 지하철, 트램, 여객선 모두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하며 정류소마다 충전기가 있어서 사용하기에 간단하다. 일반 신용카드도 가능하지만 요금이 30% 정도 비싸므로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 택시로 가면 간단하지만 나는 퇴직 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택시를 거의 타지 않는다. 젊은 시절이야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탔지만 지금은 남는 게 시간이어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는 건강에 좋고 돈이 절약되며 현지인과 부딪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1석 3조이다.
첫날은 벨그라드 숲 서쪽에 있는 아이밧벤디 국립공원으로 갔다. 공원 도착하자 입구에 조그마한 수도교와 지하수로가 있다. 수로는 모두 뚜껑이 덮여있다. 로마 시대부터 수로는 물의 오염을 방지하고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로 만들었고 지상수로에는 덮개를 하였다고 한다. 지하수로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수로의 중간중간 우물뚜껑 같은 게 올라와 있어서 지하수로가 지나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입구에서 이삼 킬로 걸어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저수지가 나온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여서 조금 실망이다. 큰 규모의 산악지역이 아니고 야트막한 야산이어서 물이 많이 모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한 곳에서가 아닌 세 곳의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 합한 후 수로를 통해 도시까지 물을 보냈을 성싶다.
구릉형태의 야산이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공원길을 걷는 듯하다. 4월 중순이어서 나무에 연녹색의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4월 중순 벚꽃이 지면서 산이 연녹색으로 변할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이곳 역시 연녹색의 산야가 무척 아름답고 마음마저 신선하게 한다. 아직은 나뭇잎이 조그마해서 숲이 여유롭고 여백이 있지만 한두 달 후 잎이 무성해지면 산이 꽉 찰 것 같다. 공원 야영장에는 많은 소풍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이 보인다. 세 시간 정도 숲길을 걷고 돌아왔다. 발렌스 수도교와 지하물저장소의 물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이송되었나를 확인하고 나니 그동안의 궁금증 하나가 해결되어 뿌듯하다.
둘째 날은 벨그라드 숲 중앙부에 있는 하이킹 코스를 다녀왔다. 1700년 전부터 콘스탄티노플에 물을 공급했던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예쁘게 만들어졌으며 6킬로가 넘는 코스 전체가 황톳빛의 흙이어서 맨발 걷기에 좋아 보인다. 걷는 사람은 꽤 되지만 맨발로 걷는 사람은 없는 것을 보니 한국사람들만 맨발 걷기를 좋아하나 보다. 이곳은 고도차가 별로 없는 거의 평지이지만 숲은 무성하다. 이번에도 공원을 한 바퀴 걸으면서 저수지 주변 지하수로의 흔적과 수로 중간중간 설치된 우물덮게를 돌아봤다.
3일째는 벨그라드 공원을 걸었다. 이곳 역시 이전의 두 곳과 비슷한 수준의 숲이지만 산이 더 높고 저수지가 크고 수량이 많다. 이곳의 물이 세 곳 중 가장 많아 보인다. 이곳은 산이 높아서 숲이 더 우거지고 산책로가 불분명하여 길 찾는데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소풍하고 있는 야영장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는데 확실치 않고 애매하다. 그동안 수많은 트래킹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대충 감으로 한참을 갔는데 길이 갑자기 없어진다. 길 찾는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는 숲 속에서 조난당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길을 서둘러 내려오는데 말을 탄 감시인이 다가온다. 뭐라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해 지고 있으니 빨리 내려가라는 의미인 듯했다. 외국에서 어둑어둑한 시간에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걷는 것은 조금 긴장되는 일이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로 돌아오니 일몰이 지나 야경이 아름답다. 중간에 탁심광장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면서 이스탄불의 야경을 감상했다.
3일간 세 곳의 숲과 저수지를 걸으면서 1700년 전부터 콘스탄티노플에 물을 공급하던 역사적인 장소를 확인했다. 그동안 번잡스러운 도심과 역사지역 위주로 걸었는데 외곽의 한적한 숲 속을 걸었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도심을 걸을 때는 건물과 사람들 살피느라 다른 생각을 한 여유가 없었다. 며칠간 한적한 숲길을 걷다 보니 신록의 싱그러움에 행복호르몬이 솟아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역사유적 사이를 걷는 맛도 특별하지만 자연 속을 걷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힐링인 것 같다.